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긴 한데,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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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러니까 심심했던 것이다. <무한도전>은 지겹고, <개그 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그야>도 보았고, 심심해 케이블 방송 채널을 돌리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채널을 멈추었다(유선방송 위성방송 합쳐서 시청가구가 1600만, 전체 TV 시청가구의 90%에 이르는 시대다). 춤추는 여성의 ‘라인’을 훑어내리는 카메라의 시선이 대담하다.
기사용 용어를 빌리자면 적잖이 ‘선정적’. 화면의 왼쪽에는‘tvNgels’라는 자막이 프로그램 이름을 알려준다. 시간이 흐르고 분위기 파악이 된다. 케이블 방송인 ‘tvN’에서 방송되는 ‘고품격 섹시 서바이벌’
역시나 주말에 ‘방콕’하다 낯선 프로그램을 만난다. 연인의 변심을 의심한 사람이 연인의 뒷조사를 의뢰하고, 제작진은 추적에 나선다. 물론 부부의 외도도 다룬다. 며칠을 지켜보던 카메라에 그가 누군가와 밀회하는 장면이 잡힌다. 역시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문외한이 보아도 <현장고발 치터스>의 한국판이다. tvN에서 방영되는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의 사연도 한국판치고는 ‘세다’. 형의 애인이 동생과 사랑에 빠지고, 아프리카로 일하러 갔다고 믿었던 남편이 버젓이 한국에서 부인의 친구와 살림을 차리고 산다. 의뢰인이 피의뢰인의 불륜 현장을 습격하는 급박한 장면이 나오면, ‘이제는 한국에서도 저런 프로그램이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출연자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고, 목소리도 변조돼 리얼리티를 더한다. 불륜을 추적하는 리포터의 얼굴에 스치는 연민과 당혹과 분노는 실제성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실제 사건을 추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연을 재구성한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을. 그렇면 그렇지, 한국에서 가능한 리얼리티가 아니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밀려든다. 어쩐지 마지막 반전의 패턴이 비슷해서 이상하다 싶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tvN 쪽은 “프로그램 전후에 재연이라는 고지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눈치 빠른 시청자가 아니면 재연임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불륜 현장 습격 생중계를?
다시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며 “노골성을 내세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고향 미국에도 불륜 현장을 덮치고 야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프로젝트 런웨이>처럼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선정적 소재에서 일상적 소재로 변화해왔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시청자들도 케이블 방송 등을 통해서 이미 진화의 과정을 일별한 마당에 굳이 한국산 프로그램이 진화의 과정을 반복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사실 그렇다.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은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맛’을 들인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낮은 제작비로 만든 한국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만족시키기엔 무리다. 하지만 단순히 제작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명석 문화평론가는 “사실 선정성은 사탕발림”이라며 “한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선정성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강명석 평론가도 “해외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안에서 휴먼 드라마를 제공한다”며 “한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세태를 보여줘야 하는데 사람만 전시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시되는 선정성을 넘어서 심리적 선정성으로 나가지를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 한국인의 체면문화도 넘어야 할 난관이다. 이명석 평론가는 “한국의 방송환경이 이율배반적”이라며 “시청자들이 외국의 리얼리티 쇼를 볼 때는 한발 물러서 보면서 악녀 캐릭터도 즐기지만, 한국 프로그램에는 지나친 감정이입을 해서 윤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방송의 공공성이라는 명분이 어쨌든 아직도 강력한 사회에서 선정성의 욕망과 공공성의 인식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선정성도 재미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어정쩡한 포즈로 서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노골적인데, 시선에 잡힌 출연자들은 “우리는 착하다”고 강변하는 이중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골적인 카메라 앞에서도 착한 척만
그래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 지상파 방송이 메우지 못하는 틈새시장인 탓이다. 케이블 채널 관계자는 “아직은 외국뿐 아니라 지상파와 견줘도 제작 여건이 열악하다”며 “앞으로 시청층이 두꺼워져서 투자를 많이 하면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심심한 시청자는 한국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하루빨리 품질을 개선하길 기다린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한국인의 급소를 짚어서, 리얼리티의 성감대를 자극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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