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 |
번호 : 3166 글쓴이 : Rendart. |
조회 : 88 스크랩 : 1 날짜 : 2007.05.11 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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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26년 동안 살아온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 체험기)
1. 경제는 1만 달러, 의식은 1백 달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대충 봐주는 것은 결코 인정이 아니다. 그렇게 봐주면 그 사람은 아, 대충 해도 그냥 넘어가는구나 생각하고 점점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이 파멸의 길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2. 온상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누가 강제할 수 없는 본능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의 자녀에 대한 애정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애정’이라기보다 ‘집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한국에 가니까 어느 날 전국적으로 일제히 비행기를 이착륙하지 못하게 했다. 자동차도 천천히 조용히 다니고 클랙슨도 빵빵 울리지 못하게 했으며, 전 국민의 아침 출근 시각을 두어 시간 늦추었다. 심지어 증권 시장마저 30분 늦게 시작하고. 그러나 버스와 전철, 택시 등이 총동원되고 경찰도 비상사태인 듯했다. 거리 곳곳에서 부분적으로 통행을 금지했으며 병원의 구급 차량도 총동원하고.......” 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미국인 동료들은 한국에 무슨 전쟁이라도 났느냐, 쿠데타가 일어났느냐며 묻기에 바빴다.
맞다. 전쟁은 전쟁이다. 입시 전쟁. 위에 묘사한 것은 바로 대학 입시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마치 전쟁이나 쿠데타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 나라가 법석을 떤다. 물론 일생일대에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을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무엇보다 전혀 교육적인 처사가 아니다.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이라면 평상시와 똑같이 자기 힘으로 시험 보는 곳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교통이 막혀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새벽 세 시든 네 시든 제 발로 걸어서라도 가야한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지 온 나라가 마비될 지경이 되도록 학생들 편의를 봐 주는 것은 과잉보호에 다름 아니다. 학부모 가운데 몇몇이 그렇게 극성을 부린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나라가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 한 특권 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잉보호는 무관심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와 선생의 강요 때문에 할 수 없이 공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변명의 여지가 싹튼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는 법이다. 그런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은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자기 잘못보다는 다른 여건 탁이라고 책임을 돌려 버린다.
3. “내 앞에 가는 꼴, 절대 못 봐”
한국 사회에는 인재를 키워 주는 풍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앞서 가는 기미라도 보이면 철저하게 견제하고 방해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에너지의 각도를 조금만 달리하면 건전한 선의의 경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경쟁이란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정복이다. 파이가 하나밖에 없었을 때에는 힘센 삶이 약한 사람을 때려눕히고 독차지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이좋게 나누어 다 먹을 정도로 파이가 커졌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것에 욕심내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 파이를 더 크게 키울 수 있을지 만 생각하면 된다.
4. 새벽을 열지 못하는 장닭
한국을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얼른 보기에는 남자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여자들이다.
한국 남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직자가 많아지면서 ‘고개 숙인 남자’들이 더욱 늘고 있지만 오늘 살고 말 일은 아니잖은가. 한국 남자들은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귀찮다는 듯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인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장으로서 명백한 직무 유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육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한다.
5. 망나니로 키우는 가정교육
내가 어렸을 때 동생하고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칼 두 자루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왕 싸우려면 ‘확실하게’ 칼을 들고 싸우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누구 하나가 죽어버리면 더 이상 너희 싸우는 꼴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공동 주택에서 생활하는 일본 사람들은 밤 10시 이후에는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강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웃집에서 밤늦게 샤워기를 사용하면 물소리가 시끄럽고 성가시게 들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런데 남인들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안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붙잡고 앉아 가르친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가정 교육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교육학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근본적인 가정교육은 이미 두 살에서 세 살 정도면 대충 마무리된다. 한국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6. 그 작은 나사못 하나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지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개개인의 각오가 없는 이상 한국은 세계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다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럽에는 1천 년, 2천 년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다리들도 있다. 성수대교는 15년 동안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통행하는 바람에 더 이상 하중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완공되기도 전에 무너져 버린 다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한국 건설업체들은 중동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많은 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이 지은 그 많은 공장과 건물이 무너지거나 망가졌다는 소문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가장 짧은 시간에 공사를 마치면서도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 한국 업체가 왜 국내에서는 그렇게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물을 만들지 못하는가. 외국에서 실적 올리는 것만 중요하고 막상 내 조국 국민은 사고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외국에서 시공을 할 때에는 외국 업체들의 감리를 철저하게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공도 감리도 모두 한국 업체들끼리 하기 때문에 방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7. 길이 막혀서.......
