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에너지에 대한 오해들
[편집자주] 차세대 에너지로서 세계 각국이 수소(H2)에 대해 쏟고 있는 관심은 이미 대단한 수준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화석에너지의 고갈을 맞아 수소에너지를 정점으로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력이 곧 국가 경쟁력의 척도이자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로서 수소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 만큼 불확실성 또한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며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높아질수록 이같은 불확실성들을 근거로한 수소경제(hydrogen economy) 무용론자들의 반론들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선 수소경제가 구현될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기도 하며 혹은 전체적인 흐름은 인정하더라도 방법론적으로 상이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수소에너지의 개념적.기술적 비(非) 완벽성에 따른 정보의 부족이 원인이 되어 종종 사실과는 동떨어진 다소 모순되고 왜곡된 정보들까지 양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미국 록키마운틴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이자 물리학자인 Amory Lovins 박사가 수소에너지와 관련한 일부 왜곡된 논평과 그로인한 그릇된 시각들을 바로잡기 위해 작성한 '수소에 대한 20가지 오해(Twenty Hydrogen Myths)'라는 글의 일부를 현상황에 맞게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이 글은 일부 에너지 전문가들의 견해와 다를 수 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原文)에 편집자의 부가설명과 첨삭, 각색이 더해졌음을 미리 밝혀둔다.
[1] 수소를 에너지로 사용한 전례가 없다.
“지금까지 인류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본 전례가 없으므로 수소경제의 구현을 위해선 모든 관련기술들을 백지상태에서 개발해내야 한다”
일반인들이 수소에 관해 언급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년전까지 일반인들이 수소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비롯된 것으로 사실과는 다르다.
실제로 인류는 아주 제한적이기는 해도 오래전부터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우주항공 산업이 그것으로 우주왕복선, 로켓 등의 추진체 연료로 액체산소(LO2)와 함께 액체수소(LH2)가 사용된다.
또한 수소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연간 5,000만톤 이상이 생산되어 정유, 광섬유, 전자․반도체, 제약, 금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초소재로 활용 중에 있기 때문에 제조, 저장, 배송, 활용 등 많은 기술들이 상용화된 상태이다.
일례로 SK, GS칼텍스 등 국내 5대 정유사에서만 정유에서 황(S) 성분을 제거하는 탈황공정(desulfurization) 등에 연간 50만톤의 수소를 사용하고 있다.
제조분야에서도 수소경제 초기에 수소생산을 주도적으로 담당할 ‘천연가스 증기개질공정’은 이미 전세계 수소생산의 48%를 책임지고 있을 만큼 기술적으로 완성된 공정이며 태양력, 풍력 등 자연에너지와 연계해 집중적 연구가 진행중인 ‘물전기분해법’ 또한 경제성 확보가 관건일뿐 기술적 걸림돌은 많지 않다.
[2] 화석연료로 수소를 만드는 것은 바보짓이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수소경제 초기에는 적어도 10여년 이상 천연가스증기개질 공정, 즉 천연가스를 원료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수소제조법 중 가장 저렴하게 수소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일부 국내전문가들은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를 화석연료로 만드는 것은 결국 화석연료시대의 연장이며 화석연료의 고갈 속도를 앞당기는 바보스러운 행태라고 지적한다.
지난해에는 시민단체인 에너지대안센터 회원들과 수소에너지 전문가들이 신문 지상에서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논리공방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수십년 이내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체할 차세대에너지를 상용화시켜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와 대체에너지 중 수소가 가장 현실적(기술적․경제적) 대안이라는 점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2010년경 개시될 수소경제 초기부터 태양열, 풍력 등 자연에너지를 원천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수소경제, 무한에너지로서의 수소경제를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전세계가 추구하고 있는 수소경제 로드맵은 과도기적으로 화석연료를 활용한 다소 기형적인 모습을 띄더라도 수소에너지의 기술발전과 상용화를 가속화시켜 진정한 의미의 수소경제를 좀더 빨리 실현시키기 위한 차선책인 셈이다.
[3] 수소가 에너지 낭비를 부추긴다.
