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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150일간의 쿤룬산맥 탐사에 관한 기록1

150일간의 쿤룬산맥 탐사에 관한 기록1

위대한 자연은 항상 그곳에


흔들리는 건 인간의 마음일 뿐



샹그릴라의 최고봉 메리수에산의 전경. 아직까지 인간의 발이 땋지 않은 미등봉이다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고원에서 출발해 중국의 타클라마칸사막, 신장성, 간쑤성, 쓰촨성, 윈남성을 지나 베트남에 이르러서야 끝나는 쿤룬산맥. 산맥을 따라 기원전부터 인류는 고대문명을 꽃피우기도 하고, 험한 무역로를 개척해왔다. 불교와 이슬람 종교가 번창하면서 곳곳에 신비스러움이 어려 있는 땅이기도 하다. 무즈타그마타, 마자르, 암네마친, 공가, 잠베양 등 해발 수천미터에 달하는 고산은 오래전부터 많은 탐험대를 불러들였고, 그들의 목숨을 잠재우기도 했다. 앞으로 두번에 나눠 1만5천㎞에 달하는 쿤룬산맥 탐사기를 싣는다.<편집자>      


티베트의 한 노승이 이제 막 경전을 공부하는 젊은 승려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기 흔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깃발입니까? 바람입니까?’
파키스탄을 넘어 중국에 들어서는 차 안에서 이번 탐사를 같이 하게 된 히로꼬(Hiroko Suzuki, 30세 나고야 거주)가 네게 묻는다. 답을 하지 않고 차창만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쿤룬산맥(崑崙山脈)을 따라 베트남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1만5천km의 대장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차창 밖으로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지는 파미르(Pamir)고원이 펼쳐진다. 이곳 파미르에서 쿤룬산맥이 시작된다. 중국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신장 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이다. 우리는 작은 행낭 하나를 꾸려 쿤룬산맥의 최고봉인 무즈타그아타(木孜塔格山, 7.546m)로 길을 나섰다. 위그르(回紇)족 모녀와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2시간 남짓을 달려 아름다운 카라쿨리 호수에 도착했다. 멀리 호수 뒤로 ‘ 얼음산의 아버지 ’ 무즈타그아타가 그 큰 덩치를 같은 면적으로 호수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위구르 꼬마들이 성가시게 따라다니며 낙타를 타라고도 하고 장신구를 사라고 한다. 또 유르테(Jurte,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가죽으로 만든 둥근 지붕의 천막)에서 숙박하기를 권했지만 우리는 거절하고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우리에게는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둘러 무즈타그아타 베이스캠프로 가야만 했다.


이슬람, 불교의 성스러운 무덤, 마자르
위구르인들은 이 산을 마자르(Mazar), 즉 성스러운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모하메드의 사위가 묻혀있다는 것이다. 또 이 산의 꼭대기에 자이 나다르(Dechainader)라는 도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죽음과 고통을 모르는 이상향의 도시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야기의 근원은 이슬람교가 이곳에 들어오기 한참 전 불교문화가 이 지역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AC700년, 현장스님이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장은 이 무즈타그아타를 지나며 이 산꼭대기에 기적을 통해 생긴 사리탑이 하나 솟아있다고 말한다. 현장은 이 불교 성유물인 사리탑을 근거로 비종교인에게 두려움을 주고, 신비주의자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낸다. 이 산의 정수리에는 큰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 불사신의 상태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승려의 도움을 얻어 종을 울려 성인을 깨웠다. 참선에 들었던 성인은 깨어나 그의 스승인 부다 카시아파(Buddha Kassyapa)에 대해 물었고, 또 석가모니에 대해서도 물었다. 왕과 승려는 그분들은 세상에 정도를 가리키고 헌신하셨지만 이미 오래전에 열반에 들었다고 말했다. 성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몸을 기적처럼 불덩이로 만들어 몸을 태워버렸다. 왕은 그의 뼈를 모아 그 자리에 사리탑을 세웠다. 훗날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야기 속 불교의 성인은 모하메드의 사위로, 사리탑은 이슬람의 성묘인 마자르로 변해 내려오고 있다.