길이 막혀서 늦었다는 말이 변명다운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출근 시간에도 10분만 일찍 서두르면 교통신호까지 위반해 가며 달리지 않아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한국인 가운데 H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양아무개라는 분이 있다. 그는 예전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는데 한국 학생이 한 명도 없는 일본 학교를 골라서 아들을 전학시켰다. 물론 그 아이는 일본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입에서 “나 학교 가기 싫어” 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가 하면 다른 아이들이 못살게 군다는 것이었다. 하긴 다 큰 어른이라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기가 죽게 마련인데 코흘리개 초등학생이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아들을 나무랐다.
“네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일본 말을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아직은 네가 학교성적이나 친구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일본 아이들에게 뒤지는 것은 사실 아니냐.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지 않으면 너는 어디 가서든 놀림 받고 따돌림 당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거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이를 악물었다.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1, 2등을 다툴 정도로 출중한 학업 성적을 올리더니 전교 어린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 사람들, 정말 대단하더군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외국에서 온 아이에게 학생대표를 시켜 주는 경우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정말로 대단한 사람은 바로 양아무개 본인이었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능력이 되고 남을 이끌 만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으면 회장이 되는 건 당연하다. 나로서는 일본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자기 자식을 일부러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학교에 보냈다는 그의 결정이 대단해 보인다.
8. 선천성 질서의식 결핍증?
정부 당국은 국민의 불만과 요구를 수렴하여 최대한 합리적인 법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고, 국민은 국민대로 저 따위 법 같지도 않은 법을 지켜서 뭐 하나 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해 버린다. 나라꼴이 제대로 될 리 없다.
9. 재수 없어 걸린 사람들
한국 사람의 습성 가운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는 점이다. 누가 한국 혹은 한국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를 꼽는다. 나아가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기 시작하면 바로 그날부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일본에서 거의 40년 전에 A급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취미삼아 스포츠카도 몰았다. 적어도 운전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한국에 와서 운전을 포기해 버렸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기사를 두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도로교통법 위반자를 사면해 준 일이 있는데, 그때 사면 받은 사람이 몇인지 기억하는가? 무려 532만 명이다. 어림잡아 대한민국 국민 여덟 명 가운데 한 사람, 일상적으로 운전을 하는 상당수가 범법자라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를 ‘범법자;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걸려들었을 뿐이라고 여긴다.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인 ’전과자‘는 그토록 매몰차게 차별하면서도 유난히 관대하게 대우하는 전과자가 있다. 도로교통법 위반 전과자와 뇌물 받아 감옥에 갔다 온 정치인이 그들이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한국 친구들은 이제는 만성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 버린다. 언젠가는 사내대장부가 좀스럽게 그깟 교통법규 가지고 미주알고주알 잔소리하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위험하다’는 말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나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물리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통법규도 엄연한 ‘법’이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다.
‘아시아의 용’이라 불리던 한국이 지금 이 지경까지 굴러 떨어진 이유를 차근차근 따지다 보면 그 밑바닥에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추악한 한국 사람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언뜻 듣기에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굳이 법과 도덕을 만들어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해 살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생긴다. 그걸 막기 위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서로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이것만은 지키자고 약속한 것이 바로 법이고 공중도덕이다.
그런데 사회 구성원 스스로 이 약속을 무시하면 사람살이의 시본 틀이 흔들린다. 남이야 어떻게 되는 나만 빨리 가면 되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온갖 비리와 부패가 생겼고, 그것이 쌓이고 곪았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게 IMF 사태 아니겠는가.
10. 총알택시의 악몽
가끔 ‘총알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택시를 처음 타고 가면서 ‘아, 내 인생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며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그 시골길을 말 그대로 ‘총알‘처럼 달리는데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본에도 ‘신풍택시’라는 게 있기는 하다. ‘신풍’이 무엇인가, 그 악명 높은 ‘가미카제’ 아닌가. 그런 신풍 택시도 한국의 총알택시와 비교하면 게임이 안 된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의 택시 기사들 중에는 자동차 경주 선수로 변신하면 크게 성공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11. 아파트의 새벽 방송
내가 살고 잇는 아파트만 해도 주차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동차에 비해 주차 공간은 턱없이 부복하니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통로를 막고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자.
