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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뚜벅이

중국살이1년>산동성 여행2-제남 산동성 박물관

어리석은 후손들을 용서하소서
[중국살이 1년] 산동성 여행② - 제남 산동성 박물관
텍스트만보기   윤영옥(wal0572) 기자   
제남에서의 밤은 무척이나 편안했습니다 …라고 첫머리를 시작하고 싶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숙소가 기차역과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서 밤새 얼마나 시끄럽던지. 열차가 도착할 시간 즈음 기차역 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택시들의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그 소음 덕분에 하루의 시작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었지요.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으러 갔습니다. 중국인들이 흔히 먹는 빵과 만두, 몇 가지 야채볶음, 쌀죽과 좁쌀죽이 차려져 있습니다. 뷔페식이라 하나씩은 다 먹어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조금씩 전부 음식을 담아왔습니다만, 곧 후회했습니다. 저 웬만해서는 음식 안 가립니다. 중국에 처음 온 날부터, 다른 교수님들은 잘 드시지 못하는 중국 음식들도 척척 먹어치웠던 접니다. 비둘기 위장 요리도 먹은 제가 못 먹을 게 뭐 있겠습니까. 하지만 음식 메뉴를 떠나 맛이 문제입니다. 무료라서 용서했습니다.

▲ 산동성박물관 전경입니다.
ⓒ 윤영옥
제일 먼저 산동성박물관(山東省博物館)으로 향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아직 개관 전이었지요. 중국에서 어디를 가든 개관 전에 도착하기는 처음입니다.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일찍 출발한다 해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이기 일쑤였으니까요. 정문 앞에 저희 말고도 학생들 여러 명이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제가 일행에게 뭐라고 한마디를 하자, 갑자기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저희를 향합니다. 그리고 서로 수군댑니다.

"한국인이야, 한국인."

이번 여행 중에 이렇게 시선 집중을 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중국에는 한국인이 워낙 많아 이제는 신기하지 않을 법도 한데,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되는 걸 보면 아직까지도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은 낯선 존재인 모양입니다.

산동성박물관에 갈 때는 화장을 하지 마라?

▲ 소수민족복식전 전시실 입구
ⓒ 윤영옥
매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인표는 20위안, 학생표는 10위안입니다. 저도 물론 아직은 젊지만, '젊어서 놀라'는 말은 '학생일 때 놀라'는 말로 바꾸면 건강 상태의 유리함뿐 아니라 여행 경비 절감까지도 포괄하는, 무척이나 경제적인(?) 명제인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이 아닌데도 학생표를 사게 되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표 두 장 주세요."
"학생이에요?"
"학생 아닌데요."
"그냥 학생표로 줄게요."
"예? 저 학생 아니라니까요."
"얼굴이 학생 같으니까 그냥 학생표 값만 내고 어른표로 가져가요."

이런 어처구니없이 고마우신 매표 아줌마의 인심으로 10위안을 절약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저는 절대로 동안(童顔)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는 대학생으로 오인 받았을 만큼 좋게 말하자면 성숙한 얼굴이지요. 다만 중국에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본다면, 중국인들은 화장을 하지 않은 한국 여자를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자, 산동성박물관에 가시는 한국 여성분들~ 맨얼굴로 가세요. 운 좋으면 10위안을 아낄 수도 있습니다.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항상 기대에 못 미치는 중국의 '박물관'들

▲ 소수민족들은 저마다 뚜렷한 특색의 복식을 자랑합니다.
ⓒ 윤영옥
박물관은 현재 1층과 2층, 지하 전시실 하나가 관람 가능했습니다. 1층에는 신석기와 청동기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실, 침몰한 배를 건져 올려 그 배와 내부 물건을 전시한 전시실, 동식물 화석 전시실, 동물 박제 전시실이 있습니다. 1층의 오른쪽 전시실은 어느 대학교 디자인과의 졸업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2층에는 각 시대별 동전을 전시하는 곳이 있는데, 이 박물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입니다. 북경에 있는 '고대동전박물관'에서 고대 동전은 하나도 보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지라 더욱 반가웠지요.

ⓒ 윤영옥
동전 전시실 옆은 소수민족 복식 특별전 전시실입니다. 박물관 내 전시실 중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옷이며 신발, 머리 모양, 장신구 등이 매우 화려하면서도 독특합니다. 어떤 것들은 지금 입고 다녀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유독 마음에 들어 했던 신발이 있었는데 같이 간 교수님께서 저거 사주면 정말로 신고 다닐 거냐고 놀리셨던 걸로 보아 그건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퀼트와 자수로 화려하게 꾸며진 허리 장식
ⓒ 윤영옥
지하 전시실은 돌을 재료로 한 비석이나 향로, 부조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계속 탁본을 뜨고 있고, 한쪽에서는 기계 소리 요란하게 공사 중이어서 도저히 관람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 전시실의 관리인이 우리를 따라 다니며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소음 때문에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지요.

일행과 상의 끝에 다음 예정지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걸어 나오는데, 맘이 그다지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박물관에서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는 뿌듯함이 적습니다. 산동성박물관에 대한 제 느낌은 이렇습니다.

위대한 흔적 제대로 관리 못하는 중국인을 탓해야

▲ 섬세한 은장식
ⓒ 윤영옥
산동성박물관은 중국에 있는 성립(省立) 박물관으로서는 '최초의' 혹은 '최대의'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최초'인지 '최대'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후에 이어질 기사에서 언급되겠지만, 중간에 가이드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최초'라고 한다면 맨 처음이라는 의미가 담긴 곳을 보았다는 걸로 그나마 만족하겠으나, 만약 '최대'의 박물관이라면 조금은 실망입니다.

예전에 중국국가박물관을 다룬 기사에도 썼지만, 뭐든지 엄청난 크기와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유독 박물관만은 사람의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전시되어 있는 유물의 양과 종류, 전시 방식, 관리 등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칩니다.

▲ 지하 석조각 전시실 입구
ⓒ 윤영옥
일단 성급한 일반화는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중국의 모든 박물관을 본 것이 아닌 이상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보았던 중국국가박물관, 고대동전박물관, 왕부정구석기박물관, 그리고 이곳 산동성박물관은 모두 하나같이 제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중국의 유물들이 험난한 역사적 시련을 겪으면서 많이 소실되고 수탈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아무리 이러저러한 상황을 감안한다고 해도 한 개 성(省)의 면적이 우리나라 전체 면적보다 넓은 중국의 박물관들이 그토록 초라한 것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선조(先祖)가 잘나고 못났음이 어디 후손들의 선택이겠습니까마는, 어찌됐건 조상이 과거의 중국땅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다는 것은 그리하여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다는 것은 현재의 중국이 받은 천혜임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위대한 흔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범하고 있는 어리석음이라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 처마 밑 장식이 하늘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 윤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