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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 뿌리내린 선진국의 기부문화

우리나라는 아직 참여자나 기부액수가 국가 전체 경제력에 비해 적은 편이다.
선진국일수록 다양한 기부조직들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투명한 예산집행과 생활 밀착형 운영으로 오랜 세월 신뢰를 받아온 탓에 선진국의 기부문화는 생활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절대적 빈곤층이나 소외계층의 고통은 연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나기식 기부가 아닌 상시 기부체제로 바뀌기 위해서는 기부절차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전문적 기부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선진 국민의식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기부문화는 그 나라의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된다. 한국도 근래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민 의 1인당 기부액수는 1,000원도 안된다. 미국 1만 3,000원, 캐나다 1만원, 싱가포르 7,000 원 등에 비하면 매우 낮은 실정이다. 기업의 기부활동이 사회공헌의 명목으로 활발해지는 추세에 비해개인기부문화는 아직뿌리를 못내린상황이다.
선진국의 기부문화는 어떠할까. 고유한 역사적 전통에서 성장한 서구의 기부문화는 무엇보다‘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유럽 귀족사회에서 유래한 삶의 태도로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환경을 개선할 의무가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부는 신에 의해 잠시 위탁된 것이라는 기독교적 사고가 기부문화의 발전을 촉진했다. 선진국일수록 국가권력과는 독립된 상태에서 다양한 기부조직들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기부문화의 왕국,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가 2백 8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모습은 미국부자의 기부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부자들의 기부문화는 앤드류 카네기와 존 록펠러가 기초를 닦았다. 19세기 말 철강산업과 석유산업을 통해 각각 부를 거머쥔 두 사람은 부의 사회환원에 대한 철학과 전통을 닦았고 오늘날까지 미국이 일류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철강왕 카네기는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이란 잡지 기고문을 통해“재산을 안고 지구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주장했다. 사회환원이 부자들의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했던 그는 기부가 단순히 동정에서 비롯된 물질의 제공이 아니라 즐거운 나눔이며 빈부간의 화해수단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미국의 카네기홀, 피츠버그의 카네기도서관, 카네기박물관, 카네기 멜론 대학, 워싱턴 카네기인스티튜트, 덤퍼린 카네기장학금, 뉴욕의 카네기코퍼레이션까지 등이 모두그가 기부해만든단체들이다.
석유왕 록펠러도 카네기 못지 않다. 그는‘세계인류의 복지증진을 위해’란 거창한 목표를 갖고 록펠러 재단을 출범시키는 한편 록펠러의학연구소, 교육사업, 시카고대학 지원 등 수많은 기부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들에 의해 확립된 미국 부자들의 기부전통은 포드 등 거쳐오늘날 빌게이츠나 이베이 그룹등새로운 부자들에 의해찬연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기부문화의 진정한 힘은 개인에서 나온다. 미국 가구의 기부현황을 조사하는 ‘인디펜던트 섹터’에 따르면 현재 전체 미국가구 중 기부에 참여하는 가구의 비율은 무려 90%에 달한다.
미국의 연간 총 기부액에서 개인의 기부액이 약 75%를 점하는 것으로 추 산된다. 가구당 연평균 기부액은 매년 늘고 있고 저소득층의 기부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기부금 모집형태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부터 스스로의 기부단체를 조직하며 자선단체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독자적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한다. 최근에는 기업과 자선단체가 결합, 기업은 기부를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자선단체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는 매칭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미국의 이런 기부 전통은 카네기와 같은 부유층에서 서민층에 이르는 미국사회 저변에 뿌리깊이 배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극심 한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를 흔들림없이 지탱해 주는저력이라고 할수있다.
도덕적 원칙으로 계승되는 영국과 프랑스
영국에서는 기부문화가 하나의 도덕적 원칙으로 계승되고 있다. 최근의 영국 자선단체 연 구기록을 보면, 13만 6000여 개의 일반 자선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300만 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들이 있다. 개인기부는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이는 잘 갖춰진 사회보장제도로 인해 정부차원의 기부가 30%나 되기 때문이다. 영국 전체인구의 약 65%가 매월 평균 10파운드 내외를 기부하며 여성이 남성보다 기부하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의 기부패턴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거리모금과 호별방문 모금 등을 기반으로 한박애주의적 모금, 자선단체 물품 구입을 통한 구매기부, 기부서약과 급여공제 등을 이용한 계획기부가 바로그것이다.
프랑스도 기부문화가 활발한 나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프랑스어임에서 알 수 있 듯 이 나라 역시 기부와 자선행위가 금과옥조처럼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수많은 기부를 하면서도 그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전체 액수를 집계하는 것이 어렵다. 성경의‘한 손이 하는 것을 한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자녀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의무와 책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엄격하게 가 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풍토때문에 프랑스 상류층은 대중들의 비난 대신 존경을 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기부문화가 생활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투명한 예산 집행과 생활 밀착형 운영으로 오랜 세월 개인의 신뢰를 받아온 기부 단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BBB(Better Business Bureau)나 영국의 CAF(Charities Aid Foundation)등 비영리기구(NPO)를 비롯해 개인, 기업이 설립한 유명 재단들이 그것이다. 또 지역 사회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세운 재활용품점으로 출발해 제6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영국의 옥스팜(Oxfam)이나 기부받은 물건 판매를 통한 기부금으로 직업훈련 프로와 기타 자선 프로를운영하고 있는미국의 굿윌(Goodwill) 스토어 등도기부문화의 생활화에 큰기여를 했다.

기부절차의 투명성 확보가 선결과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부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기부절차의 투명성 확보가 선결과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은‘내가 기부하는 돈이 과연 제대로 쓰일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기부를 꺼리는 경 우가 많다고 한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단순히 돈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속 과정을 감시하는 것까지가 기부의 개념에 포함돼 있다. 비영리단체가 기부자와 기부대상 단체를 연결시켜 주고 기금 집행 과정을 공개, 평가하는 관행이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부 단체들은‘운영의 투명성’과‘일반인들의 접근 용이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방송사, 신문사 등의 이벤트성 성금 모금이 많은 한국과 달리 발전된 형태의 기부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CAF는 5개 대륙 20여 개국의 자선단체에 재정확보 역할을 맡는 한편 기부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돕고 있다.
특히 혼자 해결하기에 까다로운 세금 문제나 법률 문제를 대신 담당함으로써 개인 기부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18년 설립된 미국자선정보국(NCIB)이 주요 자선 단체의 사업 운영을 감시하고 기부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듯 선진국에선 구체적인 기준에 미달 하는 자선단체는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미리 걸러내기 때문에 성금모금 사기가 발붙일 곳이 없다. 또 기부하고 싶은 단체를 손쉽게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부한 돈의 사용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기부 의욕을 지속 증진시켜준다. 때문에 한번 기부한 사람은 손쉽게 기부를 생활화할 수있게된다.
한국은 기부문화의 후진국이다. 기부문화의 성숙을 위해선 개인기부자가 많이 늘어나야 한 다. 동정심에서 비롯된 불우이웃돕기 차원을 넘어선 지속적 전문적 기부시스템이 필요하다. 기부는 단순한 적선행위가 아니라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적 투자라는 인식전환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사회지도층과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가들의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발휘가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