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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스크랩] [월간이벤트] Zoom in city - 암스테르담


대항해시대의 의미는 양극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선 유럽을 제외한 신대륙의 입장에서 이 시대가 갖는 의미는 다소 부정적이다. 수많은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가 신대륙 구석구석에 형성되고, 유럽적 사고와 문물(특히,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 기초한)이 그들이 수세기 동안 쌓아온 전통적인 삶과 사고의 양식에 침투했다. 오리엔탈리즘이 결코 동양을 추켜 세워주기 위한 단어가 아님을 인식하는 독자는 대항해시대가 동양사회에 미친 영향을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어쨌든 대항해시대가 인류의 역사에 선물한 위대한 업적들을 억지로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대항해시대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전 지구적인 인식의 시대가 열렸으며, 각각이 돌아가고 있었던 대륙단위의 톱니바퀴가 지구적인 하나의 틀 안에서 돌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세계는 각각의 문명이 발달시킨 값진 정신적 물질적 업적을 장기적으로 공유하게 되면서 인류문명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맞게 되었고, 이러한 발달을 촉진시킨 시기의 어디쯤엔가 네덜란드가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핵심 주인공은 스페인, 포르투갈과 영국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사실 복잡다단하게 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독립을 위해 피땀 흘리는 투쟁을 약 100년간 치룬 후에 겨우 강대한 한때를 보낼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그다지 길지 못했다. 대항해시대의 4대 주역 중 하나로서 세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영광의 시기는 가장 짧았던 나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네덜란드는 대항해시대를 통해 소중하고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교역경험의 축적과 미지에 대한 끊임없는 모험정신이 쌓아놓은 ‘관용’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네덜란드에 가기 전 대학교양 수업으로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특이함에 대해 접한 적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공창가(公娼街)가 있는 나라,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 마리화나 등 마약류가 법적으로 용인되는 나라, 동성결혼이 가능한 나라, 낙태를 법적으로 용인하는 나라...... 보수적인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들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쌍욕을 할 일들이 이 나라에서는 합법화되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이런 사전 인상을 가지고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도착해, 색다름에 대한 목마름으로 공항을 서둘러 나섰다. 그러나 차분하고 한적한 거리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유로운 사람들은 내 기대감의 한 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마약, 성매매 등이 합법화되어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 환락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필자가 가보았던 그 어느 나라의 어떤 도시보다도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도 자전거와 전동바이크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고, 차도의 삼분의 일 이상은 이러한 이륜 운송수단을 위해 구획이 잘 되어 있었다. 유럽의 유명한 대다수 도시들이 그렇듯이 건축물은 전통적인 고딕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그다지 높지 않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자동차가 많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른 여느 도시들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을 구현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내내 쾌적한 거리와 가로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좋은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암스테르담은 북쪽의 북해를 등지고 조성되어 있는 중앙역으로부터 남향 방사형으로 짜여진 운하를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암스테르담 도시탐방을 위해서는 중앙역에서 시작하여 남쪽방향으로 내려오며 시가지를 구경하면 적절하다. 중앙역에서 담락거리를 따라 10분정도 걸어 내려오면 그 유명한 섹스박물관이 있다. 사실 이곳의 콘텐츠는 그 명성에 비하여 너무나 열악했다. 디지털 콘텐츠 시대에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나라에 사는 필자로서는 추억의 옛 물건을 진열해 놓은 이 소규모 박물관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11월에 제주도에 러브랜드가 개장하면서 금기시 되어 있던 성문화를 대중을 상대로 문화상품화 하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암스테르담 섹스박물관은 1990년대에 조성되었다 하니 성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우리나라에 비해 대단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시품들의 대부분이 고금의 성도착증을 다루고 있어서 대중에 대한 성문화의 인정과 관용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담 광장은 [데이지]라는 한국영화를 촬영했던 장소로도 유명한데, 담광장에 더 유명한 것이 바로 마담투쏘 밀랍인형 전시관이다. 세계의 유명 연예인들, 가수들과 스포츠스타, 정치인들 등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놓은 곳인데, 진짜 사람과 같은 사이즈와 질감을 가지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담 광장은 마담투소 밀랍인형 전시관이 없더라도 충분히 가볼만 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대단히 유럽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 광장은 ‘유럽에 와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하다. 거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사람과, 트램, 마차, 거리의 화가, 거리의 악사, 분주한 상인들 등을 구경하느라 눈과 마음이 즐거운 곳이었다.




