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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데의 관광지도 워낙 넓고 볼거리가 많아 하루에 많은 것을 보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가는 자칫 ‘나 거기서 사진 찍고 왔어’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철칙(鐵則)을 북경에서만큼은 잘 지켰는데, 제남에서 그만 어기고 말았습니다. 제남도 꽤나 큰 도시라는 걸 몰랐던 게지요. 이날 하루 제남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저 역시도 갖다 온 곳의 이름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여행기를 읽으시는 혹은 앞으로 읽으실 여러분께,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무시했던(?) 제남에 사과 말씀을 올리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산동성박물관에서 나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천불산(千佛山)입니다. 산동성박물관에서 느린 걸음으로도 5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천불산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지역마다 그 지역 학교들의 소풍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 내정되어 있는 것처럼, 이 동네에서는 천불산이 ‘초등학교 소풍 전문 구역’인 듯 어린 학생들의 무리가 줄을 잇습니다.
내려올 때는 걸어내려 오더라도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지붕 없는 스키장 리프트형 케이블카를 타는 것도 나름대로 고역이었습니다. 조금의 여과도 없이 내리꽂히는 직사광선에 머리 위는 타는 듯하고, 이미 달아오른 바닥에 어쩔 수 없이 붙이고 앉은 엉덩이는 움찔움찔합니다.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초록 나무들이 없었더라면. 봄이 즐거운 이유 중의 하나는 눈부신 신록(新綠) 때문이지요. 명도와 채도가 다른 갖가지 초록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요. 발아래를 빽빽이 채우고 있는 나무의 푸름에 경탄하고 있는 새, 커다란 불상이 곁을 스쳐갑니다. 원래 이 산에는 천 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 이름이 천불산이고요. 그런데 그 천 개의 불상은 문화대혁명 때 모두 파괴되었다고 하네요. 그 후 중국 정부는 보상(?) 차원에서 만불상(萬佛像)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만불상이 아니라 억불상(億佛像)을 만든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귀중한 천불상은 사라진 후인데요. ‘훼손된 문화유산’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뱉어버린 말, 경제 개발에 짓밟힌 자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시야가 탁 트여 제남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높은 빌딩들이 삐죽삐죽 빽빽합니다. 이곳에 올라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제남이 ‘시골’이 아니라는 것을요.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간혹 착각을 하곤 합니다. 수도가 아닌 다른 지방은 ‘도시’가 아니라 전부 ‘시골’일 거라고요.
그 친구가 들으면 더욱 깜짝 놀랄 말을 하나 전해줘야겠습니다. 친구야, 중국에도 아웃백이 있단다. 세상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고 넓어지면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기실 실제는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그 가능한 통로들 때문에 직접 부딪히기를 회피하면서 점점 자신의 틀 안에 갇혀가는 걸지도. 그래서 여행이란, 세상을 알아가고 나를 깨뜨려 가는 과정입니다.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흥국선사(興國禪寺)라는 작은 절이 있습니다. 절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의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향을 피우는 자욱한 연기와 냄새로 눈과 코가 어지럽습니다. 흥국선사에서는 자연의 바위를 뚫어 그 안에 세운 불상이 인상적입니다.
푹신한 흙길과 시원한 나무그늘이 그립습니다. 중국은 왜 굳이 많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 산을 전부 돌길과 계단으로 깔아버렸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자고 있는 개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그렇게 북적거리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슬쩍 눈을 떠서 흘낏 바라보는 게 다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아주 천하태평이지요. 그 모양이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데, 와불을 만났습니다. 편히 누워계신 부처님의 모습에 아까 그 개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지금 천불산에 천 개의 불상은 없지만, 한국에는 삼 년이 지나면 풍월을 읊는 서당개가 있듯, 불심 가득한 이 천불산에는 산을 찾는 미혹한 중생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는 천불개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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