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는 순간 단숨에 읽히는 책이 있다. 허긍열 님의 최신작 <알프스 트레킹 - 1, 몽블랑 산군>이 그렇다. 바쁜 일상 중에도 틈나는 대로 트레킹 코스 하나 하나를 읽다보면 그 곳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알프스 샤모니몽블랑 주변의 트레킹 코스 안내와 산행기를 읽으면서 환상적인 풍경이 잘 표현된 사진들을 감상하다보면 그 트레킹 코스를 실제로 걷고 있는 듯한 행복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알프스 산록을 걸으며"로 시작되는 책의 서문에는 저자의 샤모니 생활과 알프스를 대하는 마음, 등반가로서의 생활 철학 등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준비할 필요는 있겠지만 미리 우산을 피고 다니거나 몇 개씩 준비해 다닐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현실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힘든 전문 등반가로서의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진다. 서문을 읽고나면 이 책이 단순한 트레킹 안내서에 머물지 않고, 저자가 느낀 알프스의 숨결까지 가감없이 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전해진다.
책의 본문엔 샤모니 계곡을 중심에 두고 사방에 산재한 트레킹 코스 중에서 저자가 선별한 열여섯 개의 루트에 대한 코스 가이드, 산행기, 산행 지도, 산행 길잡이, 구간별 산행 시간까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 알프스 사진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멋진 사진들과 함께 본문을 읽어 나갈 수 있으니 꼭 만화책 보는 것처럼 재미가 있다. 저자가 십여 년을 샤모니에 살면서 책 속의 코스들에 대한 다양한 사계 풍경을 직접 경험하고 잡은 그림들이기에 한 컷 한 컷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계절과 날씨가 다르면 전혀 다른 풍광이 된다는 걸 산에 다니는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 어떤 목적과 생각으로 누구와 함께 그 산에 가느냐에 따라서 아주 다른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산과 자연은 더욱 아름답다. 알프스에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샤모니 주변 트레킹을 이미 다녀온 이들에게도 이 책이 새롭게 느껴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 속의 트레킹 코스 중 몇 구간은 내가 이미 걸어본 곳도 있다. 그렇지만 책 속의 그 곳은 지명이 낯익은 내게도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자연과 함께 오래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모양이다. 책 속에는 봄에 대지가 얼고 녹는 것을 반복하며 토양에 자양분을 공급할 틈새를 만든다는 사실,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낸 알파인 지대의 들꽃 군락지에 대한 세밀한 설명이 들어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려 이십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우쉬 언덕과 발므 고개를 넘나들면서 푸른 초원을 노랑 꽃으로 물들였을 것이란 상상은 재미있다. 아네모네, 크로커스, 알핀로제 등의 각종 야생화와 제라늄 화분으로 장식된 산장이나 민가를 보면서 걷는 트레킹 길은 정말로 환상적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곳에 가고픈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게다. 어느 정도 지명과 지형이 낯익은 내게도 가고 싶은 곳이 새롭게 생겼다. 메르 더 글라스 빙하를 지척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알파인 산장인 쿠베르클, 샤르푸아, 앙베르 산장에 가고 싶다. 암빙벽 등반 경험이 전무하던 때에 몽탕베르 역 앞에서 빙하로 뻗어내린 수직의 철사다리를 내려가던 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발레 브랑쉬 설원을 걸어보고 싶고 그 주변에서 알파인 등반도 경험해보고 싶다. 고성처럼 펼쳐져 있는 피츠 장벽 아래의 한적하다는 알파인 호수 앙테른이 보고 싶고, 이태리라서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쿠르마이예 주변에서 몽블랑과 그랑드조라스의 남면을 조망하고도 싶다. 꼭 몽블랑을 일주하는 TMB가 아니라도 좋다. 내 맘 속의 열정이 식지 않고 잘 준비한다면 언젠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본다.
1. 벨라샤 산장 유리창에 사진 찍는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이 산장에 갔을 땐 유월 초라서 산장이 닫혀있었다.
아무도 없던 이 산장의 나무데크에서 등산화까지 벗고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2. 메르 더 그라스 빙하를 지천에서 느낄 수 있다는 쿠베르클 산장과 사루푸아 산장에 가고싶다.
3. 샤모니에 또 간다면 이 곳이 제일 먼저 가고싶어질 것이다.
4. 알파인 호수와 들꽃 군락의 아름다움은 아마도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5. 몽블랑 산군의 남측은 이태리. 쿠르마이예 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트레킹은 또다른 느낌일 것 같다.
6. 에귀디미디 전망대에서 보면 개미 같이 보이던 발레 브랑쉬 설원의 트레커들.
7. 우리 나라의 할미꽃을 닮은 아네모네. 나는 처음 이 꽃을 봤을 때 할미꽃이 알프스에도 피는구나 하고 그냥 넘겼었다.
8. 내게는 샤모니 부근의 트레킹 정보를 알 수 있는 책이 여러 권 있으나, 허긍열 님의 책이 모든 면에서 가장 알차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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