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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태는 추위와 바람이 만들었을까?

 

 맛객(맛 전문 블로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에 있는 황태덕장에서는 한창 명태를 널고 있다)   ⓒ 맛객

 

추위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황태덕장 사람들이다. 덕장에 명태를 걸기 위해서는 영하권의 날씨가 10여일 이상 계속되어야 한다. 요즘이 적기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는 덕장에 명태를 거느라 농한기도 잊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제일덕장(462-5916)을 가지고 있는 최용식(67) 선생을 만나 황태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봤다.

 

 

(글쓴이가 제일덕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용식(67) 선생을 인터뷰하고 있다)    ⓒ 맛객

 

최용식 선생은 제일덕장을 관리해오다 83년부터 덕장을 인수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업에서 일을 시작한 게 24살 때부터라고 하니 43년여 세월동안 황태와 함께 해 온 셈이다. 이곳에 덕장이 처음 생긴 게 43년경이라고 하니, 용대리 황태와 함께 한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황태 원조가 어디냐 부터 물었다. 대관령이냐 진부령이냐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명태는 고성과 주문진 사이에서 많이 잡혔다. 주문진 정용민 선생은 대관령이 먼저라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진부령(덕장) 설립자 김상용 선생은 속초에 살면서 진부령에서 내려오는 길에 설립했던 부흥덕장이 먼저라고 한다. 서로 원조를 주장하긴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인제 고성 경계에 다리가 있고, 도로 옆 다리 건너편에 폐가가 하나 있는데 진부령 황태덕장을 처음 했던 곳이다. 그러다가 용대리까지 내려왔는데 내려온 이유는 물이 많은 곳을 찾아서다. 처음 시작했던 곳은 냇물이 부족해 얼음이 얼면 명태가 망가져 버린다“

 

어쩌면 원조를 내 세운다는 게 부질없는 일이기도 하다. 대관령이든 진부령이든 러시아에서 잡은 같은 명태가 아닌가. 다만 건조지만 달라질 뿐이다. 진부령 황태는 부흥덕장이 첫 번째, 제일덕장이 두 번째, 최영환(78) 선생의 영신덕장이 세 번째 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다가 77년도에 5군데로 늘고 78~9년에는 덕장 하나가 더 늘었다고 한다.

 

황태 원조는 어디? 확실한 근거 못대

 

 

(용대리에서 두 번째로 오래 된 덕장 표지판,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 맛객

 

최용식 선생은 요즘 방송에 나와 황태 원조라고 떠드는 사람들은 다 가짜라고 잘라 말한다. 덕장 1세대에서는 한 분정도 살아계시는 데 서울에서 사신다고 한다. 연세가 대략 90은 넘었을 거라 하니, 어쩌면 덕장 1세대를 만난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용대리는 백담사 입구에 있는 1리와 2리 그리고 좀 더 위로 올라가서 3리가 있는데 황태는 3리에서만 된다. 그 이유는 고도차이인데 용대3리는 해발 389미터 이상이다. 명태의 고장 고성에 황태덕장이 없는 이유도 지리적 여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날씨가 덜 추워지면서 봄이 되면 안개가 많이 끼니 명태가 망가져서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황태를 만들기 위해 더 춥고 습도가 낮은 지역을 찾아 대관령으로 진부령으로 고갯길을 넘었다.

 

 

(냇가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덕장이 있다, 덕장은 또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추위와 바람을 불러온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용대리, 지금은 황태로 인해 형편도 나아졌고 찾는 이도 많아졌지만 그 전에는 참으로 척박한 땅이었다. 오죽 사람살기 힘든 곳이었으면 가난한 사람이 살 곳 없어 이곳으로 왔을까. 밤이면 북동풍이 고산을 넘고 오면서 찬바람을 몰고 와 원래 본 원주민이 5집뿐일 정도로 사람 살 데가 못되었다.

 

5월 30일에도 서리가 내려 자두꽃이 얼 정도였다니 농사 같은 건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없는 사람들이 더욱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최용식 선생은 오래전 에피소드 한 토막을 꺼낸다.


“76~9년까지 새마을 운동할 때 지도자 했던 사람이 연수교육에 강사로 왔다. 낙후마을을 지목하는데 강원도 인제군을 지목하더라. 거기서도 북면 용대리, 그러면서 용대리에서 온 사람 있느냐? 물었다. 그때가 덕장이 4개밖에 없을 때다. 일어나봐라 하는데 거참 망신스럽더라구. 낙후부락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를 말해봐라 왜 동네가 못사느냐? 하면서 시대변화얘기 하는 거야.

 

박대통령 서거 전에 광주에서 새마을 대회를 가졌는데 거기서 주창한 게 대변화였다. 용대리도 못 산다고 좌절하지 말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인제군에서도 잘 사는 마을이 되고 또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안 되는 농사에 매달리기보다 황태덕장을 열심히 해서 이만큼 잘 살 수 있게 된 거다.”

 

 

 

(3개월 동안 추위와 바람에 의해 말라가는 게 황태다)    ⓒ 맛객

 

용대리 사람들에겐 황태가 보물과도 같은 물건이다. 요즘에야 황태 하지, 당시는 황태란 말 자체가 없었다. 덕장도 명태덕장이라 불렀고, 말린 명태는 노랑태라고 불렀다. 사실, 황태는 방송이 만들어 낸 말이기도 하다.

