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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로알기

천년학 (2007)-임권택 감독

 천년학 (2007)
 장르 멜로, 판타지
 감독 임권택
 주연 류승용, 오승은, 오정해, 임진택, 조재현
 상영시간 106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07.04.12
 공식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제작국가 한국
드디어 집을 찾은 임권택의 영화

2007.04.06 주성철 기자 

<천년학>에서 임권택 영화의 주인공은 드디어 자신의 집을 찾는다. 멋진 사계절의 풍광이 그 보금자리를 축복한다.

<천년학>은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1993)에서 제외했던 이야기다.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집 <남도사람> 연작 중 <서편제>와 <소리의 빛>을 영화 <서편제>로 만들었을 당시, 세 번째 이야기 <선학동 나그네>는 CG 등 당시 기술력으로 그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기 힘들다고 판단해 후일을 기약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 부족'이란 규모나 물량의 미비가 아니라 ‘정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질문은 ‘왜 당시에는 <천년학>까지 이어서 만들지 않았을까’가 아니라 ‘왜 지금 <천년학>을 만들게 됐을까’로 바뀌어야 되는 셈이다. 그것은 어쩌면 일본 평론가 사토 다다오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대해 종종 얘기하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천년학>은 그 긴 세월에 값하는 깊고 숙성된 향기를 전한다.

<천년학>은 ‘<서편제> 이후’라기보다 어린 시절을 포함해 <서편제>와 살짝 겹쳐 있는 후일담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 유봉(임진택)에게 맡겨져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는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가난이 싫고, 또한 송화를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난다. 유랑극단에 들어간 동호는 배우 단심(오승은)과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그 후에도 송화를 잊지 못하던 동호는 유봉이 죽고 송화가 눈이 멀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임권택 감독에게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길 위의 영화’ <만다라>(1981) 이후 그의 인물들은 늘 어딘가를 떠돌았다.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은 불안하게 길을 떠나는 장님 송화의 모습이었고, <노는 계집 창>(1997)에서도 두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달리다 그를 제지하는 교통경찰을 만나야 했으며, <취화선>(2002)에서는 아예 도자기 가마의 불길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삶을 택했다. <만다라> 이후 임권택 영화의 주인공 중 정착할 집을 마련한 인물은 오직 <천년학>의 동호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중동의 모래바람과 싸워가며 번 돈으로 멋드러진 목조가옥을 짓고 송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소리에 북 장단을 맞추며 마치 두 마리 학처럼 날아오른다. 이렇게 임권택 감독은 <천년학>을 통해 그 긴 여행을 끝내고 오랜 사랑을 완성했다. <천년학>은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라는 상징성에 한 몸처럼 멋지게 들어맞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