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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살이1년>산동성 여행1-제남 천성광장

'제남의 응접실' 천성광장에 가다
[중국살이 1년]산동성 여행① - 제남 천성광장
텍스트만보기   윤영옥(wal0572) 기자   
드디어 중국의 노동절 휴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국경절 휴가를 기숙사에서만 보낸 탓에 이번 노동절 휴가를 무척이나 기다렸지요.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국경일 하루만 드문드문 쉬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세 번, 1월 1일 춘절, 5월 1일 노동절, 10월 1일 국경절을 전후로 하여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한꺼번에 쉽니다.

이때는 그야말로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시기이지요. 제가 여행지로 산동성(山東省)을 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항주, 소주나 상해처럼 인기 많은 지방을 간다고 상상만 해도, 사람들에 떠밀려 다닐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니까요. 그나마 인기 없는(?) 곳엘 가야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저의 이런 계산은 정말 딱 맞았답니다.

휴강하고 기차여행을 떠나다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는 4월 28일 오후부터 휴가입니다. 오전 수업까지만 하면 되는데, 그 오전 수업마저도 너무 하기 싫어서 이런 날은 휴강하면 안 되냐고 투덜거렸지만, 중국의 대학에서는 교수 재량껏 자기 수업을 휴강하거나 일찍 끝내는 게 전혀 허용이 안 된다고 합니다(2~3분 일찍 끝나는 것도 트집을 잡더군요. 보충 수업을 해주는 것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으면서요).

하지만 제 의사와는 별개로 휴강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생이 한 명밖에 오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그 학생은 조선족이라 한국말을 잘 하기 때문에 제가 수업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숙소로 올라와 짐을 꾸려 길을 나섰습니다.

제가 타야할 기차는 오후 1시 26분발 제남(濟南)행 열차. 첫 목적지는 제남입니다. 중국 기차의 연와(軟臥:푹신한 침대칸)는 처음 타보는 거라 기대가 됩니다.

▲ 푹신한 침대칸의 복도와 내부
ⓒ 윤영옥
차장에게 표를 보여주고 열차에 오르니, 복도를 따라 작은 방들이 보입니다. 경와(硬臥:딱딱한 침대칸)와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네요. 경와에는 문이 없거든요. 칸막이 없이 뻥 뚫려서 침대만 놓여있었지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담한 2층 침대가 마주보고 있습니다. 경와는 3층 침대였는데, 확실히 연와가 더 편안해 보입니다. 두 개의 침대 사이에는 테이블도 있고 창문 위에는 TV도 있습니다. 한국 상표가 선명하게 찍힌 TV. 중국의 기차 안에도 한국이 있습니다.

▲ 기차가 출발할 때, 차장은 돌아다니며 표를 걷어가고 이와 같은 플라스틱 표를 줍니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 다시 차장이 기차표와 이 교환증을 바꾸어갑니다.
ⓒ 윤영옥
저와 제 일행은 침대 위쪽이었고, 아래 칸에는 중국인 노부부가 들어오셨습니다. 저희들이 한국어로 얘기하는 게 신기하신지 계속 쳐다보십니다.

기차에서 속옷만 입고 주무셨어요?

기차가 출발하자 저는 잠이 들었고 한참 자고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창밖으로 푸른 생명들이 스칩니다. 북경에서는 출발하는 날까지도 날이 쌀쌀해서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야 했고, 워낙 먼지가 많아 봄이 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남쪽으로 내려가니 완연한 봄입니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까. 도착할 때가 되었다며 차장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표를 돌려줍니다(처음에 기차가 출발하면 차장이 표를 걷어가고, 교환증을 하나씩 나누어줍니다). 이제 가방을 챙기고 벗어두었던 외투를 입는 등 주섬주섬 내릴 채비를 하는데, 아래층 할아버지의 내릴 채비는 외투를 입는 수준이 아닙니다.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으시고…….

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속옷만 입고 주무셨던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낯선 사람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도 맨발에 잠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숙소 계단에서는 팬티만 입고 밖에 나가시는 분도 본 적이 있고,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딱 달라붙는 쫄쫄이(?) 내복만 입고 다니는 부부도 보았습니다.

