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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하게 벗은 '케이블 TV'

2006년 10월 19일 (목) 16:36   뉴스메이커

[문화]화끈하게 벗은 ‘케이블’ 날 보러 와요

지상파와 차별화된 볼거리로 유혹… 표현의 자유·선정성 경쟁 사이 아슬아슬 줄타기

북한 핵실험의 충격파가 뒤덮은 지난 9일, 전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은 ‘북한’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한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 헤드라인은 달랐다. ‘북한핵실험’을 제치고 인터넷 검색1위에 오른 키워드는 다름아닌 ‘엄정화 팬티’. 같은 날 저녁 열린 케이블·위성채널 ‘tvN’의 개국축하쇼에서 선보인 가수 엄정화의 퍼포먼스가 누리꾼의 화제가 된 것이다. 엄정화는 이날 무대에서 갑자기 검정색 치마를 벗어던지고 속옷과 다름없는 검은색 핫팬츠와 검은색 망사스타킹 차림이 됐다. 이어 정액을 뜻하는 영어단어가 포함된 노래 ‘Cum2me’를 열창하며 반라의 남자 백댄서와 얽히는 파격적 퍼포먼스를 연발했다.


tvN 개국축하쇼에서 선보인 가수 엄정화의 퍼포먼스.


방송위의 중징계를 받은 KM의 ‘재용이의 순결한 19’.


노출과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를 모은 tvN의 드라마 ‘하이에나’.
엄정화 소속사는 “지상파 무대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퍼포먼스”라며 “성인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케이블 방송이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케이블·위성채널이 대담해졌다. 인기 드라마와 외화의 ‘재탕’ 대신, 도발적 콘텐츠를 앞세워 시청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지상파에선 볼 수 없는 소재와 표현으로 승부를 건 케이블·위성채널, 그들의 ‘대단한 도전’은 과연 성공할까.

안방극장에 뜨는 19세 관람불가 ‘엄정화 퍼포먼스’로 이름을 날린 tvN은 오락·연예전문을 표방한 신규채널이다. tvN이 11일 첫방송한 자체제작 드라마 ‘하이에나’는 첫회부터 주인공 이정은(소이현)의 샤워장면을 통해 누드장면을 드러냈다. 국내 드라마에서 여성의 전신누드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윤다훈, 김민종, 오만석, 소이현 등 지상파 드라마의 주연급 배우들이 이런 내용을 연기한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극중 미모의 변호사 이영아가 방송사PD 최진범(오만석)의 성기와 엉덩이를 누르며 “귀엽다”라고 말하는 등 대사의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정사장면에는 가터벨트 차림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하면, 앞으로 게이(이석진)의 정사장면까지 예고하고 있다. 오죽하면 출연배우 오만석이 “방송이 나가면 매장당할 정도로 선정적”이라고 말했을까. 연출을 맡은 조수원PD는 “19세 이상 시청가라서 여배우는 젖가슴까지, 남자배우는 상체와 엉덩이 정도가 노출될 수 있다”고 표현수위를 밝혔다.

케이블·위성채널 KM의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10일 방송위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와 ‘해당 프로그램 방송중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디밴드 카우치의 성기노출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방송해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것이 이유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연예인들에 대한 성역 없는(?) 농담과 비꼬기로 인기를 얻고 있다.

대담한 프로그램은 이뿐만이 아니다. tvN의 ‘옥주현의 라이크 어 버진’은 트랜스젠더 희망자의 ‘성전환 프로젝트’를 중계하겠다고 해 화제를 모았다. tvN의 연예프로그램 ‘mad.com’은 MC인 가수 윤종신과 아유미의 가짜 파파라치 사진을 찍어 인터넷을 떠들석하게 했다.

무삭제 방송으로 마니아 유혹한다 케이블·위성채널이 이처럼 성인콘텐츠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tvN 윤석암 공동대표는 “똑같은 포맷으로는 지상파를 이길 수 없다. 지상파와 같은 스케일로 하되 지상파가 하기 어려운 부분을 건드리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케이블TV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선정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윤대표는 이에 대해 “선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점은 안다”며 “그러나 ‘위기의 주부들’나 ‘섹스&시티’ ‘CSI’ 등이 케이블의 핵심 콘텐츠가 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직까지 케이블채널의 주력 프로그램은 ‘섹스&시티’(온스타일)나 ‘프렌즈’(동아TV) ‘CSI’ ‘위기의 주부들’(OCN) 등 외국 드라마다. 이들 외화는 MBC, KBS 등 지상파에서 한번씩 전파를 탄 프로그램이지만, 오히려 재방·3방하는 케이블TV에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무삭제’이기 때문이다. 과학수사대원의 이야기를 그린 CSI는 특성상 잔혹한 범행장면이나 시체가 자주 등장한다. 전연령대 시청이 목표인 지상파 방송의 경우 모자이크나 삭제가 불가피하지만, 케이블TV의 경우는 ‘무삭제’로 방송됐다. ‘원본 그대로’에 민감한 성인 마니아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드라마 비평전문지 ‘드라마틱’의 허유성 기자는 “지상파는 ‘가족시청, 공익방송’을 내세우지만 케이블은 다르다”며 “시청자는 단순히 야한 작품이 아닌, 성인의 세계를 그린 작품을 보고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 될까, 선정성 경쟁 될까 ‘무삭제’는 외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tvN은 올해 말 김승우·명세빈 주연 드라마 ‘내 인생의 스페셜’을 방송한다. 이 드라마는 당초 12부작이었지만 올해초 MBC에서 방송되며 방송국 사정으로 8부작으로 압축 편집됐다. 그러나 tvN에서는 마니아들의 지지에 힘입어 TV방송 당시 삭제된 장면을 그대로 살린 ‘디렉터스 컷’으로 방송된다. 가위질당한 드라마가 케이블의 힘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드라마 제작자로서는 케이블채널의 ‘표현의 자유’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의 스페셜’을 제작한 김종학 프로덕션 박창식 이사는 “방송사 공채출신 PD가 만드는 기존의 천편일률 멜로물만이 드라마의 전부는 아니다”며 “케이블·위성방송을 무대로 실력있는 프리랜서 PD와 작가를 모아 미스터리·퓨전사극 등 다양한 형식의 드라마를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케이블 드라마는 기존 드라마의 형식을 잇달아 깨고 있다. 채널CGV에서 27일부터 방송되는 이서진·박한별 주연의 ‘프리즈’는 4부작 드라마와 극장판이 동시에 제작됐다. 공중파에서 금기시된 소재도 케이블에서는 제한이 없다. OCN에서 내년 방송예정인 ‘에이전트 제로’는 `한국판 CSI’를 표방하는 24부작 드라마. 설경구·손예진이라는 톱스타가 기용된 하드보일드 범죄수사물이다. 제작사 옐로우필름은 “드라마 성격상 폭력이나 적나라한 범죄묘사가 불가피하다. 공중파에서는 제대로 방송되기 어렵다고 생각해 케이블 채널을 물색했다”고 밝혔다.

케이블·위성 채널은 지금 ‘표현의 자유’와 ‘선정성’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줄 위에 오르기 전에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지적에도 한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방송에 비해 자유로운 소재와 표현으로 차별화된다. 그러나 이 ‘표현의 자유’를 성적인 표현과 상대 출연자와 시청자에 대한 무례함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케이블 방송의 장점을 스스로 단점으로 만들 수 있다. ”

<스포츠칸/이종원 기자 high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