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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칭기즈칸의 길/「대장정」마무리]장쾌한 드라마 117일

칭기즈칸의 길/「대장정」마무리]장쾌한 드라마 117일


작열하는 태양. 숨쉬기조차 힘들다. 도로에 온도계를 대봤더니 섭씨 72도를 웃돌고 나무 그늘에서도 40도가 넘는다. 자동차 타이어가 부풀어 올라 금세라도 터질 것 같고 이글거리는 복사열 속에 낙타들이 물위를 걷는 듯이 보인다.

1백17일만에 횡단한 유라시아 대륙 1만7천여㎞. 초원과 사막, 거대한 내해(內海)를 건너는 대장정은 기마민족의 끊임없는 생존투쟁의 역사만큼이나 장쾌하고 드라마틱했다.

동아일보사와 MBC가 공동 기획하고 ㈜대우가 협찬한 「칭기즈칸 원정로 탐사대」는 5월3일 7백여년전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달렸던 길을 따라 유라시아대륙을 국산 승용차로 횡단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출발했다.

첫 구간인 몽골의 대초원에서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흙먼지만 날리는 초원에서는 마치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방향감각조차 없다. 고비사막과 알타이산맥을 넘을 땐 주유소는 물론 물조차 찾을 수 없어 대형트럭에 물과 휘발유를 가득 싣고 다녀야만 했다.

돌멩이와 모래구덩이를 피해가느라 시속 15∼20㎞로 거북운행을 하다보니 말이나 낙타를 타고 가는 현지인들이 차라리 우리보다 빨랐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운 나라」 몽골은 나그네를 대하는 소박한 인정이 흘러넘치는 곳. 밤 10시경 초원의 지평선 아래로 해가 져 야영을 하기 위해 텐트를 치면 어디서 왔는지 말을 탄 유목민이 나타났다. 그들은 『「사잉바인 오(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집안에 있던 카펫까지 끌어내 텐트 바닥에 깔아줬다.

그리고 자신의 집인 게르(몽골 전통의 천막식 가옥)로 초대, 양 한마리를 통째로 잡거나 소젖 말젖 낙타젖 등을 발효시켜 만든 갖가지 차강이데(유제품)와 양고기를 넣은 만두 「보오츠」 등으로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사막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에서 영욕의 세월을 겪어온 사마르칸트 부하라와 톈산산맥 이시쿨호수 등을 지나 「이슬람 원리주의」의 나라 이란 국경에 도착하자 험난한 자연의 장애 못지않은 또다른 장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란 종교경찰은 국법상 통과할 수 없는 음란서적, 비디오테이프가 없는지 살피느라 탐사팀의 모든 짐을 샅샅이 뒤지고 노트북 컴퓨터부터 촬영용 빈 테이프의 내용까지 일일이 조사했다.

그들이 이틀 동안 탐사대의 짐을 뒤지던 모습은 차라리 야단이었다.

탐사대의 유일한 여성대원인 김지인씨(28·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는 『귀와 엉덩이를 보이지 말라』는 종교경찰의 지적을 받고 이란구간 내내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검은 망토와 머리수건인 헤잡, 차도르를 쓰고 다녀야 했다.

분쟁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카프카스산맥 이남의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에서는 전쟁과 마피아의 위험이 곳곳에서 취재팀을 가로막았다. 그 장애들을 하나 하나 넘기며 전진하다 내전지역인 그루지야 북쪽 압하스 국경을 넘기 직전, 결국 그루지야군의 총부리와 탱크에 저지당했다. 『당신들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니 돌아가라』

탐사대는 할 수 없이 흑해 동안을 따라 북상하려던 계획을 변경,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예정에 없는 터키로 들어간 후 배로 흑해를 건너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야만 했다. 탐사대원과 차량 2대를 실은 전장 1백42m, 1만1천t의 아제르바이잔 국적의 메르쿠리Ⅱ호는 꼬박 30시간만에 흑해를 건넜다.

탐사대가 「칭기즈칸 제국」의 발자취를 따라 자동차로 횡단한 나라는 몽골 러시아 카자흐 키르기스 우즈베크 투르크멘 이란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터키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 총 12개국.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수비대의 검문과 철조망에 막혀 1주일을 기다리기도 하고 수천㎞를 돌아가기도 했다.

드넓은 유라시아대륙에 민족도 종교도 국경도 비자도 여권도 필요없는 「하나의 세계」를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위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전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