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ave a feeling

미아리 달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미아리 달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유태웅 기자]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미아리일대가 뉴타운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던 가옥과 골목길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특히, 달동네의 전형을 이루고 있던 미아 6,7동과 길음 2,3동일대는 요즘, 이미 새로 들어선 아파트단지들과 미처 개발되지 않은 '마을'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미아6동은 예전같으면 한참 월동준비에 분주할 때이지만, 최근에는 대규모 철거공사를 앞두고 이사를 떠난 빈 집들이 많아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미처 이사를 떠나지 못한 집들은 얼마되지 않는 듯 했다. 이사를 가면서 남기고 떠난 쓰레기가 가득찬 빈 집과 조금씩 부서져 내린 '폐가'사이로 일부 가옥들만이 사람사는 흔적을 보였을 뿐이다.

▲ 미아리 달동네 건너로 길음뉴타운 아파트단지가 엿보인다.
ⓒ2006 유태웅
▲ 대부분 가옥이 이사를 떠나고 철거만을 앞둔 미아리 달동네 일부
ⓒ2006 유태웅
미아리 달동네는 지난 57년 무렵부터 6.25동란 이후 주로 판자집에서 연명하던 서민들이 수재나 화재로 인해 집터를 잃고 서울 변두리 국공유지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정착촌이다. 70년대 이후엔 서울도심이 개발되면서 변두리로 쫓겨난 서민들까지 한데모여 달동네의 '원조'로 손꼽혔다.

일제시대 때 미아리는 공동묘지 터였다.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정책의 하나로 생긴 미아리 공동묘지터는 1930년대 더욱 확장되었다. 이후 1933년 망우리에 새로운 공동묘지가 만들어지고, 해방이 된 후 50년대 후반부터 미아리 공동묘지는 경기도 광주로 옮겨졌다.

미아리 달동네는 인근 성북구 하월곡동과 길음동의 달동네와 함께 서민들의 애환이 깊이 스며있는 곳이다. 서울 동북부 대표적인 서민, 혹은 빈민주택단지였던 이곳이 뉴타운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달동네만의 정겹고 애틋한 흔적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전형적인 달동네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제2의 고향, 미아리 달동네에 대한 기억들

▲ 미아리 달동네에서 바라본 전경. 곳곳에 재개발 아파트들이 들어서 예전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않다.
ⓒ2006 유태웅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오면서 미아리에서만 20여년을 살았었다. 당시 미아리와 인근 하월곡동, 길음동의 달동네들은 하나의 생활문화권이었다. 그 생활문화권이라는 것은 사실, 빈민이나 다를 것 없는 서민들의 삶의 행태, 다닥다닥 붙어있던 가옥과 그 사이 골목길들이 만들어낸 풋풋한 민초들의 정서가 바탕이였다.

비좁고 구불거리는 오르막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가다보면 문득 중학교 동창녀석의 집이 나오고, 그 골목길 사이에 마련된 조그만한 빈터는 자연스러운 놀이터가 되었다. 또한, 몇 평 되지 않는 마당터이지만 모퉁이에 가꿔놓은 텃밭은 어느 별장에 그림처럼 꾸며놓은 정원 못지않은 운치가 있었다.

여름저녁이면 누가 뭐라 주동하지 않아도 서울 어느지역보다 가깝게 보이는 밤하늘을 지붕삼아 마당앞 평상에서 술잔과 대화를 나누던 동네친구들이 그곳엔 있었다. 제아무리 한밤중이라도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이른아침 출근길엔 어김없이 눈들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던 '삶의 성실함'이 그곳엔 있었다.

그곳엔 겨울을 대비해 서로 김장을 함께 담아주었던 품앗이가 있었고, 비탈진 오르막길에 연탄을 실어날으는 리어카에 너나할 것없이 팔소매를 걷어 부쳤던 잔정이 있었다. 또한,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떼지어 놀며 터트렸던 그 소박한 웃음소리가 있었다.

6년 여만에 가 본 미아리 달동네, 사라져 가는 옛 기억들

▲ 철거를 앞두고 이사를 떠난 텅 빈 집사이로 보이는 새 아파트단지
ⓒ2006 유태웅
마지막으로 미아리 달동네를 가보았던 것은 지난 2000년도. 이후 6년여 만에 가 본 미아리 달동네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몇군데 달동네는 아예 그 흔적조차 살필 수가 없었다. 이미 20층에 가까운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었다. 몇 번이나 기억을 더듬어야 예전의 흔적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예전에 돌산이라고 부르던 미아6동 달동네 맨 꼭대기에도 이미 새로운 아파트단지가 들어차 있었다. 그곳에서 누구나 쉽게 내려다 보던 당시 여름철 야경을 이제는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아쉬움도 컸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아랫동네에 마치 시위라도 하듯 높게 뻗어 올라간 건축물이 영 탐탁치 않았다.

불과 5,6년전 까지만 해도 북한산에서 이어져 내려온 능선줄기가 이곳에 아담한 야산을 형성한 덕분에 한때는 아이들의 놀이터나 마을 주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었다. 이곳에서는 서울시내의 야경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파트단지가 차지하고 있어 그 기회마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스카이 라인'(sky line)이라고 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 달동네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골목길에 붙혀진 공고문들
ⓒ2006 유태웅
▲ 세입자들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세입자 대책위윈회 공고문들
ⓒ2006 유태웅
오래된 주택단지가 새롭게 재개발, 재건축되고 뉴타운이 형성되면, 인근의 땅값이나 아파트 값이 올라간다는 것은 이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자산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생활의 편리와 삶의 질적향상을 위해 재개발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재개발을 위해 옛 것을 뜯어내고 철거하면서 소리없이 사라져 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달동네의 기억들은 웬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달동네는 전형적인 수평적인 커뮤니티(community, 공동사회·공동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옥과 가옥사이를 이어주는 비좁은 골목길은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젖줄과도 같다. 엉키고 설킨 달동네 안에서는 이웃의 경조사가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그만큼 이웃과의 관계형성이 쉽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

ⓒ2006 유태웅
ⓒ2006 유태웅
이에 반해 아파트는 수직적인 커뮤니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은 철제박스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루어지는 잠깐의 의사소통과 만남은 자칫 형식적인 절차가 될 수도 있다. 구조상 꾸준히 다른 이웃과 얼굴을 대면하기도 쉽지가 않다. 물론, 같은 동이나 단지단위로 이루어지는 반상회나 입주자모임, 취미동호회를 통해 이러한 폐해는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대표적인 서민주택단지였던 달동네에서 체험할 수 있었던 살가운 삶의 내음과 인간적인 정감들은 맛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생활의 불편함이나 낙후된 주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며 달동네의 주거양식을 선호할 수 만은 없다. 재개발을 하되, 달동네에서 체감할 수 있었던 그 고유의 커뮤니티 정서를 활용한 재개발 해법은 과연 없는 걸까?

소리없이 사라져만 가는 달동네들. 그 위로 비가 내린 뒤 솟아나는 죽순처럼 하늘로 치솟기만 하는 아파트단지들을 둘러 보면서 생각해 본 아쉬움이다.

/유태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