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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행기 1 - 4

by 인천싸나이 2005. 12. 6.
티벳에 갈려고 하던 이유는 단순한 여행이었었다.남들이 말하는 비경의 대지, 순 수와 초자연의 땅 등등이 이유라면 이유였었다. 그러나 티벳에 관심을 가지고 그 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알게 되면서 내 생각들이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것을 느끼 게 되었다. 식민지의 국가의 후예로 태어나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티벳인 들의 수난사. 포틴 달라이 라마, 티벳 불교의 현실적인 이론 등. 티벳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티벳 해방운동에 뛰어 들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 성하의 무한한 자비심에 편승하는 무리들과도 스스로 적이 되었다. 나에게는 분노, 그 자체만이 남았을 뿐이다. 겨레 와 그 땅을 노략질하고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그들을 용서 한다는 달라이 라마 성 하의 말씀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달라이 라마 성하가 아니다. 또 모든 티벳인들이 달라이 라마 성하가 아니다. 티벳인들의 얼굴을 본 적인 있는 가? 티벳인 앞에 선 이가 한족이라면 굳어지는 그들의 표정을. 달라이 라마성하만 이 그들 앞에서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유일한 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달라이 라마처럼 말씀 하시고 행동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들에겐 분노할만한 인격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라이 라마성 하가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하더라도 그에게도 한족들에 대한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 인간적인 고뇌없이 불교철학(지혜의 완성인 '프라즈나파라미타', 중도 철학인 ' 마드야미카', 사원법규인 '비나야', 형이상학인'아비다르마', 그리고 논리학과 인식 학인 '프라마나')을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니. 그 인간의 원초성을 뛰어 넘지 않았 다면 그런 그의 모든 어록은 불태워져야 될 허무맹랑한 잡소리일 것이다. 그에게도 인간적인 삶이 있었다. 인간적인 삶에서의 이름은 라마 톤둡(소원을 성취 시켜주는 여신이란 뜻)이었다. 그런 그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명명되는 달라이 라마로 되 는 과정에서 티벳이란 나라의 국호를 빼앗기고 그가 다스리는 백성들의 수 많은 죽 음 앞에서 고뇌하지 않았다면, 분노하지 않았다면 티벳 불교의 실체는 사라졌을 것 이다. 아무튼 달라이 라마의 티칭에 너무 경직된 사고방식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분노하라! 분노하라! 분노하라!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라. 분노존 마하깔라의 가르침 이 그들에게 펼칠 수 있을 때까지 분노하고, 분노하여야 한다.

티벳 불교를 믿는 혹은 평화로운 정신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티벳의 문제를 호도( 糊塗)시키고 있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다시 일제시대로 돌아간다면 티벳 불교 아니, 달라이 라마 성하를 따르는 무리들은 누구를 위해 기도 하겠는가? 달라이 라마 성하처럼 그들을 용서하며 시대의 과정일 뿐이라고 자위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렇게는 못살겠다. 차라리 일본군 헌병의 등짝에 칼을 꽂 아 버리고 말지 헌병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의 해방 투쟁은 많은 적을 만들었다. 개인(더군다나 외국인이며 사대주의 외교를 펼치는 작금의 한국 땅에서)이 이루어낼 수 있는 가치는 보잘 것 없지만 나름대로 그들을 위 해 투쟁하며 산 것이 티벳여행을 적극적으로 이루어내 준 동기이기도 해서 장황하지만 두서없이 적어 보았다.

티벳에 가서 무엇을 볼 것인가는 각자의 여행 패턴과 티벳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변화되고 다양성을 가질 것이다. 우선적인 나의 티벳 여행의 목적은 내 가 사랑하는 나라 '네팔'을 육로로 가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티벳 해방운동을 하 면서 부닥치던 현실적인 문제, 티벳의 현실을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 다. 이 두가지 이유가 나를 티벳으로 보내준 것이다.

히말라야지역전문가변방의지킴이응암불패.

출처 :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글쓴이 : 히말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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