에너지 전문가들조차 자주 빠지는 딜레마의 하나로 ‘수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 보다 수소제조시 투입되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에너지 낭비가 심하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A라는 에너지를 B라는 에너지로 변환하려면 항상 B로부터 얻게될 에너지보다 많은 량의 에너지 투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수소 또한 천연가스증기개질 공정에 의해 수소를 생산할 경우 천연가스를 직접 사용하는 것에 비해 약 15~28%, 물전기분해로 수소를 생산하면 전기를 직접 사용하는 것에 비해 약 15~30%의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와같은 에너지전환 효율손실은 수소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에너지에서 동일하게 보여지는 일종의 불변의 법칙이다.
문제의 핵심은 수소제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 손실이 나타나는가가 아니라 수소가 이러한 손실을 감내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녔는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이미 인류는 막대한 효용성과 경제적 가치를 감안, 상당한 에너지 손실을 감수하며 원유(原油)로 휘발유를 만들고 화석연료를 태워 전력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원유의 휘발유 전환에 비해 천연가스의 수소 전환으로 손실되는 에너지 량이 더 크지만 수소연료전지차의 연료효율이 내연기관자동차 보다 2배이상 높으므로 극복 가능하다.
우리가 수소를 에너지화 하려는 이유가 휘발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고갈 때문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4] 수소가격이 휘발유 보다 비싸다
고효율수소에너지사업단이 에기연 내에 설치한 천연가스증기개질 방식의 실험용 수소충전소에서 생산된 수소의 공급가격은 원료비, 건설비, 운영비 등을 감안할 때 1kg당 약 22,900원(2005년 기준)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시범운행중인 수소자동차에 장착되어 있는 350bar 고압수소용기(내용적 70리터)에 약 1.7~2kg의 수소를 주입할 수 있으므로 약 3만9천원~4만5천원이면 완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1회 완충시 주행거리를 기존 휘발유 자동차 수준인 600km 정도로 높이기 위해 향후 상용화될 수소자동차에는 700bar 용기가 장착될 예정이기 때문에 용기의 내용적이 동일하다면 최대 수소연료 충전량은 3.5~4kg이며 가격은 9만원 정도가 된다.
현재 휘발유자동차가 완충시 약 7만원~8만원(소형차 기준)의 비용이 필요함을 감안하면 분명 수소의 가격이 더 비싸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은 앞으로도 고공행진을 계속하겠지만 수소는 설비 상용화를 통해 단가하락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 수소충전소가 외부의 대형 수소플랜트에서 제조한 수소를 기존 천연가스 배관망을 통해 제공받아 소비자에게 공급할 경우 단가하락폭은 더욱 높아질수 있으며 BP, 포드 등의 기업들도 이같은 방식으로 수소가 휘발유와 유사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확인했다.
기술발전에 따라 수소자동차에 사용하는 수소연료의 순도가 당초 99.999%에서 99.99%, 99.9% 등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수소의 가격하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로인해 미국 DOE(에너지국)는 2010년까지 수소가격을 2001년(㎏당 15~22달러)의 절반수준으로 낮출 계획이었지만 지난 2003년 이를 ㎏당 1.5달러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만일 미국의 이같은 계획이 현실화되면 6천원으로 수소자동차 1대를 완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수소에도 휘발유의 유류세와 같은 정부세금이 부과돼 소비자 가격은 이보다 훨씬 높아지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휘발유 보다 비싸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5] 여타 신재생에너지와의 경쟁이 수소경제를 지연시킨다.
현시대를 화석연료시대라 칭하지만 석유, 석탄, 천연가스 이외에도 원자력, 수력, 풍력 등 비(非)화석연료 분야에도 다각적인 연구와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소경제시대 또한 수소가 가장 비중 높은 핵심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한 시대라는 의미일뿐 모든 에너지를 완전히 대체한다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수소와 바이오디젤, 메탄올, 메탄하이드레이트, 바이오매스 등 여타 신재생에너지들이 한정된 정부의 예산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해도 이로인해 수소에 지원될 예산이 깎여 수소경제가 지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가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하나의 에너지에 연구개발 여력을 집중하는 것 보다 가능한 많은 종류의 신재생에너지를 함께 연구해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수소와 여타 신재생에너지는 ‘원자력-수소’ ‘태양열-수소’ ‘풍력-수소’ 등의 연구에서처럼 상호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로 각각의 연구에 시너지효과를 창출해내고 있다.
다시말해 수소와 재생가능에너지와의 예산경쟁은 예산의 한정성에 따른 현실적 문제일 뿐 수소가 재생가능에너지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진다거나 그 반대의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2006.07]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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