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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희망을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여요”
‘대한민국에 아름다운 희망 만드는 ‘풀뿌리 대통령’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하얀 옷을 입고 각종 문화행사장에 나타나지만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 박원순 변호사는 배낭을 메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빈다.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또 나눔전도사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그가 올봄엔 ‘희망제작소‘란 민간 연구기관을 만들어 화제를 모으더니 이 가을엔 우리나라 고문의 역사를 총정리한 ‘야만시대의 기록’(부제:고문의 한국현대사)을 펴냈다. 원고지 1600장 분량의 3권짜리여서 허약한 이들은 제대로 들기조차 힘든 책이다. 그동안의 행보도 그렇지만 그는 해체위기에 놓인 열린우리당의 외부영입 선장 후보 0순위로 지목되고 있고 중앙대 제성호 교수 등 일부 정치권에서는 `박 변호사는 노 대통령의 차기대권 히든카드이며 희망제작소는 대망제작소‘라고 주장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처음부터 단순무식하게 “대통령하실 마음이 있죠?”라고 묻고 싶었으나 예의상 그의 신작 ‘야만시대의 기록’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박 변호사는 “2년 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강의할 때 석 달 만에 끝냈다”면서 “자료정리하고 쓰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끝내놓고는 할 일을 한 것 같아 기뻤다”고 마치 성실히 마무리한 숙제를 보여주는 학생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책을 위해 15년 동안 고문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 일제강점기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행되었던, 그 끔찍한 고문의 역사를 생생히 담아 ‘혹독한 고문에 의해 몸과 영혼이 철저히 파괴당했던 이들의 제단 위에 바치는 일종의 ‘진혼무’란 평을 받았다.
“법을 배우면 뭐 합니까. 법적 권력을 부여받은 이들이 고문과 가혹행위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하면 백정과 뭐가 다릅니까. 쓰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 괴로웠습니다. 고문자들이 역사 속에선 무죄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인권유린에 대해 우리 모두가 감수성을 높여 예민하게 관찰해야 해요. 인간의 영혼은 질그릇처럼 약해서, 순간의 고문에도 그 상처는 영원히 남기 때문이지요.”
“정치하겠다거든 말려주세요”
남들이 모두 궁금해하는 질문을 할 차례였다. 대권도전을 비롯한 정치 입문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다.
“저는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정치적 언동을 하지도 않는데 언론에서 그렇게 몰아가는 것 같아요. 지난 총선 때는 제가 정치자금을 모은다는 소문도 났더군요. 또 언젠가 술자리에서 황석영 선생이 취중에 저보고 ‘홍길동이 간 율도국의 대통령’이란 말씀도 하시더군요. 저는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구름잡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가이고 활동가입니다. 사람은 모두 현재 가치와 보람과 효율성 면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게 가장 도움이 되고 행복한가를 따져야 하는데 저는 현재 실무자로 신나게 일하는 것이 제 자리라고 생각해요.”
박 변호사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할 뜻도 없지만 만약 나중에 하겠다고 하면 (자신을) 말려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희망제작소‘에서 그는 지역담당가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찾아 각 지역의 문제를 조사연구하고 있고 민선 4기 시장·군수 당선자들을 모아 ‘시장학교’도 열고 대학, 단체 등을 다니며 강의도 한다. ‘대권’에 대한 욕심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정치활동이 아닌가. 어떤 이는 그가 ‘모두 잘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임기도 없고 월급도 없는 풀뿌리 대통령’이란 찬사도 보냈다. 물론 정치권의 열렬한 구애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수혈이란 이름으로 신선도 높은 인사를 영입하고 여전히 전문성이 아니라 신선도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쌩쑈’를 하는 건 아닐까”라고 신랄한 평을 하기도 했다.
“정치를 하면 잘할 자신이 있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들도 정치죠. 국민의 지지와 신뢰 속에서 세상을 더 좋게 바꿔 가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정치는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너무 많으니 그들 세상이 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천사 같은 미소를 짓지만 박원순 변호사의 이력서를 살펴보면 그는 청개구리거나 아주 엉뚱한 사람이다. 남들이 다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남들이 극구 말리는 일은 희망에 들떠 열심히 한다.
가난한 집안에 자라 남들이 데모할 때도 영어공부나 하겠다고 ‘타임’지를 읽다가 데모 학생들이 잡혀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가 졸지에 ‘운동권 학생’이 되어 감옥살이를 했다. 제적 후 학력제한이 없어 고시에 응시했고 검사로 임명받았으나 ‘남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변호사로 변신했다. 이권변호사로 수익을 올리면 편히 살 것을 인권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건만 맡다가 참여연대의 발족에 참여했고, 사회운동가로 유명해졌을 때 홀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는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어 돈 내놓으라며 전국을 다니더니 재활용품이나 기부물품만 모은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50이 되자 ‘희망제작소‘란 싱크탱크를 만들어 자신을 스스로 ‘소셜디자이너‘라고 명명했다.