다른 차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통로를 막아 놓았으면 아침 일찍 차를 치워 놓는 수고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수고를 안 한다. 결국 아침마다 경비 아저씨들이 온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차 빼 달라는 방송을 해대는 것이다.
한번은 불법 주차한 다른 차 때문에 내 차가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적이 있다. 몇 번이나 k를 둘러보았지만 연락처를 남겨 놓지도 않았다. 서너 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리다 보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결국 사람들을 불러다 그 차를 들어서 옆으로 옮겨 놓고 간신히 빠져 나왔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주차한 차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 차체를 통째로 긁어 놓거나 타이어를 펑크 내는 따위는 기본이고, 심하면 유리까지 박살내기도 한다. 차 주인이 그런 해코지를 당했다며 억울하다고 경찰서를 찾아갔다가는 오히려 주차 위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비인간적인 것 같지만 한국 사람들도 이 무법천지를 고치려면 독하게 마음먹고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주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차는 많고 주차장은 좁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성남시만 해도 이른바 ‘개구리 주차’를 허용함으로써 주차 문제가 상당히 해소된 편이다. 편법이긴 하지만 차도 사람도 못 다니는 것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양쪽 모두를 배려해 주는 것이 낫다.
12. 총체적 무질서, 아 대한민국!
달리는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다니....... 이런 장면은 한국 아니면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이것도 모자라 이들은 운전을 하는 기사한테까지 마이크를 건넨다. 놀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
이제는 아예 ‘공해’가 되어 버린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굳이 공중도덕까지 들먹이기 전에 내가 통화하는 내용을 남이 들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듣고 싶어서 듣는 건 아니지만 뚫린 귀로 들리니까 가만히 들어 보면 정말 급한 이야기, 생산성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10퍼센트도 안 된다. 그런데도 식당이든 지하철이든 심지어는 비행기 안에서도 휴대폰 소리는 그칠 새가 없다. 어쩌다 외국의 관광지에 가 보면 ‘사진 촬영 금자’ 라는 팻말이 붙은 구역이 있다. 관광객이 사진을 안 찍으면 무슨 재미로 관광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굳이 사진을 찍지 말라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장소에서 부득부득 사진을 찍다가 망신당하는 사람들, 십중팔구 한국 사람이다.
여러 나라 사람들 중 한국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방법은 또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바퀴가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아 달라는 스튜어디스의 간곡한 부탁이 몇 번이나 거듭된다. 그런데도 일단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았다 싶으면 주섬주섬 일어나서 가방을 챙겨 들고 출입문 앞에 서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틀림없이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들이 고스톱 좋아하는 것은 아무도 못 말린다. 사실은 나 자신도 여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나도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고스톱을 많이 쳤으니까. 고스톱하고 골프를 같이 해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으므로 고스톱깨나 치러 다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고스톱을 좋아하는 한국 친구가 있다. 그래도 명색이 경찰서장까지 지낸 양반인데 정말 무지무지하게 고스톱을 좋아한다. 이 사람이 하도 고스톱을 열심히 치다 보니 허리에 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래서 문병을 가보니 침대에 떡하니 누워서 다른 문병객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주 질려 버렸다.
일본의 노인들은 어지간해서는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것이고, 그러면 그들에게 불편을 끼치기 때문이다. 설령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가 있다 해도 양보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편하게 가고 싶다는 유혹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할 것인가. 그러니 양보를 받지 않아도 그들에게 불편을 끼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아예 외출을 하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나갈 일이 있으면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한다. 그런데 한국의 노인들은 이런 식으로 젊은이들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 먹은 것을 무슨 특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리를 양보한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당연히 자기 자리라는 듯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말이다. 오히려 양보한 사람이 쭈뼛쭈뼛 미안한 표정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젊은이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노인을 공경하는 것과 노인 스스로 오로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경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13.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정부 자신부터 법과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철새처럼 시류에 따라 여기저기 떠다니는 사람일수록 높은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런 정부라면 국민에게 법과 질서를 지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런 소리를 백날 해 봐야 아무도 듣지 않는다.
