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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살이1년>산동성 여행7-태산에서 만난 중국인,중국음식

태산의 역사, 노구의 어깨에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살이 1년] 산동성 여행⑦ - 태산에서 만난 중국인, 중국음식
텍스트만보기   윤영옥(wal0572) 기자   
▲ 태산에 오르는 곳곳, 넓다란 바위에는 모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 윤영옥
중천문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중천문 근처에는 식당과 상점과 호텔이 많습니다. 이제 와서 위로를 하려는 셈인지 꽤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이 평지 덕분에 조금 기고만장해졌나 봅니다. "점심 먹고 갈까요"라는 조 교수님의 제안에 "아뇨, 그냥 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먹죠 뭐"라는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태산님은 저의 이 불손함을 조금도 용서치 않으셨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엄청난 계단을 다시 제 눈앞에 펼쳐 보이셨습니다. 바로 기가 죽어 대답을 수정했습니다. "조 교수님, 점심 먹고 가야겠어요."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관광지의 음식이란 게 다 그러한지, 정말 무성의해 보이는 국수 한 그릇이 나옵니다. 뜨거운 맹물에 면만 말아놓은 것 같은 국수입니다.

정말 조금만 덜 힘들었더라면, 정말 조금만 덜 배고팠더라면 먹지 못했을 겁니다. 간신히 배를 채우고 계단에 발을 디뎠습니다.

태산에 오르면서 약간 실망스러웠던 점은, 산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수려한 한국의 산세에 익숙한 제게 태산은 크기만 하지 황량한 느낌입니다.

만약 한국에 이런 산이 있었다면 별로 인기 없는 산이었을 텐데, 중국인들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먹고 봐야 제맛? 알고 봐야 제멋?

▲ 조그만 매점이지만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 윤영옥
여기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차이가 하나 드러납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을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경관보다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더 중시한답니다. 그래서 장가계(張家界)처럼 절경을 자랑하는 곳은 중국인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에게 더 인기가 많다지요.

태산은 중국의 황제들이 봉선 의식을 지냈던 곳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신앙입니다. 태산에 오르면 영생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어 일생 동안 태산에 한번 오르는 것이 중국인들의 소원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제 눈에는 별로 멋없어 보이는 이 산에 중국인들이 바글바글한 것입니다.

태산을 오르는 길 양 옆을 가득 메우고 있는 붉은 글씨의 바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저는 그 바위들을 보고 '인위적인 힘을 가해 자연 경관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바위에 글을 새기는 그 행위도 태산에 대한 신앙의 발현이었겠지요.

그 바위 글씨들을 구경하면서 걷는다고 해도 힘든 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럴 땐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먹어야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습니까.

그 식후경이 보통은 아무리 좋은 경치도 배가 고프면 소용없으니 먹고 나서 보아야 한다는 '식후경(食後景)'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그게 아니라 아무리 좋은 경치도 모르고 보면 소용없으니 알고 나서 보아야 한다는 '식후경(識後景)'이었다는 얘기도 있지요.

둘 다 여행에 있어서는 매우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이제는 '금강산도 식식후경(識食後景)'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일단 여기에서는 '식후경(食後景)'이라는 말을 따라 태산의 먹거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산에 오르는 길 곳곳에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파는 간이매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간이매점들을 기점으로 쉬었다 가곤 했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드니까요.

그러나 여기에서 파는 것들은 식도락을 즐기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안전한(?) 등산을 위한 실용적인 것들입니다. 수분 섭취에 도움을 주는 오이, 토마토 등의 야채와 수박, 배 같은 과일들을 주로 팝니다.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매점에 도착할 때마다 다른 종류의 것들을 먹으며 올라가는 것도 태산 등정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한 방법이지요.

태산의 별미 소총전병... 파전+크레페

▲ 수박, 복숭아, 오이, 배.. 입맛대로 고르세요.
ⓒ 윤영옥
그것 말고 태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이한 먹을거리는 '소총전병(小蔥煎餠)'이라고 부르는 밀가루부침입니다.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둥글고 널따란 철판을 뜨겁게 달군 뒤에, 그 위에 묽은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퍼 올립니다.

