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기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분명 체코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체코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거닐었던 어느 골목 안에 카프카의 생가가 있었을 것이며, 미로를 벗어나 다다른 구시청사 앞 천문 시계는 그 어떤 스토리로 인해 꽤나 유명한 시계였던 듯도 싶다. 이상하게도 거의 이틀 동안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건만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서도 그 때 그 풍경들이 왜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지난 글에서도 슬쩍 언급한 내 여행에의 새로운 시도, 즉 가이드북과 지도로 부터의 자유로움이 프라하에 머물던 나흘의 시간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사는 곳에서 조차 이웃 모르는 곳을 한 번 찾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동반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물설고 낯선 남의 땅에서 그 고단함을 며칠 동안 가져야 한다는 것에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삶의 구속과 관계, 스스로의 억누름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떠나온 여행지에서 가이드북과 지도로 상징되는 그 어떤 욕구에 의해 또 다시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특별히 무언가를 얻을 것도 없고, 얻는다 한들 내 삶에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니라면 길을 따라 걷다가 다리 멈추는 곳에서 쉼표를 찍는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체코에서 나는 그리했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부분으로서의 체코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대신 마치 환상적인 파티를 끝내고 났을 때의 그 어떤 아련한 충족감과 여운을 기분좋게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체코를 본 것이 아니라 체코에 취해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하다. 꿈결 같기도 하고 마술 같기도 한 그 어떤 기운에 취해 있었고, 체코의 맥주에 늘 취해 있었으며, 발바닥으로부터 온몸의 감각에 전해져 오는 고풍스런 돌길의 둔탁함에 취했고, 중세 어느 때 쯤 보헤미안 소녀가 랩소디를 부르다 쉬었음직한 그 쉼목에서 휴식과 함께 취했고, 교회에서 울리는 천상의 음악들에 넋을 놓고 취해 있었다.
프라하성에서 나와 실내 정원과 앤티크한 가구들이 잘 어울리는 아담한 레스토랑에 들어갔었다. 백 년은 익히 넘었을 나무 탁자 위에는 세월의 더깨가 우아하게 묻어있었고 나는 젊은 웨이터가 가져온 맥주를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며 빵조각에 시간을 입히듯 버터를 듬뿍 바르는 일을 습관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때, 정원의 한 켠에 앉아 블랙티셔츠가 깊게 패인 채 앞가슴을 드러내놓고 담소하는 한 여인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꿈같은 시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미 그 순간을 느끼는 바로 같은 시간에 행복감도 상실되는 것은 아닐까? 일테면 너무나 행복해서 감격에 몸을 떠는 그 순간에, 바로 그 찰나에 악마처럼 밀려들어오는 바로 그 생각, '우리의 삶이 이래도 되나?' 혹은 '인생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라는 잡념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는 꿈같은 시간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있더라도 그 시간은 극히 짧은 감각인지도 모른다. 행복감과 불안감의 교차. 그랬다. 내 체코 여행은 그것이었다. 행복했고 그 행복이 불안해서 서글펐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편안했다. 그러니까.. 이쯤되면 꽤 근사한 여행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 날의 파티를 다 기억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부분 부분적으로 마치 조각난 꿈의 장면들처럼 몇 개의 토막들이 떠오른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영상은 더 선명해졌다. 이제그것들을 글로 남기려 한다.
프라하가 아름다운 이유
체코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특히 프라하에 대해서는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거의 똑같은 말들을 한다. ' 밤이면 더 환상적인 도시' ' 카를교의 환상적 분위기'
그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미션 임파서블>이나 <맥심> <포스코> 광고에 등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프라하는 분명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세상에 상상의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물은 그리 많지 않다. 프라하 역시 그 이름 앞에 어김없이 수식되는 '아름다운..' 이라는 말로 인해 오히려 여행자들은 그 곳에서 덤덤함을 느끼기도 한다. 늘 아름다웠던 곳이고, 아름다워야만 하는 곳 앞에서는 감탄사 대신 확인에의 마침표가 찍히는 법이다.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전경
자동차와 전차가 다니지 않고 유일하게 도보만의 보행이 허용된 카를교는 그 덕분에 수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프라하 도시 전체가 1 차 대전과 2 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중세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카를교 역시 15 세기 초에 완성된 다리의 형태를 큰 훼손없이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블타바강을 바라보거나, 30 개의 바로크 조각상 하나하나를 감상하거나, 무명 음악가나 화가들의 연주와 작품을 즐긴다. 특히 밤이 되면 이 곳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야경이 근사해서 마치 사진 찍기 대회라도 열린 양 카메라의 플래쉬들이 폭죽처럼 터져나온다.
