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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와 땅콩 조림, 매운 양념으로 볶은 고기 등 반찬이 될 만한 것들과 밥을 주문하고 다시 메뉴판을 보는데,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있습니다. 표돌천 맥주! 이 지방의 특산 맥주인가 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할 것 같은 청도맥주는 의외로 중국 내에서 시장 점유율이 5%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북경에는 연경 맥주가 있고 청도에는 청도 맥주가 있듯, 중국의 각 지방에는 지방 나름의 맥주(혹은 백주)가 있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각 지방마다 생산되는 술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좀 큰 식당에 가면 메뉴판에서 술 종류만 해도 몇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아주 늦은 점심 식사라 거의 저녁이라 해도 될 정도지만, 아직은 밖이 환한데 술을 마셔도 될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낮술에 취하면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본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한국에 계시므로 안심하고 표돌천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더운 날 시원한 맥주는 정말 최고의 궁합입니다. 술을 잘 드시지 않는 조 교수님(저의 이번 여행 동반자입니다)도 시원한 맥주 한잔을 너무도 달게 마셨습니다. 순하고 깔끔해서 여자들 취향에 잘 맞습니다. 그 이후의 여행길에서도 계속 '표돌천 맥주'가 마시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나, 다른 지방에서는 표돌천 맥주를 찾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남에서 살고 있는 한 한국유학생의 말에 의하면 정작 제남 사람들은 청도의 노산 맥주를 많이 마시지 표돌천 맥주는 잘 안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청도에서 유학중인 조 교수님 후배의 말로는, 청도 사람들은 당연히 청도 맥주를 마시지 노산 맥주는 안 마신다네요. '취향'이란 상당히 개인적인 것 같지만, 그게 때로는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식사를 마치고 제남 시외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오늘은 태안행 버스표 두 장을 쉽게 끊었습니다. 실은 어제도 한 번 왔습니다. 노동절 휴가 기간에는 이동 인구가 워낙 많다하니 혹시 표가 매진될까봐서요.
아, 정말!!!! 저 중국 사람들에게 불만 하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너무도 비일비재합니다. 나는 외국인이라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으니 천천히 다시 말해 달라고 해도, 중국 사람들은 '똑같은' 길이의 말을 '똑같은' 속도로 반복할 뿐입니다. 조금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천천히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게다가 간단한 말도 너무 길게 합니다. 몇 번이고 되물어 알아차린 내용은 "태안 가는 차는 많으니 내일 사도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표는 쉽게 끊었지만 차에 타서 출발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늘 그런 것인지 노동절 휴가 기간이라 특별히 이 시기에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이상한 시스템으로 탑승을 합니다.
따라오라는 곳으로 갔더니 그곳에도 태안행 버스가 있고 사람들이 줄을 쭉 서있습니다. 우리는 표를 샀다고 표를 보여주어도 줄을 서라고 다그칩니다. 알고 봤더니 매표소에서 표를 사지 않아도 차를 기다리면서 그 앞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거면 왜 굳이 힘들게 줄서서 기다려 표를 사게 하는 것인지. 외국인인 제가 어찌 중국을 이해하겠습니까. 기다리고 있는데 차에 인원이 다 찼다고 출발해버립니다. 그러더니 다시 따라오랍니다.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일렬로 졸졸졸 그 사람을 따라가니 다시 아까 그 4번 승차장입니다. 아니, 다시 올 거면서 왜 가라고 그런 거야? 곧 태안행 버스가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차를 탈 수 있었지요. 그런데 검표원들이 들어오더니 또 표를 팝니다. 표를 끊지 않아도 차에 타서도 표를 살 수가 있는 것이지요. 참내. 그리고 이미 표를 산 사람보고도 5위안씩을 더 내라고 합니다. 이 차는 더 좋은 차라서 더 비싼 요금을 받아야 한다나요? 표가 없어서 새로 표를 끊어야 하는 사람, 표가 있지만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의 북새통 속에서 검표원들은 착착착 돈을 받고 표를 내어줍니다. 인원수를 세어보고 받은 돈이 맞나 확인이 끝나고서야 차는 출발합니다. 넓게 뚫린 시원한 도로를 막힘없이 달려 태안에 도착했습니다. 태안시에 들어설 때는 건물들이 전부 크고 깨끗해서 신도시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골 읍내 같이 왁자지껄합니다. 얼른 숙소를 잡아야 합니다. 제남 시내 관광에서부터 태안 도착까지 너무 피곤한 하루였거든요. 터미널 바로 길 건너에 호텔 간판이 여럿 보입니다. 그 중 가장 깨끗해 보이는 호텔로 들어가니 숙박료가 너무 비쌉니다. 다른 호텔을 찾으러 길을 조금 걸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요상합니다. 길거리의 상점들이 공구상이나 자동차 수리점이 대부분인 것까지는 뭐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로 일을 하며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까지도 그럭저럭 참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 공구점과 자동차 수리점 사이에 간혹 간혹 자리 잡고 있는 정체불명의 가게. 헐벗은 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 야릇한 시선을 날리는 그 묘한 분위기. 붉은 등만 켜지 않았을 뿐 홍등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였지요. 이 지역에 숙소를 잡으면 우리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 재빨리 자리를 떴습니다. 제남 기차역 쪽으로 와서 좋은 숙소를 잡았습니다. 시설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거니와, 예쁜 미소를 가진 친절한 언니가 로비를 지키고 있었지요. 게다가 더더욱 맘에 들었던 것은 그 언니는 우리를 보고 바로 "한국인이세요?" 묻고는, 외국인인 것을 알자 매우 쉬운 단어로 천천히 말을 해주었다는 겁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친절 아니겠습니까? 저 그 순간 감동 받았답니다. 나중에 체크아웃하면서는 그 언니와 사진까지 찍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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