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래와 도전]<5>불붙은 에너지
확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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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석유발견 기념
조형물 중국과 인도 등 거대인구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가 고속성장하면서 자원부국에서는 국가 간 자원확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오일달러가 몰려들고 있는 카자흐스탄 아티라우의 평원지역에 석유 발견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아티라우(카자흐스탄)=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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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 시내에 있는 국영석유회사 카즈무나이가스 본사.
어렵게 만난 수석변호사 바티르 알림자노프 씨는 “3년 전만 해도 회사에 변호사가 4명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밀려드는 투자 상담으로 40명의
변호사가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국의 에너지 관계자들이 몰려와 유전 개발권을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외국의 장관급 인사가 카즈무나이가스를 방문해도 2, 3개월 전에 약속을 하지 않으면 사장 면담이 어려울 정도였다.》
● 신흥 석유부국 카자흐스탄
‘석유의 바다’ 카스피 해 연안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대형 유전이 속속 발견되면서 신흥 석유 부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추정 매장량 600억
배럴인 카샤간 유전은 지난 30년간 발견된 유전 중 세계 최대 규모다.
새로운 유전이 계속 개발되면서 아스타나는 물론 인근 도시들도 밀려드는 오일 머니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인구 20여만 명의
아티라우에는 셰브론텍사코, 셸, BP 등 석유 메이저들을 포함해 330여 개의 외국 법인이 진출해 유전지대에서 시추와 탐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뿐 아니라 각국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은 주카자흐스탄 대사관에 에너지 문제를 전담하는
‘자원관’까지 두고 있다. 태석원(太錫源) 주카자흐스탄 한국대사는 “대사 모임에 가면 유전 개발에 관한 대화가 빠지지 않지만 누구도 협상이 진행
중인 광구 수, 지분, 매장량 등 민감한 정보는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야
“뭐라고요? 인도가 마함베트 지역의 광구를 달라고 했다고요?”
지난달 18일 밤 한국석유공사 카스피 해 대책반. 카자흐스탄 현지 사무소에서 긴급 보고가 들어오자 비상이 걸렸다. 석유공사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은 지난 3년 동안 카자흐스탄 정부와 카즈무나이가스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끝에 마함베트의 잠빌 광구개발에 대한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막바지 협상을 벌여 왔다. 그런데 인도가 뛰어들면서 변수가 생기자 긴장한 것.
곽정일(郭禎一)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사무소장은 “본계약 체결 전까지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다”며 “최근 중국과 인도가 상상도 하기 힘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에너지 확보 경쟁에 뛰어들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1인당 평균 원유 소비량은 연간 1.7배럴, 인도는 0.7배럴. 일본과 한국의 17배럴, 미국의 28배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따라 인구 13억 명인 중국과 10억7000만 명인 인도의 원유 소비량이 급증할 경우
세계 에너지시장에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 2위 응찰자보다 40% 더 불러
중국은 이미 세계 에너지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 잡았다. 2002년 아제르바이잔의 유전 2개를 2위 응찰자가 제시한 것보다 40%나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2003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카샤간 유전 지분 16.67%를 12억3000만 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가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기존 컨소시엄 참여국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도 있다.
44개에 이르는 해외 석유 및 천연가스 기지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의 국영석유회사(CNPC)는 2020년까지 해외 자원 확보에 180억
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8%에 이르면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인도도 해외 유전 및 가스 개발에
25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중국의 하루 평균 석유 소비량이 올해 690만 배럴에서 2010년 760만 배럴, 2015년 920만 배럴,
2020년 1100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2003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 소비 대국으로 올라섰다.
● 테러지원국과도 거래
에너지 확보가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각국 정상들도 직접 나서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러시아를 두
차례나 방문해 러시아 송유관의 종착지를 당초 예정된 중국 쪽에서 일본과 가까운 러시아의 나홋카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당근’으로 제안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2003년 6월에 이어 올해 7월 다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다.
에너지 문제는 국가 간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국제 현안에 대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일본도 유전개발 문제에 관한 한
양보가 없다. 일본은 지난해 2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불편한 사이인 이란과 아자데간 유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도 미국이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한 수단에서 경제 지원을 앞세워 3개의 유전을 확보했다. 지난달 인도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인도와 이란과의 천연가스관 사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인도는 이 사업에서 손을 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 아시아가 에너지전쟁 진앙지
급성장하는 아시아는 세계 에너지전쟁의 ‘진원지’다.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도 아시아 국가들의 원유 수요 급증이 주요인 중 하나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홍콩사무소에 일하는 한 중국인 투자분석가는 “중국이 국제 원자재시장에서 모든 자원을 다 먹어치우고 있다”며 “석유 석탄 철강 등
원자재 가격 결정에 ‘아시아 요인’은 이제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석유전문가인 매튜 에먼 씨는 미국의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에서 “앞으로 미국과 중국은 석유에 대한 이해관계가 결정적으로 대립할
때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카자흐 신흥도시 아티라우▼
“석유사업 때문에 오셨죠? 손님에게 적합한 호텔로 안내하겠습니다.”
눈과 흙먼지가 뒤섞인 세찬 바람을 맞으며 아티라우 공항을 나서자 30대의 택시운전사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현대식 사무실 빌딩과
화려한 호텔, 고급 빌라촌이 들어찬 아티라우 시는 중앙아시아의 여느 도시와는 달랐다. 석유가 이런 번영을 가져다줬다.
아티라우 시 중심을 가르는 우랄 강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 이 우랄 강 하류에 ‘석유의 바다’로 불리는 카스피 해가 있다. 카스피
해와 가장 긴 해안선을 접하고 있는 아티라우 주(州)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를 떠올릴 만큼 해외에서 오일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곳의 한 주민은 “외국인과 부자가 많아지면서 아티라우의 물가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비싸졌다”며 “아파트 가격이 5년 전에 비해
1000배나 오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아티라우에는 일자리를 찾아 인근 국가인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사람들까지 몰려오고 있다. 정유공장 건설 공사장에서 하루에
1000텡게(약 7700원)를 받고 일하는 우즈베키스탄인 암바르(45) 씨는 얼마 전 아들까지 불러들여 함께 일하고 있다.
고속성장에 따른 그늘도 없지 않지만 아티라우엔 활기가 넘친다. 아티라우 석유가스대학에 재학 중인 미라스 슈마이포프(21) 씨는 졸업 후
외국계 석유회사에 다니는 것이 꿈이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봄만 되면 눈이 녹아 모든 길이 진흙탕으로 변했는데 요즘은 길도 깨끗해지고
도시도 밝아졌다”며 “10년 후면 우리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의 부자 나라처럼 잘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명단▼
▽경제부=권순활 차장
공종식 기자
차지완 기자
▽국제부=김창혁 차장
이호갑 기자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박원재 도쿄특파원
김승련 워싱턴특파원
▽사회부=유재동 기자
▽교육생활부=길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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