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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살이1년>산동성 여행4-제남 대명호,표돌천

제남, 과연 물의 도시로세 그려
[중국살이 1년] 산동성 여행④ - 제남 대명호, 표돌천
텍스트만보기   윤영옥(wal0572) 기자   
이제 오늘 남은 목적지는 대명호(大明湖)와 표돌천(趵突泉)입니다. 어느 곳을 먼저 갈까 일행과 한참을 이야기하다, 그냥 먼저 오는 버스가 가는 곳으로 가자고 결정지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이 대명호 가는 버스가 한 대 지나갑니다. 저는 내심 표돌천에 먼저 가고 싶어서 ‘그럼 다음번에 표돌천 가는 버스가 오겠군’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대명호행 버스가 제 기대를 저버리며 달려옵니다.

어제오늘 계속해서 택시만 타다가 배낭여행자의 양심상(?) 저렴한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자는 취지에서 버스를 탄 거였는데, 이건 커다란 실수였습니다. 저희가 탄 버스는 제남 시내를 온통 돌고 돌아 거의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저희를 대명호에 내려놓았지요. 그 와중에 날은 덥고 이미 점심때는 한참을 넘겨 배는 고프고. 정말 버스 안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 대명호 풍경
ⓒ 윤영옥
표를 끊고 대명호 안으로 들어왔지만, 몸이 너무 힘드니까 아무리 좋은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좀 쉬어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뜨거워진 발을 식힙니다.

쉬고 나니 그제야 호수의 넓고 시원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돌아다녀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몸만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게으름의 진수를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 대명호 풍경
ⓒ 윤영옥
잠깐의 휴식 후에 지친 몸을 일으켜 호숫가를 걸었습니다. 대명호는 무척이나 크고 아름답습니다. 마침 바람도 적당히 불어 호숫가의 버드나무 가지가 휘날리는 모습이 눈을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옛 시인들은 이 대명호를 두고 ‘사면에 연꽃이 피고 삼면에 수양버들이 흐느적거리며 푸른 산, 넓은 호수가 도시 풍경을 이루네’라고 노래했다 하지요?

▲ 바람에 날리는 나뭇가지에 바람의 모습까지 보이는 듯합니다.
ⓒ 윤영옥
게다가 대명호는, 중국의 큰 호수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북경 이화원의 곤명호(昆明湖)와는 달리, 여러 개의 샘물이 모이고 모여서 형성된 자연 호수라고 합니다.

현재 대명호 한쪽에는 각종 놀이기구들로 번잡스럽고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조용하고 한적하기를 바라는, 한번 왔다 가는 나그네의 욕심을 버리고 좋게 말하자면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닌 시민들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생활의 공간’입니다.

대명호를 나와 또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표돌천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너무 힘이 들기도 했고 배가 고프기도 했고 저녁에 태안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결론은 쉽게 났습니다. ‘이왕 온 김에 보고 가자. 언제 여길 또 오겠냐’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에서였습니다만, 이건 아주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 표돌천 공원 입구에서 화려한 꽃수레가 손님들을 반깁니다.
ⓒ 윤영옥
주린 배를 부여잡고,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표돌천으로 갔습니다. 표돌천은 전날 저녁에 갔던 천성광장의 바로 맞은편에 있습니다. 입구만 봐서는 몰랐는데 들어가서 내부 안내도를 보니 역시 이곳도 어마어마하게 넓더군요.

제남에는 총 72개의 샘이 있는데 표돌천 공원 내에만 34개의 샘이 있답니다. 너무 커서 초입부터 질려버렸지만, 가장 핵심인 표돌천까지만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기로 했습니다. 표돌천은 제남의 그 많은 샘 중에서도 가장 맑고 아름다워, 청의 건륭제는 표돌천을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시인 이청조의 입상
ⓒ 윤영옥
입구에서 오른쪽 길로 조금 들어가니 ‘이청조 기념당(李淸照 記念堂)’이 있습니다. 이청조는 중국 송대의 시인으로서, 중국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손꼽힌다는군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이청조라는 이름을 제남에 와서 처음 보았습니다. 어제 천성광장에도 중국의 유명한 인물들의 동상이 쭉 놓여 있는데, ‘이청조’라는 이름의 동상을 보고 ‘어? 누구지? 되게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이청조가 보인 뛰어난 문학성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것인지, 이청조 기념당에는 그녀의 탄생에서부터 성장, 결혼 등등 인생의 중요한 장면 장면이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실제 유물이라면 모를까, 인형으로 꾸며진 기념관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청조 기념당은 그 내용물(?)은 부실했지만, 건물은 무척 아기자기하고 단정합니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바로 이곳에서 이청조가 한때 살았다고 하네요. 이청조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에, 이청조가 살았던 시대인 송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이청조 기념당은 전시물보다는 그 건물 자체로서 ‘기념당’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기자기한 이청조 기념당 정원
ⓒ 윤영옥
이청조 기념당을 나와 조금 더 걸으니, ‘표돌천’이 보입니다. 아! 정말 샘물이 퐁퐁퐁 솟고 있습니다. 이런 광경은 어린 시절 고무줄 놀이할 때나 부르던 ‘샘물이 솟는다 퐁퐁퐁~ 낮이나 밤이나 퐁퐁퐁~’하는 동요에서나 등장하는 줄 알았지, 정말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생경한 장면은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 샘솟고 있는 표돌천
ⓒ 윤영옥

▲ 퐁퐁퐁 솟는 샘물의 모습이 생경스럽습니다.
ⓒ 윤영옥
그리고 이 맑은 물. 바닥이 훤히 비치는 물을 보기는 중국에 온 이후 처음입니다. 북경은 워낙 지저분한데다가 건조해서, 고여 있는 물은 더럽고 탁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제가 ‘북경은 너무 지저분하다, 공기가 안 좋다’고 할 때마다 맞장구를 치며 정말 북경은 안 좋다고 그런데 북경 말고 다른 지방은 좋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맞았습니다.

▲ 맑은 샘물을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집니다.
ⓒ 윤영옥
표돌천을 지나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중국에 대한 제 잘못된 첫인상을 지우지 못했을 겁니다. 시내 한복판에 커다란 호수가 있는 도시, 곳곳에 맑은 샘물이 퐁퐁퐁 솟고 있는 도시. 제남은 정말 물의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