수봐쉬 마을의 양치는 목동 뒤로 황혼에 물들기 시작한 무즈타그아타가 솟아 있다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리라, 타클라마칸


하얀 얼음산은 우리가 다가설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4천m의 저산소에서 오는 거리감각의 상실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높이 오를수록 가시광선의 영향에서 벗어난 하늘은 더욱 검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음산을 사진 한 장으로 남기고 우리는 다시 서둘러 사막으로 길을 나섰다.
‘들어가면 당신은 나오지 못하리라.’ 중국 최대의 사막이자 세계에서 사하라사막 다음으로 큰 타클라마칸사막의 위구루어 뜻이다. 신강 위구르에 위치한 이 사막은 동서길이 1천km 남북 5백km 면적 33만7천㎢로 유동사구가 85%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사막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타림강과 호탄강, 야르칸트강, 케리야강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고대로부터 오아시스 도시들이 생겨났고, 실크로드의 중요 요충지로 비단길과 함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같이한 곳이기도 하다. 또 이 사막의 북쪽으로는 톈산산맥(天山山脈)이, 남쪽으로는 쿤룬산맥이, 서쪽으로는 파미르고원이, 동쪽으로는 고비사막이 에워싸고 있다. ‘서역남로(西域南路)’로 들어섰다. 8월말의 더위를 실은 버스는 아름다운 백양나무 숲길을 거침없이 달린다. 카시가르를 출발한 버스는 5백km를 달려 실크로드 최대의 왕국이었던 호탄(和田)에 도착했다. 호탄은 8세기 실크로드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에 옥과 비단, 면화 등을 이용한 대상무역의 중심지였다. 이 거대한 중앙아시아의 통로를 처음 연 사람은 예수가 태어나기 1세기 전 장건(張騫, ? - BC114)이라는 모험심 강한 사내였다. 당시 한 무제(漢武帝)는 흉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BC138년 장건을 100여명의 군사와 함께 타클라마칸사막 너머의 월지(月氏)로 동맹을 맺기 위해 파견한다. 하지만 그는 간쑤성(甘肅省)에서 흉노의 포로가 된다. 10년 후 탈출에 성공해 월지에 도착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동맹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에 관한 정보였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도시와 로마가 중국에 알려지고,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것이다. 그는 실크로드의 아버지였다.


오체투지하는 겸손을 배우는 암네마친봉
우리는 호탄을 출발해 사막을 가로질러 쿤룬산맥을 따라가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 정처 없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할까?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지만 안정된 마음에서도 찾기 힘든 답을 고단한 탐사 속에서 찾기란 더더욱 어려우리라. 다만 이번 탐사의 정보가 여행자와 등반가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행자는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사막에서의 탐사를 마치고 내 키의 반쯤 되는 큰 배낭을 둘러메고 한손에는 큰 카고백과 다른 한손에는  카메라장비와 간식을 들고 우루무치(烏魯木齊) 기차역으로 향했다. 매번 짐을 줄이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아마 이 많은 짐들은 내 욕심들이라!’ 포기하지 못하는 등반장비와 많은 지도와 책 그리고 자료들. 힘겨운 여정의 연속이다. 중국의 기차여행은 사람냄새가 난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또는 많은 짐을 옮기기 위한 사람들로,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마치 전쟁터와 같다. 하지만 저마다의 삶의 보따리를 실은 기차가 출발하면 모두 친구가 된다. 초라한 입성도 나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루무치를 출발한 기차는 신장 위구르자치구를 지나 간쑤성에 들어선지 오래다. 치라안(祁連)산맥은 진 시왕(秦始皇)이 흉노(匈奴)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2천7백km의 만리장성이 끝나는 곳이다. 멀리 하얀 눈을 뒤집어쓴 치리안산맥들의 고봉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다시 기차는 급격히 고도를 올린다. 고원지대에 들어선 것이다. 대양(大洋)의 파도와 같이 넘실대는 구릉진 초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청장고원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티베트고원이란 말의 한정된 느낌에서 벗어나 중국 서부 고원지대를 모두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는 칭하이성(靑海省)의 다우(大武)를 거쳐 중국내륙 적석산맥(積石)의 암네마친으로 향하는 낡은 버스에 올랐다. 칭하이성의 많은 고산 중 암네마친은 티베트 고원의 동쪽 경계인 동시에 문화적으로는 중국이 서쪽 오랑캐로 얕잡아 부르는 서융(西戎)의 무대와 경계를 가르는 지역에 위치한다. 또 이미 8세기 고지도에 나타나는 이 산은 2차 세계대전 중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Everest, 8.850m)보다 158m 더 높다고 발표되기도 했다. 티베트족인 원주민들은 암네마친봉을 성산 중의 성산으로 간주하고 약 2백㎞에 달하는 일주 코스를 순례 코스로 삼고 있다. 12년 만에 돌아오는 말의 해에 티베트인들은 이곳으로 순례를 나서며, 가장 신 앞에 겸손한 방법인 오체투지(五體投地, 온 몸이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함)로 순례를 한다. 암네마친산이 빤히 내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암네마친 곰파(Gompa, 절)는 이 성스러운 말의 산을 기리는 곰파이다. 다시 비포장 길을 달린다. 멀리 성스러운 말의 산 암네마친은 온통 구름을 뒤집어쓰고 우리를 반기고 있다. 암네마친이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산의 4천8백m 고지에서 자라는 설련화 때문이다. 중국중약사전, 신강중초약 등 문헌에는 설련화의 효능을 이렇게 적고 있다. 암을 억제하며, 자양강장과 남성의 정력에 좋다고. 그래서인지 이 산의 주위 1백km는 동물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설련화는 성스러운 암네마친이 맑은 영혼의 티베트인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네마친으로 향하는 다우시의 뒷산 전체를 물들인 탈쵸. 탈쵸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같이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표시이다


