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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친구들

[스크랩] Salvador Dali 의 작품세계 -22-

 

달리의 이미지는 비록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자유 연상에 의해 표현된다. 1926년 마드리드 미술학교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고딕식의 성모 마리아를 충실하게 그려올 것을 과제로 내 주었을 때 젊은 실바도르는 선생님이 요구한 성모의 모습이 아니라 상품광고 카다로그에 나타난 모델과 저울을 그렸다. 이는 "분출되는 이미지의 갑작스러운 오브제로의 변신, 물신 숭배를 의미하는 주술적, 시각적 환영"의 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때때로 달리는 꿈을 거의 문학적으로 그렸는데 그러한 작품들은 잠에서 깨어나 캔버스에 옮기려 분투하는 화가에 의해서 기억되어져 다소 근거가 확실한 플롯으로 구성된 환영들이다. 종종 이러한 그림에서는 환영의 증인과도 같은 어린 소년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유년 시절로 회귀하려는 화가의 꿈과 잠재 의식의 비유로 나타난다.




▲ 부분적인 환상, 피아노 위의 6개 레닌 유령, 1931

달리의 대표적 이미지들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앵두는 '시간의 신비로움'을 의미하며 개미는 덧없는 운명의 상징이다. 화가 자신의 이야기에 의하면, 피아노 위의 레닌의 흉상의 연속은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머리에 떠오른 황혼녘의 환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섹스-어필의 유령, 1934

어린 달리는 거의 주체할 수도 없는 목발을 한 늙은 노파의 신체를 바라보고 있다. 그 노파의 상체 부분은 거대한 소세지로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하여 모든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대립된 죽음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목발은 때로 달리의 회화 세계에서의 성불구를 상징한다.






▲ 두 개의 보삭 브로치, 1941

달리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소재로, 시각과 미각이 눈과 입 모양을 한 두 개의 보석으로 요약되었다.




▲ 잠에서 깨기 직전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꿀벌에 의해 야기된 꿈, 1944

아주 먹음직스러운 음식물-갈라-위로 덤벼들고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는 꿈 속에서 벌의 이미지이다. 착검을 한 장총은 분명히 곤충의 위협적인 찌름을 암시하고 있다. 에로티시즘이 폭력적인 연회장으로 달리의 작품에 다시등장하고 있다.




▲ 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 1950

편집광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를 재창조하여 카다케스 해변의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표현하였다.




▲ 히틀러의 수수께끼, 1937

그림의 침투할 수 없는 신비스러움은 딱딱한 요소인 전화나 우산, 부드러운 요소인 접시 위의 삶아진 강낭콩의 대립 안에서 융화된다. 전화는 달리의 회화 언어 안에서 조개와 꼭 닮게 그려져 있다. 조개는 딱딱한 껍질과 부드러운 살을 갖고 있듯이 전화기 역시 조개처럼 겉모양과 내용이 다르다.

달리는 열 살 때 피게라스 근처의 농가인 몰리 데 라 토라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는데 이곳은 음악가이자 예술가 집안인 피조트 가의 소유로, 달리는 이 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한다. 이 때 그는 라몬 피조트를 통하여 인상주의와 19세기 말 프랑스 회화를 알 게 되었다. 이같은 연관으로 달리는 몇 년 후 그의 가족 중 할머니와 누나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카다케스의 해변 풍경과 그 주위 환경들을 많이 그렸다. 이런 소재는 그의 긴 화업을 통하여 사라지지 않는데 어린 시절 달리의 기억 속의 풍경과 주위 상황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는 이런 류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여러 가지 기법을 서로 비교하여 사용하였다. 그 당시 카탈루냐 지방의 회화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무엇보다도 그의 묘사력이 탁월했으며 재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이미 청년기에 이르기도 전에 구성에 있어서 숙련된 솜씨를 보여주었다. 1925년과 1926년, 아직 2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로 바르셀로나에서 아주 지명도 있는 달마우 화랑에서 그에게 두 번의 첫 개인전을 개최해 준 것도 우연은 아니다.




▲ 이젤 앞에 있는 달리의 자화상, 카다케스, 1919

달리의 첫 번째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는 두텁고 풍부한 질감의 사용에 있어 숙달된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그림이 성숙해짐에 따라 포기하게 되는데 드로잉을 더욱 중시여기는 엄격하고 정확한 표현 기법들을 선호하게 된다.




▲ 엘 야네의 수욕도, 1923

엘 야네는 카다케스 해변 선박창고로서 그 주변에 달리의 집이 있었다. 이 자가품은 그 때까지 지속되는 라몬 피조트의 영향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개인적인 양식이 나타난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지배하고 있는 고전주의적인 경향은 피카소와 같은 표현 방법으로 보인다.




▲ 라파엘 풍의 긴 목을 가진 자화상, 1920~1921

달리는 스승인 피조트로부터 주황색과 보라색의 병치 기법을 배웠는데, 이런 색상들은 초기 작품에서 많이 사용된다. 자화상의 신비적인 모습은 라파엘에 동화된 상징주의적 느낌을 준다. 달리의 특별한 성격인 깊은 에고이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몇 년이 지나면 이러한 성격은 그의 편집광적인 표현을 형성하는 열쇄가 된다.




