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세계 최고 부자다. 그런 그가 2년 뒤 은퇴해 자선사업에 전념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세계 2위 부자인 워런 버핏 회장도 뒤를 이어 사상 최대 금액인 370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내가 세계에서 최고 부자라면 재산을 어떻게 쓸까. 기부의 가치를 공부한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효과=서구의 자선 활동은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가리키는'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빌 게이츠도 기부하는 이유를 "가진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워런 버핏도 자신에게 온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부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기부 활동은 보통 사람들보다 파급 효과가 더 크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자선 활동도 따지고 보면 강철왕 카네기(1835~1919)나 실업가 록펠러(1839~1937)와 맞닿아 있으며, 워런 버핏의 기부 소식 이후 해외 명사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의 영화배우 청룽(재키 챈)은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노력에 감동했다"며, 재산의 절반을 재키 챈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도 기부 릴레이에 동참했다. 최대 3300만 파운드(약 574억 원)에 이르는 피카소의 걸작을 팔아 연극과 예술을 포함한 자선 목적의 기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 기부의 필요성과 가치=기부는 자신의 가치 기준이나 신념에 따라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베푸는 자선 행위다. 과거 개인의 자선 행위로 풀던 사회 문제는 이제는 국가에서 복지제도를 통해 해결한다.
그럼에도 자선적 기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잡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라에만 의존해선 그늘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 현상이 깊어지면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 공동체 생활이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는데 드는 비용이 이윤 창출에 드는 비용보다 많아져 사회가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 우리나라의 기부 현실=미국은 기부 문화가 생활로 자리 잡았다. 크고 작은 자선단체 수만 6만 개를 넘는다. 기독교적 전통도 있지만, 자선에 인색한 부자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부자뿐 아니라 시민의 기부 활동도 적극적이다. 개인 기부금이 전체의 95%를 차지할 정도다. 여기에 부자들이 가세하며 자선 모금액만 지난해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해 부의 세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기업의 기부 문화도 자연스럽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미국처럼 기부 문화가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내 최대 민간 기부 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www.chest.or.kr)에서 지난해 모은 돈은 2147억여원에 이르렀다. 2000년(510억원)에 비해 네 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기업 기부는 1453억원으로 다섯 배, 개인 기부는 354억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기부 건수도 2000년 800여 건에서 18만6000여 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전체 모금액 가운데 개인 기부금 비중은 세계 평균 69.5%보다 훨씬 떨어지는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 기부가 활성화되려면=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부 행위는 학습에 의해 형성되고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가정에서 부모의 기부 활동을 자녀가 본받으며, 기부를 자주 실천하면 생활화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나눔의 습관을 익히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민간 기부 단체들의 투명성과 책임감 강화도 필요하다. 지난 4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우리나라 부유층 162명을 대상으로 기부 현황을 조사한 결과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 때문에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답이 많았다.
기부를 한 사람에 대한 세제 혜택도 선진국보다 모자란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낸 법정 기부금은 모두 소득 공제 혜택을 받지만, 사회복지단체(또는 종교단체)에 낸 지정 기부금은 소득금액의 10%(법인은 5%) 안에서만 공제받는다. 이에 비해 미국은 50%며 일본은 25%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조종도 기자 / 중앙일보 2006-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