암스테르담에 가볼 일이 있다면, 꼭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차보다 자전거가 우선이고, 자전거를 위한 도로가 차량과 구분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좋다. 암스테르담에 간 둘째 날 동행인들과 함께 호텔에서 무작정 자전거를 빌렸다. 차가 많지 않은 거리와 높은 수령을 뽐내는 우거진 가로수들, 맑은 하늘과 그림처럼 운하를 끼고 낮게 서있는 집들. 이런 풍경들이 암스테르담의 자전거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자전거를 타고 중앙역 쪽으로 가는 길에 한 넓은 공원을 발견했는데, ‘아 여유로운 삶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감탄했다. 공원에 조성된 특이한 점은 잔디사면을 지붕으로 쓰고 있는 도서관이었는데, 여유롭게 책을 한두 권 빌려나와 잔디사면에 누워 햇볕을 쪼이며 읽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약을 인정하고, 매춘을 인정하고, 동성애자들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하면 다들 환락의 나라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음성화할수록 그런 것들은 더 구린내가 나기 마련인가보다. 모든 암적인 존재들도 사회의 일부로 껴안아 개선하고자 하는 국가의 정책과 이런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국민들의 수준 높은 관용의 정신이 부러웠고,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이들은 이렇게 평화를 누리고 있다. 감히 말하지만, 이런 정도의 관용을 전 사회적으로 베푸는 일이 한국에서는 과연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한바탕 돌아다니다가 오후가 되면서 무작정 운하를 따라 교외 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농구를 좋아하는 우리 일행들은 네덜란드 사람들과 농구를 한번 해보고자 코트를 찾아 나선 것이지만, 농구장 대신에 더욱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잘 정돈된 정원을 가진 멋진 2층짜리 집들이 늘어선 주거지역에 들어선 우리들은 코너에 있는 작은 동네 바에 목을 축이고자 들어섰다. 이방인, 게다가 동양인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잠깐 위화감이 생겼으나,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이내 우리에게 호의 섞인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왔다. 히딩크로 연결된 작은 유대감을 가지고 당구도 치고, 맥주도 마시면서 네덜란드인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쾌활하고, 활동적이고, 유머러스한 신사들이라는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원래 낯선 이방인들에 대한 호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에겐 타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어보였고, 여유롭고 관용 넘치는 자기들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암스테르담 교외의 좋은 추억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중심가로 향했다. 그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국가 공인 홍등가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홍등가에 도착했다. 아마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다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곳 홍등가는 전혀 어두운 기운이 흐르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가족들도 아무렇지 않게 빨간 빛과 함께 쇼윈도에 나와 있는 매춘부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어 다닌다. 이곳에서 매춘은 합법이다. 합법일 뿐만 아니라 지역사람들이 이곳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몇년 전 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국의 사창가를 문 닫게 했었다. 그러나 암묵적이지만 사회적으로 매춘에 대한 수요가 거대하게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창가가 줄어든 대신 변형된 변태 성매매업소가 주요 상권에 속속 생겨났다. 몇일 전, 또 다시 변태성매매업소를 단속한다고 국가적으로 난리가 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번에도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이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 필자가 매춘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춘에 대한 강경대응만으로는 음성화되고 더욱 어두운 곳으로 숨어 그 방법을 강화하는 매춘실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지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암스테르담은 여유로운 도시이다. 사람들은 희망과 자신감이 넘치고, 도시 곳곳에서 푸르른 기운과 아름다운 운하가 주는 안정감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을 찾게 된다면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하루를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여유 속에서 분명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항해시대 때부터 다른 나라와의 교역과 신세계에 대한 탐험을 경험해 온 이 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들이 지구 저쪽 어딘가 에서는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실수나 실패들을 그들은 관용으로 껴안을 줄 안다. 동성애는 나쁜 것이라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교육받아 왔다. 사형은 극악한 범죄자들에게는 통쾌한 복수라고 생각해왔다. 마약을 하는 자들은 패배자들이고 축출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자는 생각을 했다. 관용을 가지고 포옹할 줄 만 안다면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여기 관용의 도시 암스테르담이 보란 듯이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시길 바란다.



※ 위 내용은 월간이벤트 2008년 10월호 82~89p에 게재된 기사로 발행중인 월간이벤트 10월호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전체 또는 일부를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 하실 수 없으며 전재 및 재배포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Event Column
글쓴이 : 금부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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