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승 교수의 미디어 월드]英 BBC 뉴스진행자 존 험프리
그가 지난달 29일, 2007년 특허장 갱신을 앞두고 BBC의 장래를 검토 중인 하원 미디어소위원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다. 가혹하기로 이름 높은 그의 정치인 인터뷰 스타일이 이유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상대가 토니 블레어 총리라 해도 가차 없이 말을 잘라버리는 그의 오만이 재허가 논의의 범주에 든 것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영국인들의 기대치는 그만큼 높다.
험프리 씨에게 당하기만 했던 정치인들로서는 그를 불러놓고 질문을 던지는 역전된 입장에 흐뭇했을 것이다. 험프리 씨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원들의 물음에 “청취자를 대신해서 권력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의 가혹한 인터뷰에 대해서는 “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을 말한 적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리젠터 험프리 씨의 주장은 권력을 상대하는 저널리즘의 고민을 반영한다. 저널리즘의 힘은 시민의 신탁(信託)에서 비롯된다는 자각은 평범하지만 강하다. 내각의 수반인 총리마저 개의치 않는 무례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실천방법이다. 중간지점을 찾는 것은 자기방어에 불과한 비겁한 태도다. 정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언론과 권력의 관계다. 그러나 험프리 씨의 청문에서 보듯이 빌미를 제공할 경우 언론의 입장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권력이 목을 쥐고 있는 공영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3월 영국 정부 내 BBC 감독 부서인 문화부가 낸 녹서(green paper)는 BBC 이사회를 둘로 나누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규제기구이면서 경영 주체라는 이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위한 수탁위원회를 따로 두겠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구상이지만 오락 프로그램의 증가로 인한 방송의 상업화, 중동문제 보도에서 드러난 편향성 등 BBC가 지난 허가기간에 저질렀던 문제들의 대가다.
디지털시대 공영방송은 제도가 보장한 안락한 지위에 더 이상 머물기 어렵다. 항상 BBC를 모델로 내세우는 KBS는 요즘 스스로 위기라고 말한다.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KBS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돈이 아니다. 지난 세월의 잘잘못을 곱씹어 볼 때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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