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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하는 그대, 세상을 다 바꿔라

기획하는 그대, 세상을 다 바꿔라




[한겨레] 빼빼로데이를 포착해 연간 450억원 매출을 일궈낸 건 기획자의 호기심과 관찰력… 신문의 한 줄 헤드라인을 넘어 시대 흐름을 읽는 ‘통찰력’이 기획의 핵심 요소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빼빼로’는 식품업계에서 마케팅 기획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상품이다. 지난 1983년 첫선을 보인 빼빼로가 도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96년이었다. 부산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11월11일을 맞아 친구들끼리 빼빼로를 주고받는 ‘빼빼로데이’ 기념일이 있다는 사실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부터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롯데제과의 마케팅 기획자들은 대대적인 시장조사와 판촉행사를 전국적으로 벌였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지금까지 한 해 평균 매출액은 450억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고, 이 가운데 빼빼로데이 대목 기간(9~11월) 동안의 매출액이 한 해 매출액의 60%를 차지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빼빼로데이를 만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대해 지나친 상업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기획자의 호기심과 관찰력이 일궈낸 극적인 변화였다.

9·11의 원인은 ‘상상력의 빈곤’

바야흐로 기획이 대접받는 시대다. 잘된 기획 하나가 조직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인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기획 능력이 없는 조직은 한 치 앞길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정부조직,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기획 역량은 조직과 개인을 살리는 핵심 능력으로 꼽히고 있다. 기획이 일상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주변이 온통 ‘~기획’ 투성이라는 데서도 쉽게 확인된다. 광고기획, 마케팅기획, 영화기획, 텔레비전 프로그램 기획, 출판기획, 취재기획, 공연기획, 웹기획, 도시기획, 건축기획…. 정부나 국가기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가발전 기획, 신도시건설 기획, 사회간접자본 확충기획, 정보격차 해소기획…. 정당은 선거기획, 종교단체들은 신도확보 기획, 자선단체에서는 성금모집 기획, 사립학교에서는 학생유치 기획을 한다. 기업 내부도 마찬가지다. 영업기획, 생산기획, 구매기획, 자금조달 기획, 신제품 기획, 유통기획, 사업기획, 투자기획, 재무기획….

지구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차원의 기획도 있다. 9·11 테러가 대표적이다. 9·11 테러는 기획이 요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밟은 치밀한 작품이다. 어떤 특정한 과제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세계와 이슬람의 적’인 미국을 치명적인 방법으로 공격해야 한다), 그 과제의 완수 또는 문제 해결을 위해(치명적 테러를 통해 미국을 혼돈에 빠트리기 위해) 일정한 대상물들에 대해(미국의 민간 항공기들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벌어질 수 있는 주요 상황을 파악·예측해(항공기를 동시에 여러 대 납치해도 전투기들이 즉각 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일정 의도에 따라 목표한 결과를 얻도록 하는(납치한 항공기로 미국의 상징적 건물을 향해 자살 테러를 감행함으로써 미국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다) 일련의 사고 과정과 행동 양식(테러 요원을 종교적·사상적으로 무장시켜 훈련한 뒤 테러 행위에 투입해 실행한다)을 기획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오사마 빈 라덴은 ‘세기의 기획자’인 셈이다.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구성한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2004년 8월 해산에 앞서 발표한 최종보고서에서 “9·11 동시 테러를 막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기획의 핵심 구성요소인 통찰력과 상상력에서 미국 당국은 오사마 빈 라덴에 뒤처진 것이다.

