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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살이1년>산동성 여행6-태산 일천문에서 중천문까지

태산, 내 너를 필히 딛고 올라서리라!
[중국살이 1년] 산동성 여행⑥ - 태산 등반 일천문에서 중천문까지
텍스트만보기   윤영옥(wal0572) 기자   
태산에 오르는 코스는 두 개입니다. 편한 코스와 힘든 코스. 편한 코스는 천외촌(天外村)에서 중천문(中天門)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중천문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남천문에서 바로 하늘길(天街)만 통과하여 오르면 태산 정상이지요. 태산에 올랐다고 하기에는 거저먹기에 가까운 이 코스를 '천외촌 코스'라고 부릅니다.

힘든 코스는 매표소가 있는 홍문(紅門)에서 중천문, 남천문, 하늘길까지 전부 걸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길은 홍문 코스라고 합니다. 두 개의 코스는 처음 출발점에서 중천문까지만 다를 뿐 나머지는 겹쳐집니다. 그러니까 중천문은 도보 이용객과 버스 이용객이 만나는 지점이지요. 그 이후 걸어올라 가느냐, 케이블카를 타느냐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홍문 코스를 따라 정상까지 걸어올라 갔다가 천외촌 코스로 편히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가이드북에는 예상 소요 시간이 6시간가량 된다고 하였으나, 워낙 극심한 운동부족과 게으름으로 단련된 몸이기에 8시간 정도 걸릴 거라 각오하였습니다.

조 교수님은 올라갈 때 편히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게 어떻겠냐고도 하셨지만, 나이답지 않은 부실한 무릎 관절을 가지고 있는 제게는 계단이나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오는 것'이 더 큰 고통이기에 제 주장을 관철시켰지요.

택시를 타고 홍문으로 가자고 하면, 태산의 첫 번째 문인 일천문(一天門)에서 내리게 됩니다. 일천문에서 홍문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니 택시기사에게 분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홍문까지의 거리는 한국의 여느 산 입구와 비슷합니다. 각종 기념품과 모자, 지팡이 등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지요.

▲ 태산의 첫번째 문인 일천문(좌)과 공자가 지나갔다는 공자등임처(우)
ⓒ 윤영옥
일천문을 지나면 나무가 예쁘게 꼭대기를 덮고 있는 '공자등임처(孔子登臨處)'라는 문이 보입니다. 예전이 공자님이 태산을 오르시면서, 이곳에서 무슨 말씀인가를 하셨다는데. 이전 기사에서 말씀드렸듯이 중간에 가이드북을 잃어버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공자등임처를 지나 홍문을 들어서 홍문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삽니다. 헉! 80위안(우리 돈으로 약 만원)이나 합니다. 중국의 물가에 비하면 각 공원이나 유적지의 입장료는 정말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보험료는 2위안이며, 보험료를 내고 안 내고는 선택사항일 뿐 필수는 아닙니다만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료까지 82위안을 내고 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노약자와 학생, 군인 할인 등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는 어린이는 나이에 따라 할인을 해주잖습니까. 그런데 중국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키 1.2m 이하의 어린이가 할인 대상에 해당됩니다.

또 태산에서만 본 흥미로운 할인은 '기자 할인'입니다. 태산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은 입장이 무료입니다(그런데 외국 기자도 해당이 되는지, 기자라는 신분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가지고 갔더라면 한번 시험이라도 해볼 걸 그랬습니다).

▲ 홍문(좌)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고 만선루(우)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태산 등반이 시작됩니다.
ⓒ 윤영옥
만선루(萬仙樓) 앞에서 검표를 하고 만선루를 지나면 드디어 태산 등반 시작입니다. 태산 등반은 우리나라 산을 오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제가 이전 기사들에서 누차 이야기했듯이 중국의 산은 전부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등산화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편한 운동화면 되지요. 저는 이날 치마 입고 하이힐 신고 올라가는 초인적인 처자도 보았습니다.

