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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후예들

[스크랩] 김홍도, 남해관음도

 

김홍도가 그린 <남해관음도>를 보면 조선의 그림이 중국의 아류라거나 중국 것의 모방에 그치고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주석이 김홍도를 가장 조선적인 화가라고 표현한 데는 바로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남해관음도, 수월관음도, 백의관음도로 지칭되는 관음을 그린 많은 그림들은 대체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 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것들이다. 선재 동자라는 젊은이가 가르침을 받으려고 50여 명의 스승을 만나러 다니는데 관음보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선재가 관음에게 도를 묻는 모습은 고리高麗 불화에 잘 나와 있다. 거기에서 관음은 굉창히 크게 묘사되는 반면 선재는 항상 관음의 발 밑에 아주 작게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의 고리 불화는 매우 중국적이라 일반인들이 송대의 불화와 고리의 불화를 가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김홍도의 남해관음도로 오면 완전히 달라진다.

보통 관음도에서 관음의 얼굴은 근엄하고 수염을 달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많은 보석으로 전신을 치장하며 겹겹으로 성장盛裝을 해서 화려의 극치를 달린다. 아울러 그 묘사가 매우 정치정치하고 사실적이라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그런데 김홍도의 관음도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한눈에도 알 수 있듯이 전체적인 그림 분위기가 한국적이다. 항상 중국인(혹은 인도인)의 얼굴을 하고 잇던 관음보살의 얼굴이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느닷없이 한국인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것도 여자의 모습, 여자 중에서도 아줌마의 얼굴이다. 근엄하거나 경직된 기운이 없는 아주 편안한 조선의 어머니 모습이다.

 

아마도 김홍도의 생각에 그림에 동자가 나오니 으레 같이 있는 관음은 어머니려니 생각했던 듯싶다. 그리고 관음이 입고 있는 옷이나 머리 장식도 관음의 것 치고는 수수하기 짝이 없다. 우선 일체 보석이나 치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옷도 주름이 많이 간 긴 드레스 정도만 입혀놓았지 이전의 관음도처럼 몇 겹으로 된 극히 화려한 옷이 아니다. 게다가 머리 장시도 화려한 보관이 아니라 담담한 꽃장식으로 처리해 놓았다. 이와 같이 화려함을 자제하고 모든 표현을 수수하게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잘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외적인 것을 삼가고 내면의 상태를 한층 더 중시하는 조선의 유교(성리학)적 가치관이 투영된 듯하다. 그러나 이 그림이 정말로 조선적이라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등장 인물을 배치한 구도 때문이다. 김홍도의 관음도는 전통적인 구도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 그의 그림에서 관음은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고 선재 동자는 관음의 뒤에서 모습을 반쯤 감춘 채 서 있다. 우리 아이들은 누가 있으면 수줍음을 타면서 곧잘 엄마 뒤에 숨는다. 그리고 머리만 내밀어 밖의 형세를 살핀다. 김홍도의 관음도는 바로 이 모습을 그려놓은 것이다

(최준식 2002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 : 난장과 파격의 미학을 찾아서≫)

 

 



Budda-garden"중 普賢行願品

출처 : sunrisesunset
글쓴이 : 無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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