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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농촌속 한국인 며느리 그들은 지금

2007년 1월 8일 (월) 01:41   국민일보

일본 농촌속 한국인 며느리 그들은 지금… 고국 동생위해 매일 10시간 부업

1980년대 일본으로 시집간 한국인 며느리들은 남아있는 본국의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동기가 강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이혼 경력자나 혼기를 놓친 도시출신 고학력 여성이 많았다. 과거에는 재일동포들에게조차 '일본으로 팔려온 이들'이라는 인식으로 배척받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같은 처지의 한국 출신 부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민족문제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 사회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냉대를 봉사로 되갚아=지난달 말 현지에서 만난 야마가타현 가미노야마시의 이가라시 정심(47·여)씨는 1991년 일본으로 왔다.

일본인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꾼 이가라시씨는 이주의 계기로 노처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부당한 시선을 꼽았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서른을 넘기면 무슨 문제있는 것 아니냐고 수군댔었죠.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일본 남성을 소개받고 3개월간 수백만원어치 국제전화를 한 뒤 결혼을 결심했어요."

일본 사회에서 적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언어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산골이라도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탓에 낮 시간에는 주로 이웃 노인들하고만 생활했다. 이런 그에게 외국인을 위한 일본인 민간 봉사단체 IVY(International Volunteer Center of Yamagata)는 희망의 빛이었다.

매주 이틀씩 열리는 일본어 강좌를 수강한 뒤 1995년부터 직접 한국인 이주 여성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나섰다. 지금은 한국인 며느리 생활 상담과 병원 및 재판 통역,야마가타 가쿠인 고교의 한국어 강사 등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두 언어를 통달했다는 장점을 살린 것이다.

1999년부터는 야마가타시 교육청의 한국인 재혼 이주 여성의 자녀들을 위한 적응 프로그램에서 일본어 강사를 맡고 있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온 1호 제자가 올해 한국 외국어대에 입학했다. 이가라시씨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더욱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를 우리 자식보다 더 사랑했다"면서 "말을 못해 질시받던 아이의 좌절을 극복하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보람찼다"고 강조했다.

야마가타현에서도 가장 산골인 도자와무라에 거주하는 쇼지 명숙씨는 한류 열풍을 타고 김치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1987년 충남 송학에서 알선 기관을 통해 일본으로 이주한 그는 '도자와류 기무치'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일본 여성들에게 한국 민요를 가르쳤고 이 과정을 담은 '명숙상의 한국민요'라는 책도 출판했다. 1700여명의 한국 출신 부인들 탓에 매년 늦가을 야마가타현에는 '기무치 마쓰리(김치 축제)'가 열린다.

◇민족 문제에 눈을 떠=도쿄 남쪽 오다쿠구에 거주하는 조영숙(48·여)씨는 1985년 동생들을 위해 일본행을 택했다. 1남3녀 중 맏딸인 조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일본에 가면 식구들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고 설명했다.

배편을 이용,규슈와 교토를 거쳐 도쿄 남쪽 하네다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고물상을 운영하던 남편을 돕기 위해 한국 불고기 음식점인 '야쿠니쿠'에서 가위를 들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부업으로 부산의 동생들을 교육시켰다. 조씨는 "이웃으로 살던 10년동안 반상회 회보를 우리집만 빼고 돌리던 일본인들을 보면서 쓰러지고 싶었지만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조씨는 도쿄와 요코하마 외곽지역 한국인 며느리들과 함께 '아리랑회'를 조직했다. 일본인이나 재일교포 2세에게 시집온 여성 20여명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모임이다. 지난해에는 민족문제연구소 도쿄지회를 결성했다. 조씨는 "일본 사회에서 파친코와 야쿠니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받았던 교포들이 배상 문제는 입에도 담지 않는 현실에 울분을 느꼈다"고 했다.

◇"일본인으로 사는 방법뿐"=반면 일본인보다 더 철저한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인 부인도 있다.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고쇼와가라시의 구로누아 사토코(49·여·가명)씨는 끝내 한국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인 1977년 입국해 2003년부터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위치에 올라 활동중이다.

그는 지역사회 재활용 비영리단체(NPO)에서 일하다가 지역 문화 전문가로 변모했다. 구로누아씨는 "한국 여성이 일본에 와서 사는 길은 더욱 철저히 일본인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야마가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