평범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다
이름부터 순하기 그지없고, 누구나 마음을 열 수밖에 없이 선하게 생긴 그가 언제, 어떤 번개와 벼락을 맞았기에 남들이 말리는 일, 힘든 일만 하게 되었을까.
“아마 대학 때 감옥에 갔던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서운 공안검사나 부티나는 변호사가 되었을 겁니다. 수감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사람은 누구나 착하다는 믿음을 얻었고 사회의 부조리와 억울함을 덜게 하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했죠. 남들이 안 될 거라고 하는 일을 시작해서 성공시킬 때 너무 즐거워요. 그리고 저는 무슨 일이건 끈질기게 열심히 하는 것은 자신있거든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무슨 일이건 참고 견디며 완벽하게 해내는 박원순 변호사가 꼭 하고 싶은 일이 부정축재나 출세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한층 바르게 만들어 희망을 주는 ‘착한’ 일이라는 것이…. 최고권력이란 대통령 자리도 싫다며 그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일은 ‘사소한 일을 바꿔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고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혼란을 거듭하는 것은 준비된 구체적 콘텐츠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굉장한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도 철저한 준비가 없어 정책에 일관성도 없고 구체적인 콘텐츠들이 없기 때문이죠. 한나라당은 여의도연구소, 열린우리당은 열린사회정책연구원이 있지만 대부분 이름만 위원인 당료들 월급으로 국고보조금이 쓰이고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한쪽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그때부터 두세 달 정도 정권인수위원회를 꾸려 정책을 가다듬어서 시행을 하니 누가 해도 정치는 엉망이 됩니다.”
그는 1998년 미국 아이젠하워재단 초청으로 두 달간 미국을 방문, ‘Institute for The future’라는 연구소를 방문한 이후 각국의 연구소들을 찾았다. 얼마 전엔 일본의 주요한 싱크탱크들을 돌아봤다. 일본의 재계가 미래의 일본과 일본인들을 최고의 나라와 국민들로 만들자고 해서 만든, 일본종합연구소 ‘미이라’ 등을 보면서 “과연 이처럼 우리나라의 미래를 고민하고 디자인하는 곳이 있는가”란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희망제작소. 석·박사급 연구원 20여 명과 함께 그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농업은 망했다고 하지만 지난 몇 달간 지방을 돌면서, 농업이야말로 21세기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농촌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거든요. 참다래를 팔아 연매출 500억 원을 올린 벤처농업인, 황토유치원을 만든 목사님 등을 만났어요. 문화건 교육이건 이런 식으로 뭔가 새로운 희망의 지역을 만들어낸다면, 앞으로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희망제작소의 업무들은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아주 소홀히했던, 혹은 우습게 봤던 사소한 일들이다. 희망제작소의 홈페이지를 보면 실시간 아이디어가 입력되도록 되어 있어 조금만 고치면 괜찮을 것 같은 아이디어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좌석버스에 빈 좌석이 없음을 알리는 표시등, 친환경 쌀 학교급식 실시를 위한 사회협약 등 시민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 주부의 경험에서 나온 임산부 프로젝트는 이미 시행 중이다. 임신 2개월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이지만 남들이 알기 힘드므로 임산부임을 표시하는 배지를 만들어 달아주고, 배려를 해주자는 것. 현재 희망제작소에서 하는 일과 아이디어들을 들려주는 그의 표정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마냥 환상적이었다.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진리는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기업정책은 현장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면 되고, 교육정책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됩니다. 직접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현장을 확인해보니 이제 돈이 보입니다. 앞으론 생태환경이 중요하니까 다양한 기능의 자전거를 만들면 잘 팔릴 것 같고, 조선산업도 커다란 배만 아니라 요트를 만들어 수출하면 될 것 같고 ….”
돈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의 재산과 월급을 물어봤다. 현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받는 월급은 매달 200만 원. 물론 포스코 사외이사 등을 맡아 생계걱정은 하지 않는단다. “지금 사는 집의 전세값을 올려달라는데 집사람이 저보고는 걱정하지 말라더라”며 웃었다. 올해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5000만 원도 기부했고, 너무 일이 많아 사무실 책상 밑에 이불을 깔고 잠자는 그가 간 큰 남편이 아니라, 그를 완벽하게 믿고 이해하는 아내가 정말 간 큰 아내인 것 같다.
하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항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을 만들어내기에 이 다음엔 어떤 일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특유의 꿈꾸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제가 변호사 시절엔 ‘참여연대’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고, 참여연대 시절엔 ‘아름다운 재단’은 계획도 없었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계획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 또 희망은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는 겁니다.”
