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허영호 등산로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서 오르기 시작한 소백산 산행길은 따뜻한 봄날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내일(수요일) 오후부터 날씨가 추워지고 비나 눈이 온다는 기상예보가 있었으나, 산행 당시의 기온이 높아 아마도 상고대나 눈꽃은 보기는 힘들겠지. 그래도 고산 평원의 능선에서 겨울의 소백을 가슴에 담아오겠지.
어의곡리는 부근의 여러 지명이 우리말을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기왕 이야기 나온 김에 살펴보면,
*귀이기(구익, 규기): *한드미(어의곡리 중심마을) 북동쪽 마을로, 무슨 일을 하던 아홉 번 이득을 본다하여 붙여진 이름.
*넙득방우: 윗덕어실 서쪽에 있는 넓은 바위
*느직미기: 민봉 동북쪽에 있는 산
*늪밭: 윗덕어실 동쪽에 있는 마을
*둔둘배기: 허기재에 있는 바위
*벌바우: 새밭 동쪽에 있는 바위(봉암)
*산태골: 새밭 동쪽에 있는 바위
*새밭(을전): 한드미 동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
*새미기양지: 한드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소만이: 한드미 남쪽에 있는 골짜기
*수무지골: 웃덕어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어구가 좁고 속이 넓음
*아래영어실(하의곡, 하의실, 하의골): 영어실 아래쪽에 있는 마을
*웃재골: 아랫재골 위쪽에 있는 골짜기
*찍소: 허기재골 밑 서쪽에 있는 골짜기
*피아골: 한드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이곳에서 난을 피했다함
*허기재굴: 새밭에서 한드미로 가는 재
등 그 외에도 이 지역에는 많은 우리말 지명이 있다. 굳이 이렇게 우리 지명을 적어보면서 산꾼들은 지도에 표기돼 있지 않은 수많은 지명들이 우리말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자숭배사상과 일제시대의 강압적 개칭으로 인하여 우리말의 지명과 순수성이 수없이 사라져, 역사에서 우리는 남(외국의 역사책)들이 적어놓은 지명이나 이름들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지도 못한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많이 발굴하고 어원도 연구하고 사용하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소백산 어의곡 매표소부터 눈은 쌓였으나 경사가 느슨하여 초반 산행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날씨 탓인지 다져진 눈 위에 살짝 녹아내린 물기 때문에 자꾸 미끄러진다. 코스를 무리하게 잡지 않은 관계로 시간은 여유가 있어 천천히 산에 올랐다.
(어의곡리-비로봉:5.1km, 비로봉-민목이재-천동다리안:6.8km 총:11.9km)
생각대로 상고대나 설화는 없어 아쉬웠지만 눈길을 따라 쌓인 눈을 헤치고 나온 산죽의 푸르름에 오히려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과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나무 숲길을 벗어나 탁 트인 소백의 설원이 눈에 들어온다. 호호탕탕 거칠게 없는 정상까지의 부드러운 하얀 평전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대부분 바람이 강하게 불고 구름이 끼어있어 햇볕을 보지 못하여 나무가 크지 못하는 곳. 소백산 정상 비로봉이 저기구나.
오히려 우리가 오던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바람 한점 없고 따뜻하여 겨울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고 그리고 쾌청하여 조망도 좋았다.
비로봉(毘盧峯), 소백산(小白山, 해발 1439m)의 주봉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흰 눈과 함께 빛을 내며 있었다.
‘광명’ 또는 ‘태양’이라는 뜻의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옮긴 비로자나(毘盧遮那)는 ‘어둠을 깨트리고 광명을 두루 비추는 자’라 하여 불가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를 말한다.
어제는 예수의 탄생과 오늘은 부처의 광명을 이곳에서 함께 축복받는 모양이다.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 그리고 멀리 도솔봉이 이 비로봉과 함께 국망봉으로 백두대간의 힘찬 허리를 받혀주고 있으니 이곳의 기운이 어찌 강하지 않겠는가. 힘찬 기운을 받아 가야겠다.
모처럼 정상에서 포근한 점심식사를 끝내고 천동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뒤돌아보고 또 보고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내려가는 길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천동다리에 도착하자 다리 밑으로 아름다운 폭포가 흐른다. 다리안(橋內)폭포라 하여 이곳에 들어오려면 꼭 구름다리를 건너야만 들어올 수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수의 흐름이 삼단으로 이루어지고 크고 작은 소(沼)가 있으며 용이 승천 할 때 힘껏 구른 발자국이 크게 찍힌 소를 용담폭(龍潭瀑)이라 부른다.
이곳 폭포 위 다리 입구에는 세계 최초로 3극점 7대륙 정상에 도전하여 성공한 산악인 허영호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어의곡 새밭-비로봉-천동 다리안> 코스가 허영호씨가 항상 다니던 등산로라고 기념비 뒷면에 함께 표기 돼있다.
오늘은 소백산 허영호 등산로를 그대로 답사한 날이다.
2006년 12월 26일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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