아무리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부끄러운 것'과 '당연한 것'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둘이 만나는 선을 '예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중국에서 산 지 아직은 1년이 채 안 된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중국은 그 '예의'의 수위는 한국에 비해 한참 낮은 듯합니다.

'제남의 응접실' 천성광장에 가다

▲ 제남 역 전경입니다.
ⓒ 윤영옥
제남 역에 도착했습니다. 출구는 크지 않았지만, 역 바로 앞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아 여간 혼잡한 게 아닙니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어, 서둘러 숙소를 잡았습니다.

오늘 묵을 숙소는 '우정빈관(郵政賓館)'입니다. 우정빈관은 중국 우체국에서 운영하는 전국적인 체인망(?)의 호텔입니다. 하지만 우정빈관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시설이나 숙박비 등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이곳 제남 이후에 곡부(曲阜)에서도 뜻하지 않게 우정빈관에 묵게 되었습니다. 한 번 묵었던 곳이라 이름이 익숙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중국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니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작용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국의 우정빈관을 순례해볼까라는 '장난 섞인' 농담의 '장난 섞인' 실천에 있었답니다.

▲ 제남의 우정빈관, 기차역과 매우 가깝습니다.
ⓒ 윤영옥
숙소에 짐을 풀고 천성광장으로 갔습니다. 크고 높은 건물들이 많습니다. 제남은 산동성의 성도(省都)로서 2004년 중국아시안컵축구대회가 열렸던 곳입니다. 도시 구석구석에 샘이 많아 '샘의 도시', '물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천성광장은 제남의 중심에 위치한 광장으로서, '제남의 응접실'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으며 유네스코에 의해 국제예술의 광장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광장 주변에는 각종 쇼핑몰들이 밀집해 있고, 바로 앞에는 샘의 도시 제남에서도 가장 최고로 뽑히는 샘인 '표돌천'이 있어 그야말로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 천성광장에 있는 샘의 상징탑
ⓒ 윤영옥
광장이 가까워오자, 아름다운 파란 빛의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조명을 받아 탑도 빛을 발하는 듯합니다. 이 탑은 샘물을 상징화한 것이랍니다. 하지만 이 탑은 밝은 날에는 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밤에는 무척 아름답다고 여겼던 그 파란색이 낮에 다시 보니 어찌나 촌스러운지. 밤에 먼저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광장의 밤은 아름다웠다

밤이 되었지만 광장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습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 아이들 손을 잡고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각기 목적은 다르지만 즐거운 마음은 하나입니다.

광장 한쪽에는 물로 서예를 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을 합니다. 이렇게 스펀지 붓에 물을 적셔 글씨를 쓰는 것을 '지서(地書)'라고 하는데, 글씨 연습도 할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취미생활이라고 합니다. 지서는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공원이나 광장 어디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여가활동입니다.

▲ 스펀지 붓으로 글씨를 쓰는 지서
ⓒ 윤영옥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여러 쌍의 남녀들이 춤을 춥니다. 우리가 흔히 볼룸댄스나 스포츠댄스라고 부르는 춤이지요. 중국에서는 이렇게 춤을 추는 것이 아주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도 주말이 되면 광장에 학생들이 모여 다 같이 춤을 추지요. 한국에서는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이 춤을 즐기는 데 반해 중국에서는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것이 아주 일반적입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 스포츠 댄스나 살사, 플라멩코 등 춤 배우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는데, 그런 저를 '특이한 애', '별난 애' 취급하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중국에 와서 부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이렇게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분위기였답니다.

▲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분수
ⓒ 윤영옥
탑도, 사람들도 아름답지만 천성광장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연꽃모양의 음악분수입니다. 저희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음악분수 쇼가 한창 진행 중이었죠. 음악분수를 틀어주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사실 저는 이 광장에 음악분수가 있는지도 그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무작정 간 거였는데 이토록 시간을 잘 맞추다니. 제가 늘 말하듯이, 역시 제 여행길에는 저를 보살펴주시는 '길의 신'이 계신다니까요. 앞으로 남은 여드레 동안에도 저를 잘 보살펴 주시겠지요?

▲ 상징탑과 연꽃모양 분수
ⓒ 윤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