교육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대학 입시에만 매달려 있다. 가르치는 선생 자신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명문대학에 집어넣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심지어 교사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학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는 데 혈안이 된 선생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사회 환경이 이러니 질서 교육, 도덕 교육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내가 보기에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 곳은 종교 밖에 없다. 다행히 한국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밤에 좀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집 건너 하나씩 빨갛게 불을 밝힌 교회의 십자가가 보이다. 성남시로 들어가다 보면 집 없는 빈민의 모여 사는 비닐하우스 촌이 있는데, 거기에도 어김없이 교회가 있다.
미리 밝혀 두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무릇 종교라면 세파에 지친 힘없는 인간들을 따뜻이 위로해 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요일 아침에 교회 근처를 지나다 보면 두 가지 풍경을 볼 수 있다. 예배 보러온 사람들이 제멋대로 차를 세워 놓은 탓에 다른 차가 마음대로 지나갈 수 없는 교회가 있고, 목사인지 집사인지 모르지만 어깨에 띠를 두른 사람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회가 있다. 그나마 무질서한 쪽보다는 낫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교회라면 굳이 사람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없어야 정상이다.
나는 한국의 교회가 구원과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교통법규를 지키고 공중도덕을 지키라고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질서를 지키면 머지않아 한국은 ‘하느님의 역사(役事)’와도 같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14. 폭탄주의 나라
일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광적으로 섹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해 ‘섹스 애니멀’이라고 부르는 한국인이 많다. 하지만 일부 극성맞은 일본 사람이 일찍부터 기생관광이다 뭐다 해서 설치고 다니는 바람에 그런 별명을 얻었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정력’하나만 놓고 보면 한국 남자들이 일본 남자보다 훨씬 세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마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마늘을 먹고 안 먹고는 지극히 사소한 식성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일부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을 차별한다면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마늘일 것이다. 마늘을 먹으면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냄새에 익숙하지 않는 일본 사람 중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섹스를 좋아한다는 근거로 언급되는 것이 이른바 ‘원조교제’인데, 나로서도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원조교제에 나서는 아이들이 r여고생도 아니고 여중생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한때 일본에서도 이른바 ‘생계형 매춘’이 성행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매춘 금지령이 발효된 날짜는 1958년 4월 1일이다 내가 왜 이렇게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느냐면 바로 그 전날이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바깥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 외박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시험 때면 친구 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서 빠져 나와 밤새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병든 부모를 봉양해야 하거나 동생 학비를 벌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유흥가에서 잠을 자고 온 녀석들 중에는 같이 잔 아가씨가 ‘이런데 다니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며 헤어질 때 용돈까지 주더라고 자랑하는 녀석들까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원조교제는 그런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일본 여학생들이 원조 교제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휴대폰 때문이다. 일본의 부모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식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러 다니려면 휴대폰이 꼭 필요하다. 그러니 천생 자기가 벌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요금도 만만치 않다. 부모 몰래 휴대폰을 샀는데 부모한테 요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그런 아이들이 원조 교제에 나선다. 하룻밤만 눈 질끈 감고 있으면 한 달 휴대폰 요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한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1970년대 초반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무렵만 해도 일본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 입을 딱 벌리곤 했다. 술집에 가면 도대체 어떤 아가씨를 골라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예쁜 여자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가족 때문에’ 몸을 팔았지만 요즈음에는 외국 여행을 가기위해, 모피 코트를 사기 위해, 외제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 몸을 판다.
말이 나왔으니 이야기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겁나게 술을 마신다. 얼마 전 일본에서도 대학생이 한국에서 수입한 ‘폭탄 주’를 마시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폭탄주는 단연 한국 사람들의 발명품이다.
한편 일본의 음주 문화는 아주 다르다. 일본에는 이렇게 술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퇴근길에 직장 동료들끼리 ‘이치코푸 하자!’고 의기가 투합해서 모여도 말 그대로 이치코푸(한 잔)만 홀짝 마시고 미련 없이 일어선다.
일본 사람들은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면 아예 인간 취급을 안 해 버린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술기운이 올라와서 헛소리를 지껄인다 싶으면 미련 없이 차를 세우고 “너 내려!” 하고는 혼자 가 버린다.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절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친구로 지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5. 전과자가 떵떵거리는 나라?