▲ 등을 보이고 앉은 소녀 (안나 마리아), 1925




▲ 창가에 서 있는 소녀, 1925

달리의 여동생 안나 마리아의 두 초상화는 1925년의 전시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이 전시회에는 파카소도 방문하였다. 정확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색조는 이 시기의 몇몇 글에서 논의되었던 "성스러운 객관성"이라는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감상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주제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로부터 차용된 것인데 불과 일 년 후 초현실주의의 그림 안에서 왕성하게 표현되는 꿈의 해방을 예고하는 것이다.




▲ 곱슬머리 소녀, 1926




▲ 절벽 (바위 위에 앉아있는 여인), 1926

달리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등장하는 암푸르단 평원이나 이 그림에서 표현한 카다케스 부근의 노르페우 케이프와 같은 친숙한 풍경들은 이 시기에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시각하에 환영의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1921년 마드리드에 와서 달리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에 의해 도입된 미술의 신경향을 잘 알 게 되었다. 그는 부엇보다도 입체주의에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후안 그리의 회화에 큰 관심을 가졌다. 젊은 화가로서 아방가르드의 어머격한 훈련과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상해 할 일은 아니다. 아방가르드에 대한 충동은 마드리드 학생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과 공유하였다. 루이스 부뉴엘, 페르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그들인데 이들은 너무나 열정적이어서 혼란스러울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달리는 입체주의의 회화적 실험을 계속 하면서도 피카소의 유사한 형식의 육중한 인물들이 표현된 고전주의적 경향과 지중해적 풍경화풍 역시 포기하지 않는데 그는 1926년 첫 파리 여행 동안 존경하는 파카소를 방문하게 된다.




▲ 비너스와 어린 큐피드, 1925

불확실한 신화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장면은 이 시기 피카소에 의해 실행되었던 지중해적 고전주의와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달리는 아직까지도 이런 종류의 주제를 큐비즘의 기법과 더 나아가 인상주의의 풍경화 기법으로 신중히 실험하고 대치시키고 있다.


 

▲ 입체주의적 자화상, 1926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 달리가 사용한 모델들은 1910년 피카소에 의해서 그려진 칸바일러나 볼라르드의 초상 작품을 기억나게 한다.


 

▲ 알게르 항구, 1924

피카소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뚜렷한 영향은 무엇보다도 사실성이 뛰어난 회화적 기법 습득과 세련된 표현 방법의 수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감과 공간, 형상과 색채의 질서정연하고 통제된 배치는 특정한 양식을 뛰어너머 매우 탁월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 비너스와 어부(살바트-파파세트에 대한 경의), 1926


 

▲ 바르셀로나의 인형, 1927

불과 일 년의 세월이 이 두 그림을 가르고 있다. 이 그림들 안에서 인간의 형상들은 큐비즘적 요소가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그림에서의 마네킹과 미래주의에서 유래된 기계-인물(형상)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초현시리주의에 감염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화가의 아버지의 초상, 1925

"아름다운 형태란 둥근 모습의 수직적 평면이다. 아름다운 형태는 완고함과 충만함을 가지고 있는 그런 형태들로, 세부 묘사들이 커다란 덩어리의 양감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앵그르의 이 어구는 달리가 1925년 바르셀로나 달마우 화랑의 전시에서 이 작품을 비유로 나타내기 위하여 인용한 말이다.

비록 1929년까지 브르통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초현실주의는 오래전부터 달리의 그림에 정착되어 있었다. 이런 경향은 <썩은 당나귀>, <세니시타스>, 또는 <피는 꿀보다 더 달콤하다>라는 작품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름의 시작>으로 증명된다. 달리의 전형적인 주제는 부패나 음식물과 같은 주제가 이미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며, 조르조 데 키리코와 발로리 플라스티시와 같은 형이상학적 작품을 제작한 이탈리아 화가의 영향이 느껴진다. 달리는 존경과 환영을 받으며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의 대열에 합류하였고 곧 그룹안에서 가장 탁월한 화가로 변모하였다. 1929년 파리의 카미유 괴망스 화랑에서 열린 첫 전시와, 같은 해 <안달루시아의 개>의 첫 상영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성공적인 화가로서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달빛 아래의 정물화, 1927

달리는 탁자 위에 놓인 두상과 화병, 또는 물고기와 괴상한 기타와 같은 초현실주의적 전통의 요소를 도입시키기 위해 큐비즘적 화면을 이용하고 있다. 달은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세계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로 직각으로 배치된 두 개의 선을 통하여 우리의 시선을 펜으로 인도하는데 이 펜은 시인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 소름의 시작, 1928

초기 작품들 중에서 완전히 초현시리주의적인 성향을 띤 작품 중의 하나. 달걀 노른자처럼 끈끈하고 내장과 같이 부드러운 형태는 도망가는 선들, 글자, 그리고 숫자에 의해 표현된 엄격한 기하학적 공간의 도식 안에서 분배된다. 사물들의 정확한 표현과 재현된 내용 안에서의 비현실성의 혼합은 달리의 이후 모든 작품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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