프라하는 마치 늪과 같은 도시다. 그 곳이 어디가 되었든, 프라하 성이든 혹은 평범한 골목안이든 사람들은 그 곳을 바라 보는 순간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다리를 움직인다. 나도그랬다. 그래서 종종 길을 잃었고, 너무 걸어서 발바닥은 화상에 걸린 듯 화끈거렸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다리를 쉬는 곳, 그 곳에 음악이 있었다. 사람이 다닐 법한 담벼락에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들은 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프라하 성에서 성비타 대성당과 크리제 교회 등을 돌아다니다가 프라하 시내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을 때도
그 옆에서는 간이 책상 하나를 놓고 공연표를 파는 매표원들이 여러 명 있었다. 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 3 중주의 공연은 비발디의 G 단조로 시작하여 바흐를 거쳐 드보르작과 모차르트로 이어졌는데 연주 중간 중간 피아노가 실수를 하고 부모와 함께 온 일본 갓난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케쥬얼한 분위기가 주는 색다른 느낌이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신비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프라하 성 한 공간에서 동시대의 작은 인원이 옹기 종기 모여 음악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어둠이 내린 카를교, 그 바로 옆 성당에서 들었던 교향곡 연주 역시 감동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중세의 고딕 교회가 주는 위압감은 파이프 오르간과 성악이 어우러졌을 때 숨이 막힐 정도의 엄숙함으로 전달해왔다. 그 엄숙함 속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들려올 때는 실로 천상의 소리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프라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인형극 공연이다. 특히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인형극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기를 모으고 있는 프라하의 대표 공연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오페라는 인형극 답게 약간은 조악하게 펼쳐지지만 지오반니의 연애열정, 레포렐로의 우스꽝스러운 익살, 묘지에 나타난 유령 등 원극 인물의 캐릭터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음향 시설도 대가극의 음악을 제대로 전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일본 만화 <몬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형극이 주는 분위기를 통하여 그 만화에서 그려진 프라하의 느낌을 약간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눈(아름다운 도시)과 발(중세의 돌길)과 귀(크고 작은 공연들)와 혀(필즈너 우르퀠로 대표대는 맥주)등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은 프라하에서 녹아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라하는 아름다운 것이다.
체스키 크롬로프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지만 체코의 아름다움을 홀로 대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도시의 분위기가 싫은 사람이라면 체코의 시골 마을을 중심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다.
특히 체코의 역사인 보헤미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이 곳을 빠뜨릴 수 없다. 바로 '체스키 크롬로프' 라는 곳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열차나 버스를 타고 가게 되는데 이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 도시를 가기 위해서는 우선 '체스케 부데요비체(Ceske Budejovice = Budweis)' 라는 도시를 들려야 한다. 빠른 기차로 약 2 시간 30 분이 소요된다. (국내기차의 경우는 인포메이션을 얻기가 까다로운데 기차역 한 쪽에는 국내선 기차 스케쥴을 볼 수 있는 코너가 있다. 그런데 이것도 일반적인 국제선 타임테이블이 아니라 일단 프라하 국내 지도를 보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번호를 확인한 후 그 코너에 가서 열차 시간을 봐야 하는, 조금은 까다로운 절차를 따라야 한다.)
부데요비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버드와이저의 시작점이다. 바로크 양식이 아름다운 구시청사 앞 광장과 삼손(Samson)의 분수대, ' 체르나 뷔즈' 라 불리우는 72 m 짜리 흑탑이 볼거리지만 아무래도 목적지는 '체스키 크롬로프' 다 보니 고즈넉함을 안주로 하여 쌉싸름한 로컬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이 도시의 방문 목적을 채운다.
구시청사
체스키 크롬로프는 부데요비체에서 25 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버스로 약 45 분이 소요된다. 부데요비체 기차 역에서 나와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버스 정거장이 나오는데 12 번 플랫폼에서 체스키크룸로브를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한 시간에 한 대씩이 있는데 돌아오는 버스는 일찍 끝난다. 요금은 드라이버에게 직접 내는데 20.60 kr.
체코의 시골 버스를 타는 것도 재미있고 가로수 우거진 신작로길과 농가와 숲길의 풍경도멋스럽다. 누군가 말했듯이 체코는 렌트카로 여행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내릴 곳은 종점 전의 '체스키 르룸로브 스피칵'. 거기서부터 걸어서 투어가 시작된다.