칭하이성과 쓰촨성의 경계에 위치한 렌포 유주피크와 아름다운 하늘호수


쓰촨에서 티베트를 거쳐, 다시 윈남성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세달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탐사에 조금은 지쳐가고 있다. 하지만 사막 위의 흰 산과 높은 고원 위로 떠오르는 해는 그곳에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관경이다. 더군다나 그 일정이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가 느끼는 성취감은 커질 것이고, 이것은 대자연이 우리에게 건넨 충분한 보상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과거 촉나라의 수도인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로 길을 잡아 나섰다. ‘촉의 개는 해를 보고 짖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통 희뿌연 하늘은 좀처럼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중국 내륙의 최고봉인 공가산(Minyakongka, 7.556m)으로 길을 나섰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설악산과 같이 모든 시설이 잘 정비된 관광지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케이블카를 이용해 전망대까지 쉽게 올라 비경을 감상한다. 하지만 걷는 것을 업으로 삼는 우리는 신발을 빙벽화로 바꿔 신고 이틀간 빙하를 거슬러 올라 공가산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산은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덩치로 ‘산 중의 제왕’이라 불린다. 1996년 한국 등반대 최초로 이 산의 정상을 등정한 후 하산하던 오종락씨를 이 빙하에서 잃은 슬픔을 겪기도 했다. 계속되는 악천후는 3일을 기다려도 좋아지지 않는다. 드디어 4일째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조금씩 번지기 시작한 파란 하늘 위로 산 중의 제왕이 드디어 얼굴을 내민다. 긴 기다림의 끝에서 맞이하는 비경에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저마다의 가슴에 담고 동부 티베트를 거처 윈남성(雲南省)으로 쿤룬산맥을 쫓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본 등반대 15명 목숨 앗아간 잠베양
‘샹그릴라 !’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The Lost Horizon)’에 나오는 샹그릴라는 이곳이 아니었다. 관광수입을 고려한 중국정부의 상술로 만들어진 샹그릴라와 라스트 샹그릴라는 비행기가 없다는 것 말고는 인류가 찾아 나선 이상향의 장소와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티베트인들이 경배하고 우러르는 분칠을 한 하얀 산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산과 얼굴을 맞대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5년전 이곳의 가장 성스러운 산인 잠베양(Jambeyyang, 6.239m)을 등반하고자 일본 등반대가 찾았다. ‘당신들은 이 산을 등반해서는 안 됩니다.’ ‘신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티베트인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등반대는 등반을 시작했고, 눈사태로 15명 대원 전원이 사망한 곳이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잠베양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솟아나고 있다.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라면 아마도 신의 영역이리라. 아름다운 호수를 등지고 쿤밍(昆明)을 거쳐 베트남의 하노이(Hanoi)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 베트남에서 대륙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쿤룬산맥이 막을 내린다. 또 5개월 동안 바람 같이 달려온 우리의 탐사도 끝을 맺어야 한다. 5개월간의 탐사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신장 위구르의 삭막한 사막 위에서 때로는 4천m가 넘는 티베트고원 위에서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맑은 영혼들과 그들을 변함없이 바라보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히로꼬가 탐사가 시작될 쯤 물어본 답을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그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글사진 | 임성묵(월간사진 2005년 7월호 게재)


임성묵(hunzapeak@korea.com)은 월간 ‘사람과 산 ’ 빅월클라이잉 전문기자와 고산 거벽 등산학교 강사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파키스탄 브락상 피크 변형루트 등정, 파키스탄 카체브랑사 북봉 초등, 파키스탄 혼보로 피크신 루트 개척, 힌두쿠시 무스듬 피크 루트 개척, 파키스탄 아딜피크 북 서벽 루트 개척, 파키스탄 트랑고 타워 서벽 루트 등반, 중국 사천성 총라이 산맥의 쓰구냥 동계등반 등의 경력을 가진 전문 등반인이다. 2002년 2회 알파인 클라이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