그리고 재빨리 철판을 빙빙 돌리며 납작한 나무틀로 반죽을 얇게 펴서 익힙니다. 그러면 정말 종잇장처럼 얇고 바삭하게 되는데 그 위에 계란을 하나 깨뜨려 같은 방법으로 얇게 펴서 익힙니다.

갈색의 양념의 바른 뒤에, 마지막 하이라이트! '실파'를 하나 끼워서 돌돌 맙니다. '소총'이 바로 실파라는 뜻이지요.

서양의 크레페와 우리나라 파전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합쳐놓은 것 같은, 보기에도 맛없어 보이고 실제로도 맛없는 이 전병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먹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이하다고 한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닙니다. 이 전병이 왜 태산의 대표 먹을거리가 되었느냐는 점입니다. 태산에서 계란이 주로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실파의 주산지가 태산인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파를 넣어 만든 태산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적힌 영어 표지판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던지요.

물이나 맥주, 탄산음료 등 평범한 음료도 팔기는 하지만 정말 특이한 것은 그 음료수들을 실온상태 그대로 판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따뜻한 차를 즐긴다고는 해도 이 더운 날, 뜨거운 땡볕 아래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뜨뜻미지근한 음료수를 어떻게 마시는지.

저희도 정말 목이 마르고 더웠지만 차마 그 음료수에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뜨거운 맥주를 병째 들이켜고, 뜨거운 콜라를 페트병으로 들고 다니며 마시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사뭇 경이롭기까지 했답니다.

▲ 태산의 대표적인 음식, 소총전병
ⓒ 윤영옥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따뜻한 음료수를 먹는 것보다 더 놀라운 건, 내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평소에도 중국인들이 대체로 옷을 두껍게 많이 껴입고 다닌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북경이 겨울에는 워낙 추우니까 그런 거야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제가 태산에 간 날은 정말 한여름 날씨였습니다. 8박 9일의 여행기간 동안 가장 더웠던 날이었지요. 반팔 티셔츠를 입고도 더위를 주체할 수가 없었는데, 내복이라니요. 그 사람들도 물론 사람이기에 더위는 느끼겠지요.

계단에 걸터앉아 바짓단을 걷고 있기는 했지만, 왜 내복은 안 걷고 있는지. 저라면 화장실 가서 당장 벗어버렸을 겁니다.

황당한 건 하의는 내복까지 챙겨 입을 정도로 보수적이면서 상의는 왜 이렇게 개방적인 겁니까. 청년이건 아저씨건 할아버지건 너나없이 웃통을 벗고 다니는 바람에 심히 괴로웠습니다.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이 광경을 보고 놀랄 외국인들을 걱정하여, 웃통을 벗지 말자고 국가적인 캠페인까지 했다는데 캠페인의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나 보네요.

노쇠한 몸으로 무거운 짐 지고 태산을 오르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태산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중국인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들은 바로 이들입니다. 태산 위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

이들은 장대를 어깨에 메고 그 장대 양끝에 물건을 매달아 산 위로 나릅니다. 온통 계단이니 수레를 이용할 수도 없지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 몸으로 오르기 힘든 이 길을, 딱 한 번만 오르는 것도 힘든 이 길을,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도 오르기 힘든 이 길을, 그들은 노쇠한 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 같이 오르내립니다.

제가 쉬는 사이, 짐꾼 아저씨 한 분이 제 앞에 앉아 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어깨를 보았지요. 까맣게 죽어버린 딱딱하게 굳은 피부는 이미 사람의 살이 아닙니다. 그분이 살아온 생의 흔적이며 노동의 역사입니다.

저보다 나중에 앉아 쉬셨는데 저보다 먼저 일어나 다시 짐을 메고 산을 오르십니다. 걷어 올린 바짓단 아래로 보이는 울퉁불퉁한 종아리는 이미 사람의 근육이 아닙니다. 생을 향한 치열한 의지이며 강인한 생명력입니다.

삶이란 이렇게 슬프고도 숭고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