<글/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2006년 11월 10일 (금) 15:25 뉴스메이커
[유인경이만난사람]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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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아름다운 희망 만드는 ‘풀뿌리 대통령’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하얀 옷을 입고 각종 문화행사장에 나타나지만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 박원순 변호사는 배낭을 메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빈다.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또 나눔전도사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그가 올봄엔 ‘희망제작소‘란 민간 연구기관을 만들어 화제를 모으더니 이 가을엔 우리나라 고문의 역사를 총정리한 ‘야만시대의 기록’(부제:고문의 한국현대사)을 펴냈다. 원고지 1600장 분량의 3권짜리여서 허약한 이들은 제대로 들기조차 힘든 책이다. 그동안의 행보도 그렇지만 그는 해체위기에 놓인 열린우리당의 외부영입 선장 후보 0순위로 지목되고 있고 중앙대 제성호 교수 등 일부 정치권에서는 `박 변호사는 노 대통령의 차기대권 히든카드이며 희망제작소는 대망제작소‘라고 주장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처음부터 단순무식하게 “대통령하실 마음이 있죠?”라고 묻고 싶었으나 예의상 그의 신작 ‘야만시대의 기록’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박 변호사는 “2년 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강의할 때 석 달 만에 끝냈다”면서 “자료정리하고 쓰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끝내놓고는 할 일을 한 것 같아 기뻤다”고 마치 성실히 마무리한 숙제를 보여주는 학생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책을 위해 15년 동안 고문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 일제강점기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행되었던, 그 끔찍한 고문의 역사를 생생히 담아 ‘혹독한 고문에 의해 몸과 영혼이 철저히 파괴당했던 이들의 제단 위에 바치는 일종의 ‘진혼무’란 평을 받았다.
“법을 배우면 뭐 합니까. 법적 권력을 부여받은 이들이 고문과 가혹행위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하면 백정과 뭐가 다릅니까. 쓰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 괴로웠습니다. 고문자들이 역사 속에선 무죄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인권유린에 대해 우리 모두가 감수성을 높여 예민하게 관찰해야 해요. 인간의 영혼은 질그릇처럼 약해서, 순간의 고문에도 그 상처는 영원히 남기 때문이지요.”
“정치하겠다거든 말려주세요”
남들이 모두 궁금해하는 질문을 할 차례였다. 대권도전을 비롯한 정치 입문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다.
“저는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정치적 언동을 하지도 않는데 언론에서 그렇게 몰아가는 것 같아요. 지난 총선 때는 제가 정치자금을 모은다는 소문도 났더군요. 또 언젠가 술자리에서 황석영 선생이 취중에 저보고 ‘홍길동이 간 율도국의 대통령’이란 말씀도 하시더군요. 저는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구름잡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가이고 활동가입니다. 사람은 모두 현재 가치와 보람과 효율성 면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게 가장 도움이 되고 행복한가를 따져야 하는데 저는 현재 실무자로 신나게 일하는 것이 제 자리라고 생각해요.”
박 변호사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할 뜻도 없지만 만약 나중에 하겠다고 하면 (자신을) 말려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희망제작소‘에서 그는 지역담당가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찾아 각 지역의 문제를 조사연구하고 있고 민선 4기 시장·군수 당선자들을 모아 ‘시장학교’도 열고 대학, 단체 등을 다니며 강의도 한다. ‘대권’에 대한 욕심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정치활동이 아닌가. 어떤 이는 그가 ‘모두 잘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임기도 없고 월급도 없는 풀뿌리 대통령’이란 찬사도 보냈다. 물론 정치권의 열렬한 구애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수혈이란 이름으로 신선도 높은 인사를 영입하고 여전히 전문성이 아니라 신선도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쌩쑈’를 하는 건 아닐까”라고 신랄한 평을 하기도 했다.
“정치를 하면 잘할 자신이 있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들도 정치죠. 국민의 지지와 신뢰 속에서 세상을 더 좋게 바꿔 가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정치는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너무 많으니 그들 세상이 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천사 같은 미소를 짓지만 박원순 변호사의 이력서를 살펴보면 그는 청개구리거나 아주 엉뚱한 사람이다. 남들이 다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남들이 극구 말리는 일은 희망에 들떠 열심히 한다.
가난한 집안에 자라 남들이 데모할 때도 영어공부나 하겠다고 ‘타임’지를 읽다가 데모 학생들이 잡혀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가 졸지에 ‘운동권 학생’이 되어 감옥살이를 했다. 제적 후 학력제한이 없어 고시에 응시했고 검사로 임명받았으나 ‘남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변호사로 변신했다. 이권변호사로 수익을 올리면 편히 살 것을 인권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건만 맡다가 참여연대의 발족에 참여했고, 사회운동가로 유명해졌을 때 홀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는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어 돈 내놓으라며 전국을 다니더니 재활용품이나 기부물품만 모은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50이 되자 ‘희망제작소‘란 싱크탱크를 만들어 자신을 스스로 ‘소셜디자이너‘라고 명명했다.