한국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업무 능력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보통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이 ‘기획문서 작성’이다. 기획 능력의 핵심을 ‘기획서 작성’으로만 국한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 것이다. 이에 반해 기업 안에서 전문적으로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이와는 다른 답변을 해 눈길을 끈다. 파워포인트를 능숙하게 써서 깔끔한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보다는 기획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해 천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찰력에 이르는 7가지 습관

100명의 기업 내 기획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39명)와 설문조사(61명)를 한 결과가 나와 있는 신간 <한국의 기획자들>(토네이도 펴냄)을 보면 답변자의 70%가 뛰어난 기획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통찰력과 분석력’을 꼽았다. 그 다음은 ‘커뮤니케이션 능력’(26.7%)이었다. 이들은 또 평균 27.4명의 정보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업무 시간은 평균 11.49시간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업무 만족도는 64.9%로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 과정에서 통찰력이 핵심 요소가 되는 이유에 대해 피닉스커뮤니케이션의 서재근 차장(AE)은 “기획 과정에서 쓰이는 여러 시장분석 도구가 있지만 아무리 과학적으로 접근해도 인간의 직관과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특정한 수치나 자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며 그것이 통찰력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통찰이란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인간 고유의 창조적 상상력 또는 그런 상상력을 통해 사물·행동·사건 등의 본질 속에 숨겨진 ‘새로운 의미’를 해석해내는 과정이자 그 해석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획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곧 발행될 책에서 기획 업무에서 통찰력에 이르는 7가지 습관을 △전문가를 믿지 말 것 △고정관념 속에서도 답을 찾으려고 할 것 △성급하게 정의하거나 분류하지 말 것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오히려 귀를 기울일 것 △프로세스(과정)의 노예가 되지 말 것 △원인을 추구할 것 △조사를 믿지 말 것 등으로 정리했다.

이 때문에 통찰력 있는 기획 능력을 지닌 기획자들이 스카우트의 1호 대상이 되는 현상도 점점 늘고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를 전 사회적으로 유통시켰던 광고계 인사가 삼성전자 상무로 스카우트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그를 영입한 것은 무엇보다 그가 지닌 통찰력 있는 기획 능력을 높이 산 것”이라고 말했다. <100억짜리 기획력> <기획 천재가 된 홍대리>의 저자인 하우석 공주영상대 교수는 “기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직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예측 분석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통찰력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기획 능력을 높이 사는 기업에 젊은 인재들이 몰리는 현상도 요즘의 추세다. NHN(네이버) 홍보실의 이경률 대리는 “우리 회사는 직군이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개발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기획자”라며 “‘지식iN’이나 네이버 블로그 등 이곳에서 이뤄지는 업무의 대부분이 통찰력을 갖춘 첨단의 기획 능력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베르베르와 공지영씨의 공통점

통찰력 있는 기획이 시장에서 먹힌다는 점은 다른 분야에서도 도드라지게 입증되고 있다. 출판기획 분야에서 분야별로 인기를 끌었던 책들은 모두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읽는 역사에서 보고 체험하는 역사로 역사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은 사계절출판사의 <생활사박물관> 시리즈나, 사진보다 더 생동감 있는 세밀화로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를 충족시켰다는 평을 듣는 보리출판사의 생태 시리즈 기획 등이 그것이다. 번역서이기는 하지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우화나 이야기 형식이 장차 대중적인 소구력을 가질 것이라는, 번뜩이는 통찰력이 효력을 발휘한 사례다.

작가 개인의 통찰력 있는 기획 능력도 비교 우위의 차별성을 가져오는 핵심 요소다.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내는 소설가 공지영씨가 그렇다는 게 출판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공지영씨의 경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보여지듯이 철저한 사전 기획취재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 작가는 기획력이 있는 작가와 기획력이 없는 작가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 분야에서 기획의 중요성은 오히려 구문에 속한다. 대표적인 영화계 기획통인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는 “영화계에서 기획이라는 요소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기획 역량을 강조하면 왠지 어색하다”고 전제한 뒤 “다만 성공한 기획과 그렇지 못한 기획으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시대와 소통하는 통찰력을 갖추지 못한 기획의 경우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반응이 온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에 저런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말이 되냐’ ‘시나리오를 꼭 저렇게 써야 했나’ 하는, 관객의 반응이 그런 것들이라고 한다. 개봉된 영화 가운데 통찰력 있는 기획이 담긴 영화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심 대표는 영화 <장화, 홍련>을 떠올렸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한국 고전이었지만, 엄마와 가족에 대한 소녀들의 심리적 공포나 억압기제를 적절히 간파한 결과 가장 젊은 관객인 10대들에게 어필한 점은 높이 사야 한다. 신문에 나온 한 줄의 헤드라인이나 문학·음악·미술 등 다른 장르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이 기획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영역 간 경계를 넘어서

