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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스크랩] 파리(Paris)/가볼만한곳-4,방돔 광장,바스티유

방돔 광장
방돔 광장
방돔 광장
방돔 광장의 아름다운 조각상
파리 사이트시잉 버스(Sightseeing Bus)
엄숙함을 주는 멋진 공간, 방돔 광장(Place Vendome)
한국에서 주변 사람 누군가에게 방돔 광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이곳이 파리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는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파리를 여행할 경우 주요명소 위주로만 관광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방돔 광장이 파리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튀를리 정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방돔 광장은 8각형 형태로 된 광장으로 중앙에는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이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인 적의 대포 등을 녹여서 만든 청동상이 우뚝 솟아 있고 청동상 제일 위에 나폴레옹 1세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명품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명품샵들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유명 연예인, 부호들이 이곳에서 쇼핑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스티유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혁명기념탑
바스티유 혁명기념탑
바스티유 오페라
 
바스티유(Bastille)
프랑스 혁명은 민중이 이곳을 덮치면서 시작되었다. 바스티유는 샤를르 5세가 14세기에 지은 것으로 17세기 이후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혁명당시에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현재는 혁명기념탑과 오페라바스티유(OPERA BASTILLE)라는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역사적인 바스티유 공격 200년을 기념하여 1989년에 세워진 모던스타일의 건물이다. 미테랑 대통령이 추진한 그랜드 프로젝트(Grand Projects)의 일환으로 발레와 현재무용을 상연할 수 있는 근대적인 오페라하우스의 건설이 이루어졌으며, 캐나다의 건축가인 칼로로스 옷토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고흐의 묘비
고흐의 묘비
오베르의 교회
오베르 쉬르 와즈 동네 거리이정표
고흐의 묘지
고흐가 마지막 생을 보낸 곳,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 Sur Oise)
베르사이유 궁전을 마치고 앵발리드에 도착한 나는 일행도 놓치고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안내책자의 반쪽 페이지를 차지하는 여행지 오베르 쉬르 와즈로 가기로 했다.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 Sur Oise)는 고흐가 마지막 창작활동을 하다가 1870년 7월 29일 생애를 마감한 장소로 파리 시내 중심부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40㎞가량 떨어진 곳으로 센강 상류인 와즈 강가의 한적한 마을이다. 고흐가 이곳에 머문 기간은 두 달 남짓. 그러나 작품활동 기간이 10년에 불과한 천재 요절 작가에게 두 달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배낭여행객들은 대부분 오베르 쉬르 와즈를 찾아갈 때 RER선을 타고 간다. Pontoise 에서 한번 열차를 갈아타고 도착한 오베르 쉬르 와즈 역은 정말이지 작고 한적한 역이었다.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 sur Oise)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가면 그의 그림작품에 등장하는 오베르의 교회를 볼 수 있고, 그 당시 고흐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주변을 산책할 수 있다.

첫번째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오베르의 교회다. 고흐의 작품속에 표현된 당시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월의 비바람을 이겨내고 서 있었다. 간간히 흩날리듯 날아올랐다 내려앉는 비둘기떼의 모습과 뛰엄뛰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오고감이 있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8월 초순. 그의 그림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밀밭과 해바라기를 볼 수 있으려나 싶은 막연한 기대속에 혼자서 이곳을 찾은 것이다. 오베르의 교회를 배경으로 해서 카메라를 급조 지지대위에 올려놓고 셀프 타이머를 이용해서 사진을 여러장 찍어본다. 그러는 사이 금발머리 프랑스 남편과 검은 머리 일본인 부인이 딸 세명을 데리고 오베르의 교회로 다가왔다. 아이들 나이가 유치원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것이 참 단란한 가정이었다. 존 레논이 일본인 전위 예술가와 결혼했을만큼 일본 여인들은 외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것일까? 침략이 적었던 일본은 신도(神道), 독특한 일본만의 전통 등 때문인지 여성들이 지니는 신비감과 커리어적 성향이 맞물려서 외국인에게 좋은 신부감이 되는 듯 하다. 바로 옆에서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어보니 가족이 여러 외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멀티링구얼 가족이었다.

이곳의 밀밭은 6월에 황금들판을 이룬다고 하는데, 내가 이곳을 찾고 있는 지금은 8월 11일. 밀밭 들판은 싹둑싹둑 잘려나간 밀 밑동만이 허허벌판에 남아있을 뿐이고 해바라기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방 좌우의 지세와 수풀을 되짚어보며 상상에 잠기면 과거의 어느날 고흐가 이곳의 길, 밀밭, 수풀을 거니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하게끔 해준다. 이곳의 밀밭을 배경으로 고흐는 마지막 명작 <밀밭 위의 까마귀(떼)>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6월에 이곳이 황금빛 밀들이 출렁거리고 밀밭둑엔 옥수수가 자라고, 이곳 저곳에 하늘을 향해 팔벌린 해바라기들이 즐비한 그 시간에 찾아와 보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키가 큰 밀밭을 가로질러와 들꽃 한다발을 고흐의 묘지 위에 올려두고 가고 싶다.

오베르의 교회를 지나쳐서 우측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가다보면 밀밭이 펼쳐지고 저 멀리 고흐의 묘지가 있는 공동묘지 입구가 보인다. 처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고흐의 묘지를 단번에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먼저 이곳에 도착했던 앞서 말한 가족들이 있어 무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흐의 무덤은 다른 공동묘지안에 있는 다른 무덤들과 다를바없이 단순하다.

고흐의 무덤옆에는 그의 동생 테오의 묘도 함께 있다.
출처 : 작은畵室
글쓴이 : 독일병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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