전 세계를 통틀어 국회의원 가운데 ‘전과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한민국만큼 높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뇌물을 받아 교도소에 갔다 온 사람들이 버젓이 국회의원으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되는 곳이 한국이다. 이것은 애국심이 투철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게 나라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정부가 앞장서서 도망을 갔다. 몽골의 침입을 받았을 때에도, 임진왜란 때에도 임금은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한국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가 도망가고 난 다음에 한강 다리를 폭파시켜 버렸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그러고 나서도 그는 10년 동안이나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사는 부도 직전이라고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던 모 그룹 회장이라는 사람이 외국에 출장을 가면 특급 호텔 한 층을 모조리 빌리는 것도 모자라 헬기까지 동원해서 골프 치러 간다며 난리를 피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애국심을 발견할 수 있는가.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하는 말이다. 명예훼손 문제만 아니라면 이름을 밝힐 수도 있다.
한국에서 재벌 그룹 회장이라 해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 정도 돈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회장님’들이 외국에 나가서 호텔 한 층을 다 차지하고 거들먹거리면 세상이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비웃을 뿐이라는 사실을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다.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애국심이 점점 옅어지는 상황이 계속되면 머지않아 국민조차 애국심을 길러야 할 필요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16. 다이옥신 소동
다이옥신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언론에서는 “청산가리보다 1만 배나 독성이 세다”느니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험한 화학 물질”이라느니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물론 해로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문제를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보도’라기보다 ‘선동’에 가깝다.
17. 부실공사 추방 원년
부실공사 추방 원년이라는 구호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원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그게 벌써 그렇게 됐나?” 하겠지만, 1994년이 바로 성수대교가 무너진 ‘부실공사 추방 원년’ 이었다.
독일 라인 강 하류에 ‘레마겐 다리’라는 유명한 다리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게 쫓기던 독일군은 미군이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도록 그 다리를 폭파시키려 했다. 웬만한 다리도 간단히 날려 버리도록 충분히 폭약을 넣어 폭파를 시도했지만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폭파를 시도했는데, 이번에도 조그만 구멍이 뚫렸을 뿐 다리 자체는 멀쩡했다. 더 이상 미적거릴 여유가 없던 독일군은 할 수 없이 그냥 철수해 버렸고, 수만 명이나 되는 미군은 유유히 이 다리를 건너 독일군을 궤멸시켰다. 당시 미군 사령관은 “레마겐 다리가 붕괴되었더라면 연합군의 승리는 6개월 이상 늦어졌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다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18. 머리가 너무 좋아 탈이야.
하나의 소각장이 건설되어 제대로 가동하는 데에 1에서 10까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자. 한국 사람들은 처음에 열심히 기술을 배운다. 그러다가 대여섯 정도까지 알고 나면 서서히 태도가 달라진다. 이 정도면 배울 만치 배웠으니 나머지는 우리끼리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나오는 것이다.
한국은 아침과 낮의 기온차이가 상당히 큰 편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냉각수를 식히기 위해 굳이 선풍기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일일이 사람 손으로 선풍기를 껐다 켰다 하는 방식이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라서 외부온도에 따라 선풍기 작동 여부가 자동으로 체크되는 컴퓨터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내가 포항제철에 납품하려 한 것이 바로 그 시스템이었다.
포항제철에 들어가 담당자를 만나서 한참 시스템의 원리와 구성 등을 설명했더니 대번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 정도라면 우리 기술로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습니다.”
자기네도 할 수 있다는 데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아, 그렇습니까. 몰라보아서 죄송합니다.” 하고 나오는 수밖에. 그 후 포항제철은 몇 년에 걸쳐 그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일본 기술을 도입했다.
19. 국민의 정부에 바라는 4가지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뿌리 뽑아야 한다.
둘째, 질서 회복에 국가적인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교육 제도를 과감하게 정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풍부한 인적 자원이 밑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학에 합격하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거대한 ‘예비 실업자 양성소’로 전락해 버렸다. IMF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대졸 실업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교육 개혁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최소한 바람직한 교육 개혁의 방향만이라도 확고부동하게 잡아 놓아야 한다. 다음 정권이 들어서도 여전히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읊조리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서는 안 된다.)
넷째,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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