과연 1992 년에 유네스코에서 보존 도시로 지정한 곳답게 이 곳은 너무나 아름다운 중세풍경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삼각지를 이루며 마을을 흐르는 블타바 강은 강이라기 보다는 계곡이 주는 정겨움을 느끼게 하고, 낮은 붉은 지붕의 집들은 옹기 종기 모여서 야트막한 산과 더불어 흡사 난쟁이들이 나오는 드라마의 세트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700 년의 역사를 대표하는 고딕 양식의 크룸로프 성은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크기가 거대하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내부의 아름다움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중세 귀족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과 접견실, 마차와 식당, 화랑과 거울의 방 등은 화려한 바로크와 정제된 르네상스의 정수들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성의 위에는 아름다운 가든이 있다. 1765 년에 완성된 분수대와 야외 공연장이 잘 조경된 나무들이 이 도시를 더욱 더 아름답게 해주는 이 정원을 채우고 있다. 구 시가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에는 체코 음악가 스메타나의 노래가 연신 들려오고 카페와 상점들의 간판과 입구 마저도 안목 높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아닐까 착각하게 할 정도로 점점이 예술이다.
개마저도 예술이다
그러고 보니 체코에서의 감탄사는 '체스크키 크롬로프' 와 같은 시골에서 터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정 체코의 시골은.. 실로 숫자없는 달력이다.
체코의 또 다른 느낌, 투박함
10 세기.. 보헤미아 왕국으로 번영. 14 세기.. 카를 4 세가 신성 로마 제국에 오를 정도로 국력 신장. 16 세기..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 받음. 19 세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지배받음. 제 1 차 세계 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 이어 나치 독일에 점령, 1945 년 소련 점령하에 사회주의화. 1968 년 프라하의 봄 실패. 1993 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
대략으로 정리한 체코의 역사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수정 자본주의>라 명명된 경제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과연 그 체제가 사회주의에서 자본 주의로 이행해가는 과도기적 과정인지 혹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보완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체코는 여전히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체코만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박하기도 하고 어눌하기도 한 그 모습을 내가 직접 체험 한 것은 프라하의 지하철에서였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낯선 도시의 대중 교통 시스템을 이해하기에는 약간의 사전 정보와 체험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 프라하의 전철 승차권은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몇 개로 나뉘어 있는 데다 우리처럼 자동 개폐 시스템이 아닌 일명 펀칭 시스템이다 보니 적응이 쉽지 만은 않다.
그런데 프라하에서는 이런 관광객의 익숙치 않음에 덫을 쳐놓는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전철역과 기차역에는 항시 외국인의 실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검표원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복도 아닌 사복을 입고 다니며 노획물에게 접근한다. 거기에 내가 걸린 것이다.
프라하성을 가는 길에 티켓 펀칭을 한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말았다. 펀칭을 안한 티켓은 이미 유효하지 않은 표가 된다. 플랫폼에서 사진 몇 컷을 찍고 있는데 사복 차림의 사내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내게 여권을 요구했고 나는 그때서야 내가 펀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 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남의 여권을 보여달라는 이 사람들에게 무례함을 느꼈었다.
거기에 대해 항의하자 그들은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줬고 손가락으로 한 쪽의 벽보를 보라고 이야기 했다. 그 곳에는 불법 승차에 대한 경고와 함께 자신들의 신분증과 똑 같은 신분증이 찍혀있었다.
결국 나는 찍 소리도 못하고 400 크로네를 벌금으로 물었지만 어찌 됐든 자기네 나라에 온 손님의 실수를- 비록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벌금으로 대응하는 그네들에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었다. 또한 이런 식이라면 이를 이용한 외국인 범죄에 관광객은 무방비로 노출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누가 이 반바지를 검표원이라고 부르리?
성격은 다르지만 여행중 느낀 체코 자본주의의 거칠음을 기차역에서도 발견했었다.
우리 나라도 결코 언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외국인들이 쉽게 여행할 곳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체코 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프라하 기차역 인포메이션 창구에는 '영어 못함, 체코어로 이야기 할 것'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물론 영어로...
나는 그 사인을 보고 웃음이 나왔지만 이걸 민족적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는지, 폐쇄적 고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잘 판단이 서질 않았었다. 분명한 것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등장할 만한 사인은 아니라는 것이겠고.
어찌됐든 요소요소에서 보이는 이런 투박함은 체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밀 란
체스키크룸로프에서 프라하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였다. 컴파트먼트 안에는 나 혼자였고 기차가 어느 정거장에 멈추는가 했더니 이어폰을 낀 내 귓가에 통통튀는 여자애의 음성이 객실 밖에서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여행중인 호주 소녀는 자신이 기차를 제대로 탔는지를 불안해하고 있었고 역시 여행중인 체코 남자는 소녀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 체코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냐 하면 드물게도 그는 영어가 가능한 체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꼬셨고 다음은 내 컴파트먼트에서 진행된 <오다가다 인터뷰>의 대강이다.