통찰력 있는 기획을 위해 최근 강조되는 점은 ‘영역 간 경계를 넘는 상상력 있는 기획’과 ‘일상에서 돋보이는 기획’ 능력이다.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해 주목을 받은 구본형씨나 진화생물학과 인문학을 접목한 최재천 교수의 통찰력에서 새로운 기획의 패러다임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틀에 박힌 마케팅 툴로 박제화한 기획은 잘하지만, 요즘은 일상의 삶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통찰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기획이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먹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엔 아마추어이지만 전문가보다 더 전문적인 통찰력을 지닌 이들을 주목하게 된다.” 기획 업무를 10년 이상 해온 한 대기업 ‘기획전문가’의 넋두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획은 준비, 기초 가운데 기초”

기획 이론 강사 김영민 인하대 겸임교수

김영민 인하대 겸임교수는 기획 이론 강사로 기업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기업과 공무원 조직 등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한 지 8년째다. 한 대기업의 인사팀장을 지내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연구를 통해 기획에 매달린 그는 “처음에 기획에 관한 제대로 된 강의 교재가 없어서 한자사전과 영어사전을 뒤져가면서 교재를 스스로 만들었다”며 “우리 사회가 기획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기획의 개념이 뿌리내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그동안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기획특강>(새로운 제안 펴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기획력이 다른 능력과 비교해 핵심적인 능력인 이유는 무엇인가.

= 기획은 한마디로 준비다. 준비 잘하는 이가 실패할 확률이 낮은 것은 상식이다. 기초 가운데 기초다. ‘기업이 원하는 능력’에 대한 조사를 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기획력과 문제해결 능력이다. 그런데 기획력 안에는 문제해결 능력이 포함돼 있다. 현황파악 → 원인분석→ 대책개발→ 세부계획 설립이 기획의 과정 아닌가. 아무리 복잡한 것에서도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획력은 또 통찰력을 필수로 한다. 통찰력은 시스템적 사고를 통해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꿰뚫어보는 능력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전체를 보는 데 반해 일 못하는 사람은 부분이 전체인 줄 안다.

기획력에 대한 요구가 이전 시기보다 더 늘어났다고 할 수 있나.

= 서점에 나가보면 10년 전에는 기획 관련 책이 2~3권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15~16권 정도 된다. 관심이 훨씬 늘었다. 요즘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이 기획서를 준비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라는 것이다. 취업도 전략적으로 기획해야 하는 시대다. 기획력은 갈수록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기업에서는 대학에서 기획에 대해 가르쳐서 기업으로 보내줬으면 한다. 대학에서는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업 영역뿐만 아니라 공무원 조직에서도 기획 강의를 했는데 어떻게 다른가.

= 기업은 신속함을 요구한다. 순발력과 적응력이 아주 뛰어나야 한다. 조직원들이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 강의를 해봐도 스스로 ‘재수’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공무원 조직은 일단 여유가 있다. 한마디로 유장하다. 기업의 기획이 성과를 내는 게 목표라면 공조직의 기획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목표로 한다. 공무원이 일반 기업의 직장인들처럼 바쁘기만 해도 문제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기획의 깊이이며, 전문성·일관성·신뢰성 등이다. 공무원들이 쓰는 자원은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공무원들이 만드는 기획이 잘못되면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공무원 조직의 기획 역량은 여전히 부족하다.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간결한 문체를 두려워한다. 기업에서는 두세 줄로 끝날 것을 한 페이지씩 간다. 장관에게 보고된 보고서가 엉망인 경우도 많다. 다행히 요즘엔 지자체의 장들이 선거로 뽑히면서 역동적으로 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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