일천문에서 중천문까지는 약 6.2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가 세어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는 7412개의 계단이, 또 다른 누군가는 7421개의 계단이 있다고 하니 대략 7420여 개의 계단이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게 말이 7420여 개지, 직접 올라가 보시면 장난이 아닙니다. 그것도 중천문까지의 계단만 이 정도지 중천문 이후에는 더 살인적인 계단이 남아있지요. 태산에 한 번 올라갔다 온 뒤로는 계단만 봐도 치가 떨린다니까요.

▲ 두모궁 입구와 두모궁 내부, 소원을 걸어 잠근 자물쇠
ⓒ 윤영옥
만선루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두모궁(斗母宮)이 나옵니다. 두모궁은 태산을 수호한다는 두모신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향을 피우며 절을 하고, 소원이 새겨진 자물쇠를 걸어 소망을 빕니다.

▲ 저 양옆의 손잡이를 문지르면 물방울이 튄다는데, 이것도 돈을 내야 할 줄은 몰랐지요.
ⓒ 윤영옥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낯익은 물건이 눈에 띕니다. 물이 담긴 대야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고, 그 손잡이에 손바닥을 살살 문지르면 물방울이 튀어 오른다나 어쩐다나.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으나. 물 한 방울 튀지 않습니다. 어? 왜 나는 안 되지?

한국인은 끈기의 민족. 안 되면 될 때까지! 몇 번을 더 문질러 보았습니다. 여전히 물방울은 튀어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작은 세숫대야가 제 오기를 자극하는군요. 본격적으로 물방울과의 한판승을 벌이려는 찰나, 조 교수님께서 외치십니다.

"어? 윤 교수! 이거 한 번 문지르는 데 2위안씩이라는데?"

어머나! 저는 미처 보지 못했으나 한쪽 구석에 2위안이라는 작은 쪽지가 수줍게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유료라는 말에 갑자기 주춤해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돈 내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적어도 10위안은 벌었습니다, 하하하.

▲ 태산의 수호신, 두모낭낭
ⓒ 윤영옥
두모궁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양 갈래 길이 나옵니다. 왼쪽 길은 그대로 태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경석욕(輕石峪)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경석욕은 자연의 너럭바위에 금강경(金剛經)을 새겨 놓은 곳입니다. 경석욕을 보면 다시 이 양 갈래 길로 되돌아 나와야만 태산 등산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갈림길은 언제나 고민과 선택을 요구합니다. 이 지점은 일천문에서 중천문까지의 거리의 반 정도 되는 곳입니다. 사실 조금 힘이 들기는 했지요. 이제 와서 생각하기에 ‘조금’ 힘이 들었다고 여겨지는 것이지, 아마 그 당시에는 ‘많이’ 힘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지친 관광객들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주문이 있지 않습니까. '이왕 온 김에 보고 가야지, 언제 또 여길 오겠니.'

경석욕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합니다. 글자 한 자의 크기가 50cm 정도 되고 전부 1043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데. 중국 사람들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인가 봅니다. 산을 전부 돌계단으로 깔아버린 것도 그러하거니와 태산 정상까지 제대로 된(?) 바위가 없습니다. 틈만 있으면 전부 빨간 글자들을 새겨버렸지요.

▲ 금강경이 새겨진 경석욕
ⓒ 윤영옥
경석욕을 되돌아 나와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중천문까지 가는 동안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어찌 일일이 다 글로 적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숨은 차오고 말수는 적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지고 있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겨우 중천문에 왔을 뿐인걸요. 다음 관문인 남천문까지의 코스는 거의 죽음에 이른다는 가이드북의 경고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간신히 억누르며 시원한 빙과 하나로 속을 달래며 휴식을 취합니다.

▲ 이제서야 겨우 중천문에 다다랐습니다.
ⓒ 윤영옥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태산아, 내 필히 너를 내 발 아래 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