평범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다
이름부터 순하기 그지없고, 누구나 마음을 열 수밖에 없이 선하게 생긴 그가 언제, 어떤 번개와 벼락을 맞았기에 남들이 말리는 일, 힘든 일만 하게 되었을까.
“아마 대학 때 감옥에 갔던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서운 공안검사나 부티나는 변호사가 되었을 겁니다. 수감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사람은 누구나 착하다는 믿음을 얻었고 사회의 부조리와 억울함을 덜게 하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했죠. 남들이 안 될 거라고 하는 일을 시작해서 성공시킬 때 너무 즐거워요. 그리고 저는 무슨 일이건 끈질기게 열심히 하는 것은 자신있거든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무슨 일이건 참고 견디며 완벽하게 해내는 박원순 변호사가 꼭 하고 싶은 일이 부정축재나 출세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한층 바르게 만들어 희망을 주는 ‘착한’ 일이라는 것이…. 최고권력이란 대통령 자리도 싫다며 그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일은 ‘사소한 일을 바꿔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고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혼란을 거듭하는 것은 준비된 구체적 콘텐츠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굉장한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도 철저한 준비가 없어 정책에 일관성도 없고 구체적인 콘텐츠들이 없기 때문이죠. 한나라당은 여의도연구소, 열린우리당은 열린사회정책연구원이 있지만 대부분 이름만 위원인 당료들 월급으로 국고보조금이 쓰이고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한쪽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그때부터 두세 달 정도 정권인수위원회를 꾸려 정책을 가다듬어서 시행을 하니 누가 해도 정치는 엉망이 됩니다.”
그는 1998년 미국 아이젠하워재단 초청으로 두 달간 미국을 방문, ‘Institute for The future’라는 연구소를 방문한 이후 각국의 연구소들을 찾았다. 얼마 전엔 일본의 주요한 싱크탱크들을 돌아봤다. 일본의 재계가 미래의 일본과 일본인들을 최고의 나라와 국민들로 만들자고 해서 만든, 일본종합연구소 ‘미이라’ 등을 보면서 “과연 이처럼 우리나라의 미래를 고민하고 디자인하는 곳이 있는가”란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희망제작소. 석·박사급 연구원 20여 명과 함께 그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농업은 망했다고 하지만 지난 몇 달간 지방을 돌면서, 농업이야말로 21세기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농촌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거든요. 참다래를 팔아 연매출 500억 원을 올린 벤처농업인, 황토유치원을 만든 목사님 등을 만났어요. 문화건 교육이건 이런 식으로 뭔가 새로운 희망의 지역을 만들어낸다면, 앞으로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희망제작소의 업무들은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아주 소홀히했던, 혹은 우습게 봤던 사소한 일들이다. 희망제작소의 홈페이지를 보면 실시간 아이디어가 입력되도록 되어 있어 조금만 고치면 괜찮을 것 같은 아이디어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좌석버스에 빈 좌석이 없음을 알리는 표시등, 친환경 쌀 학교급식 실시를 위한 사회협약 등 시민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 주부의 경험에서 나온 임산부 프로젝트는 이미 시행 중이다. 임신 2개월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이지만 남들이 알기 힘드므로 임산부임을 표시하는 배지를 만들어 달아주고, 배려를 해주자는 것. 현재 희망제작소에서 하는 일과 아이디어들을 들려주는 그의 표정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마냥 환상적이었다.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진리는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기업정책은 현장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면 되고, 교육정책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됩니다. 직접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현장을 확인해보니 이제 돈이 보입니다. 앞으론 생태환경이 중요하니까 다양한 기능의 자전거를 만들면 잘 팔릴 것 같고, 조선산업도 커다란 배만 아니라 요트를 만들어 수출하면 될 것 같고 ….”
돈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의 재산과 월급을 물어봤다. 현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받는 월급은 매달 200만 원. 물론 포스코 사외이사 등을 맡아 생계걱정은 하지 않는단다. “지금 사는 집의 전세값을 올려달라는데 집사람이 저보고는 걱정하지 말라더라”며 웃었다. 올해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5000만 원도 기부했고, 너무 일이 많아 사무실 책상 밑에 이불을 깔고 잠자는 그가 간 큰 남편이 아니라, 그를 완벽하게 믿고 이해하는 아내가 정말 간 큰 아내인 것 같다.
하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항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을 만들어내기에 이 다음엔 어떤 일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특유의 꿈꾸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제가 변호사 시절엔 ‘참여연대’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고, 참여연대 시절엔 ‘아름다운 재단’은 계획도 없었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계획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 또 희망은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는 겁니다.”
<글/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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