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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스크랩] [세계의 ‘종자전쟁’] 유전자원도 중요

뉴스: [세계의 ‘종자전쟁’] 유전자원도 중요
출처: 주간조선 2006.11.0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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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자전쟁’] 유전자원도 중요

수원시 권선구의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유전자원센터 직원들은 연말까지 대대적인 이사를 해야 한다. 15만여점의 유전자원을 인근에 신축한 첨단 유전자원센터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원센터가 보존 중인 15만점의 유전자원은 유전자원을 보존 중인 국내 41개 기관 중 최대 규모. 1700여종에 이르는 식량, 특용, 원예 작물의 종자와 600여종의 미생물 자원이 특수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벼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의 종자 2만점이 보관돼 있다. 1987년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이 문을 연 이후 연구원들이 국내외를 돌면서 수집한 유전자원을 한곳에 모아둔 것이다. 이곳에 보관 중인 유전자원의 70%가 외국종이다.


종자를 비롯한 각종 유전자원은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다.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고마움을 잘 못느끼지만 유사시 특정 자원이 있느냐 없느냐는 국익(國益)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종자는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돈이 되는 새 품종을 개발하는 소재가 된다. 고려시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숨겨왔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씨앗 하나가 부(富)의 원천이 된다.

유전자원은 그 자체로서도 보존가치가 있다. 유전자원은 40억년 이상 진화된 생명체의 역사적 산물로 한번 소실되면 두 번 다시 재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2000만종으로 추정되는 지구 생물 중 매년 3만종이 멸종되고 있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세계 각국은 유전자원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04년 6월 발효한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농업식물 유전자원 국제조약(ITPGRFA)에서 보듯 이제 남의 나라 씨앗 하나도 함부로 쓸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ITPGRFA가 인정하는 농부권(Farmer’s Right)은 특정국에서 오랫동안 재배해온 재래종을 이용해 신품종을 개발했을 경우 재래종 보유국에도 개발 이익을 나눠주라는 것이다.


재래종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 멀쩡하게 눈뜨고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1960~1970년대 녹색혁명을 이끈 신품종 밀의 조상이 우리의 앉은뱅이 밀이라는 건 아직 유력한 학설에 불과하지만 콩은 한국 등 동북아가 원산지이다. 미국에서 콩 품종개량의 바탕이 되는 35개의 미국 토종 품종 중 적어도 6개 품종은 한국 토종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미스킴 라일락’은 한국 북한산 백운대 털개회나무에서 비롯됐다. 1947년 미 적십자협회 직원이었던 미더 박사가 한국 근무 중 백운대에서 씨앗 12개를 채집해 간 것이 이 품종의 출발이었다. 미더 박사는 자신을 도운 타자수 이름을 따 ‘미스킴’이라 하였다. 

산업스파이 전쟁처럼 유전자원의 절도와 복제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2005년 농림부 장관에게 보고한 주요 업무계획에 따르면, 조생황금배 등 우리가 거액을 들여 개발한 신품종이 이미 중국으로 유출된 것을 비롯해 2002년 이후 농진청, 관세청이 적발한 신품종 묘목의 중국 밀반출 시도가 5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조생황금배는 공식적으로 중국으로 나간 기록이 없지만 이미 중국에서 버젓이 재배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농업유전자원 유출 행위를 처벌할 근거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


선진국들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해 18세기부터 자원 확보와 보존에 열을 올렸다. 종자, 미생물에다 가축, 곤충 등의 생물자원까지 포함한 유전자원 보존 규모를 따져보면 미국이 46만점으로 세계 최고다. 그 뒤로 중국 37만점, 러시아 32만점, 인도 25만점, 일본 23만점 순이다. 자원 빈국인 한국은 자원 확보전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22만점으로 세계 6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유전자원 확보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토종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국내 토종 생물은 약 10만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파악된 종은 식물 8271종과 포유류 123종, 어류 905종, 조류 394종, 양서·파충류 41종, 곤충류 1만1853종 등 모두 2만9916종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자국 토종 생물 9만여종을 파악하고 있다.

11월 3일 준공식을 갖는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신축 저장시설은 우리의 유전자원 확보 노력에 전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26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04년 10월부터 짓기 시작한 이 저장시설은 연 건축면적 3352평에 최대 50만점의 유전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규모다. 기존 저장시설의 3.2배 규모로 유전자원 보존시설 중에서는 세계적 수준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중·장기 저장고와 영하 196도를 유지하는 초저온 보존고, DNA 뱅크, 검역온실, 표본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근 중국 등 외국 전문가들의 견학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현재 시험 가동 중인 이 시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기 저장고. 영하 18도의 온도에서 종자를 100년간 보존할 수 있다. 로봇 시스템이 도입돼 입출고를 모두 자동으로 할 수 있다. 종자 보관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일. 벼의 경우 4주 이상 건조시켜 자체 수분 함량을 5~7% 정도로 떨어뜨린 후 영하 18도, 40%의 습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장기 보관한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자체 수집이나 의뢰 등으로 연간 1만점의 유전자원 보존 요청을 받는데 이를 무작정 다 보존하는 게 아니라 자체 심사를 거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원만 보존한다.

매년 1만점 중 약 10%가 보존된다고 한다. 그래도 기존 시설에서는 이미 보존 자원이 넘쳐나 시설 확장이 시급했다는 것이 농업유전자원센터 측의 설명이다. 종자의 경우 당초 보존량의 85% 이하로 떨어지면 증식을 통해 보존 씨앗 수를 늘리라는 게 관련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이라고 한다.

농진청 김태산 유전자원과장은 “유전자원 보존의 경제적 가치는 2010년쯤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2013년까지 세계 5위의 유전자원 보존국으로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정장열 주간조선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