 

척박한 땅, 용대리를 키운 황태

 

요즘 들어 도시인들은 숙취해소에 좋은 황태해장국을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용대리 원주민은 명태 한 토막 못 사먹었다고 한다. 가난해 돈이 없기도 했지만 덕장에서 가져온 거라는 의심을 살까봐 그랬다고 하니, 삶의 애환이 깃든 황태가 아닐 수 없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이 처져있다. 역으로, 몰래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거다)   ⓒ 맛객

  

맛객이 둘러본 황태덕장은 빙 둘러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80년대, 90년대 중반까지는 도난걱정 없었는데 훔쳐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란다. 황태가 먹을거리로 소문나면서 가치가 오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신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진공건조제품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황태 유통과 소비가 어느 정도인지 통계조차 낼 수 없다하니, 그 양이 상당할거란 짐작이다.

 

3개월여 추위와 바람에 의해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설원의 명작으로 태어나는 황태, 기계를 이용해 급성으로 말리는 중국산 건조제품이 어찌 그 깊은 맛을 따라올 수 있을까? 하지만 식당에서는 원가 절감 차원에서 중국산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

 

황태해장국이라 해서 다 좋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황태맛집이라 하면 양념에 의해 황태 본연의 맛이 가리는 황태구이가 아니라 노란빛 황태가  들어간 해장국이 맛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우리 황태의 맛이다. 이런 이유로 황태 맛을 제대로 보려면 3월 이후가 되어야 한다. 겨울 왔다고 황태요리를 찾는 건 속성으로 건조시킨 중국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용식 선생은 규정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산-건조지 어디(용대리) 이렇게 표기하도록 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한국에서 건조된 건 러시아산이라 한다. 중국 북한도 거기서 중국산 북한산 이라 한다. 우리만 러시아산이라 한다. 그래서 지역 표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진공건조 황태가 문제

 

 

(냇물이 꽁꽁 얼었다. 이곳에 명태를 담갔다가 덕장에 건다)   ⓒ 맛객

 

황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태를 냇물에 담가서 염분을 빼야한다. 그 많은 명태가 냇물에 푹 담길 정도로 물이 있어야 한다. 진부령 황태의 모태가 되었던 인제 고성 경계에 있는 다리부근은 물이 부족해서 용대리까지 내려왔다. 물 말고 지역적 특색으로는 추위와 바람이다. 용대리는 추위와 바람이 드세서 명태 건조지로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처음(초창기)에는 아침기온이 영하 23~4도까지 내려갔다. 낮 기온도 영하 15도였고 일교차가 10도 차이가 났다. 추워서 일을 못했다. 제일 추운 시간이 7시 해뜨기 직전인데 24~5도일 때가 많았다. 그럴 때 걸어놓으면 영하에서 말린다. 냉동 건조커피를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다”

 

하지만 용대리도 예전에 비해 많이 덜 추워졌다. 맛객이 찾아간 그날 기온이 영상 2도를 가리켰다. 아침 기온은 영하 14도였다고 한다. 예전에 비하면 아침 기온은 10도, 낮 기온은 13도 높아진 셈이다.

 

 

(황태는 눈을 맞아야 좋은 게 아니고 바닥에 깔려야 좋다. 냉각현상으로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용대리도 덜 추워졌다는 얘기다)   ⓒ 맛객

 

흔히 황태는 눈이 많이 와야 좋다고 하나 바닥에 눈이 쌓여 있어야 효과가 있다. 바닥에 눈이 30센치만 깔리면 냉각현상에 의해 아침 기온이 영하 16~17도로 낮아진다. 그렇게 되면 예전 기온과는 불과 6도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서해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서해에 눈이 많이 내리면 강원도는 춥기 때문에 황태 품질이 좋아진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남서풍을 싫어한다. 남서풍이 불면 빨리 마르기 때문이다. 빨리 건조되는 게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황태는 장기간(3개월여)에 걸쳐 건조되어야 한다. 북서풍이나 시베리아 바람이 좋다.

 

제수용품 정도로만 인식되던 황태가 어느덧 별미로 도시인들의 속 풀이 해장국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최용식 선생도 황태가 좋은 점은 단연 숙취해소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눈으로 먹었던 황태, 주로 제수용품으로 쓰일 때는 외형이 고아야 상품으로서 가치가 올라갔다.

 

염분을 빼기 위해 물에 이틀도 넣었다. 염분이 남아있으면 모양이 망가진다는 이유에서다. 요즘엔 입으로 먹기 때문에 물에 담가두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간혹, 황태요리 전문점에서 황태를 불린다고 물에 담가두는 것을 보는데 맛이 뭔지도 모르는 행위다. 황태를 맛을 살리려면 물에 적셔 비닐봉지 속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상품화되기 전의 황태, 제대로 된 건 2월 중순 무렵부터 맛 볼 수 있다)   ⓒ 맛객

 

추위와 바람이 만들어 낸 명작 황태. 어쩌면 황태를 만든 건 추위도, 고산을 넘어오는 바람도 아닐 것이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힘껏 일했던 용대리 사람들의 애환이 황태에는 담겨있다. 황태는 그들이 만들었다. 그래서 용대리 사람들은 이름대신 황태를 남겼다.   2007.1.16 맛객(블로그= 맛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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