체코 다니면서 당신처럼 영어 잘하는 사람 첨 봤다. 어디서 그렇게 영어를 배웠나?
미국에서 4 년 있었다. 뉴욕에서 요리사로 근무했었거든.
여하튼 반갑다. 한국에서 노매드라는 여행웹진에서 여행 기자로 일하는 사람인데, 체코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혼자 프라하까지 가는 거 지루할 테니 나랑 이야기나 하면서 가자. 몇 살이냐?
36 세다. 이름은 Milan Pudlo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지금 백수다. 현재 일을 알아보고 있다. 여행사 직원이 되고 싶은데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당신은 영어가 되니까 그 쪽도 괜찮겠다. 그거 하면 돈은 잘 버나?
꽤 괜찮다. 알다시피 프라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이므로 사람들도 많이 오고 가이드들은 늘 일을 할 수 있다. 아참, 몇 년 전 신문을 통해 너희 나라 소식을 알고 있다.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아주 높았다고 들었다.
체코의 시골동네.. 어느 들판을 달리는 어둠 속의 기차.. 그 안에서 만난 벽안의 사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여중생 사망 사건.. 그때, 기분이 참 묘했다. 외계인에게 지구 소식을 듣는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들까?
오호.. 알고 있구나.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미국을 싫어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감정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가 구소련에 가졌던 감정과도 비슷할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러시아를 싫어하고... 그런데 보헤미안 지방을 여행하고 오나?
그렇다. 체스키크롬로프를 다녀오는 길인데 참 아름답더라. 그런데 나는 보헤미안 하면 '유랑'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집시가 떠 오른다. 그런데 집시 문제, 너희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 중 꽤 골치거리 아닌가?
심각한 거다. 미국에 흑인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집시가 있다. 미국도 대놓고 흑인을 욕하지 못하듯이 우리도 대놓고 집시를 욕하진 못한다. 그저 뒤에서 욕을 하는 것 뿐이다.
정부에서 어떤 움직임 같은 것이 있지 않는가?
애들 데려다 무료로 공부도 시키고 여러 가지 복지 대책을 내놓지만 먹히지를 않는다. 워낙 한 곳에 정착을 못하는 기질들이라 데려다 놓으면 도망가고.. 늘 그런 악순환이다.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나서서 집시 범죄를 막거나 그런 것도 안 하나?
집시는 서로 단결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다. 만일 누군가 자신들을 신고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집시에 의해 집단으로 해꼬지를 당한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저 쉬쉬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 집시들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이 그린란드, 일본 그리고 한국뿐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당신이 말하는 것이 참 생소하다.
오, 그런가?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집시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면에서는 복 받은 것 같다.
자 다른 이야기 하자. 당신 나이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겪은 나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 두 체제를 비교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있겠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자본주의가 더 좋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너무나 가난하고 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이렇게 기차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여행도 못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최소한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집이든 차든 내 능력에 의해 살 수 있으니까 희망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겠지만 돈이 있고 없고로 인해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거나 낮아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돈이 없더라도 사회주의 체제에서 혹 더 행복했다거나 그런...
아니다. 모든 건 돈이다. 돈이 없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불평만 한다. 그런 상태에서 무슨 행복감을 느끼겠는가?
지금 당신의 나라는 뭔가 불안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사복을 입은 감시원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관광객의 전철표를 단속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
맞다. 그런 부분은 많이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다보니 사람들이 세련되질 못했다. 아마 당신이 불안감을 느꼈다면 그런 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점에서는 불만이다.
그런데 당신은 체코 사람으로서 체코의 어디를 가장 좋아하는가? 여행지로서 말이다.
체코 북동쪽에 크리커노쉘(지명이 정확치 않다. 머라 했는데 그 지명을 내가 정확히 듣지를 못했다. 써달라구 할 걸..)이라는 곳이 있다. 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그 곳을 좋아한다. |
거의 세 시간 정도를 마주 보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 새 프라하 역에 도착했다. 비록 여기서 다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 분리 문제와 같은 심각한 이야기부터 남자 둘이 모였으니 축구와 여자 이야기까지 객실은 졸지에 수다방이 되었었다.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숙소로 가는 전철은 끊어졌고 밀란은 그런 나를 위해 버스를 갈아타는 곳까지 동행해주었다. 나를 버스에 태워 보내며 환하게 웃던 밀란의 미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삶에 있어서든 여행에 있어서든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은, 늘, 우리가
떠올리는 지나간 길 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가지임은 분명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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