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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a trekking

[스크랩] [해외트레킹] 뉴질랜드 서던 알프스 2 후커밸리

 
[특파원르포] 뉴질랜드 서던 알프스 2 후커밸리
 
눈부신 만년설산 아래 릴리꽃이 한들한들
억겁의 신비 안은 빙하호에 발 담궈 보는 왕복 10km 트랙

테카포호의 밀키블루(milky blue)는 진정한 밀키블루가 아니었다. 푸카키(Pukaki) 호숫물은 숫제 우유에 푸른 물감만 조금 풀다만 듯 희뿌연 젖빛이었다. 때문에 하늘의 찬란한 광채 덩어리인 흰 뭉게구름의 그림자조차도 푸카키 호수면에는 제대로 어리지 않았다. 그러나 혼탁하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먼, 투명하지는 않으나 옥(玉)과 같은 맑은 아름다움을 푸카키 호수는 간직하고 있었다.


버스가 호숫가로 빠져나오자마자 푸카키 호수를 탄생시킨 주역인 아오라키 마운트쿡이 긴 호수 저편에 두 개의 겹쳐진 피라미드 형상으로 솟아올랐다. 얼핏 보기에 저기 네팔 히말라야의 성봉 마차푸차레와 흡사하다고 하자 제프는 “아하, 그렇게 보니 정말 그렇네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 후커 호수. 저 위의 마운트쿡으로부터 녹아내린 물이 고여 이루어진 빙하호다. 왼쪽 옆으로 하여 더 올라갈 수 있으나 길이 매우 험하다.

뉴질랜드 최고봉인 마운트쿡(Mt.Cookㆍ3,764m)을 부를 때 제프를 비롯한 이 지역 사람들은 꼭 아오라키라는 말을 앞에 붙였다. ‘삐죽 솟은 창’이라는 뜻인 아오라키(Aoraki)가 이 봉우리의 원래 이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자, 원주민을 존중한다는 뜻에서라고 한다.


네팔인들이 보았다면 역시 저 봉도 마차푸차레(물고기 꼬리) 같다고 했을까.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김태훈씨가 갑자기 그렇게 ‘연가(戀歌)’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를 두어 소절 흥얼거리고 나서는 말했다.


“이 노래 다들 잘 아시죠? 이게 원래 마오리족 민요예요. 포 카레카레 아나(po karekare ana) 라는-.”


무모해보일 만큼 덩치가 큰 마오리족들에게 그렇듯 애잔한 정서가 있었다는 말인가. 모를 일이었다. 제프는 푸카키 호수 서편으로 돌아 아오라키 마운트쿡을 향해 버스를 몰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사태 굉음


차디찬 빙하의 냉기를 품은 부연 젖빛의 푸카키 호수와 그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검푸른 상록수림과 새파란 하늘과 눈부셔서 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찬란한 뭉게구름.


이들이 어울린 풍광의 강렬함은 산 밑으로 다가들수록 점점 더해갔다. 남북 방향의 세로로 길쭉한 푸카키 호수 맨 끄트머리에서 그러한 강렬함의 결정체로 다가온 것은 그러나 아오라키 마운트쿡이 아니라 셉튼봉(Mt. Seftonㆍ3,157m)이었다.


▲ 후커밸리 트랙 중간에서 본 풍경. 저 멀리 바깥쪽으로 푸카키 호수가, 오른쪽 옆엔 내일 오를 세바스토폴봉이 뵌다.

마운트쿡은 오른쪽 절벽에 가로막혀 뵈지 않았다. 그 대신 셉튼봉이 계곡 왼쪽에서 검은 암벽 위로 깎아지른, 희다 못해 푸르딩딩한 광채마저 띤 거대 설벽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의 경사가 느껴지지 않는 평탄한 계곡을 거슬러오르자마자 이렇듯 거대한 만년설산의 수직 암벽과 곧게 빗질해 쓸어내린 듯 작은 굴곡면, 그리고 촘촘히 가로로 균열이 간 빙하지대마저도 새긴 것처럼 뚜렷이 드러난 봉우리가 통째로 가슴에 떠안기듯 했다. 


유럽 알프스의 경우는 만년설사면에 다다르려면 가파르고 긴 삼림지대를 케이블카나 궤도열차로 거쳐야 한다. 샤모니 같은 데서 보면 만년설산은 저 위, 다소 먼 곳에 구름층을 허리에 두르고 서 있다.


그러나 이곳 서던 알프스는 중간층이 없이, 평지에서 곧바로 만년설 기슭과 대면하게 된다. 때문에 만년설산의 여러 특징이 한결 강렬하게 다가온다.


버스에서 내려 뜨거운 햇살에 재킷을 벗는 순간 꽈르릉 하는 눈사태의 굉음이 계곡을 흔들었다. 셉튼봉 중턱에서 뽀얀 눈보라가 흩어지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속에서 가벼운 흥분이 인다. 어제 에리카피크 능선에서 아마득히 저 멀리로 바라보던 서던알프스의 만년설 지대 한가운데로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후커(Hoooker) 밸리 트랙은 저 겁나는 눈사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극히 안전한 트랙이다.

만년설의 흰빛과 초여름 신록의 기막힌 조화


 후커계곡은 남북으로 길쭉하게 형성된 셉튼봉 능선과 마운트쿡 남릉 사이에 형성된 긴 계곡을 말한다. 오늘 우리가 다녀올 곳은 계곡 하단부에 형성된 빙하호 후커 호수까지로,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왕복 10km의 짧은 트랙이다.


▲ 후커밸리 트랙 중간에 일부 깔려 있는 목제데크. / 뮐러 호수와 거대한 빙하가 내려다뵈는 둔덕 위의 사람들.

주차장을 떠나 아름다운 숲지대를 가로지르다가 알파인 메모리얼(산악인 추모비)로 올라 콘크리트 반죽으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의 빙하호인 뮐러호와 그 위의 광대한 뮐러 빙하를 보고 나서 후커리버에 걸쳐진 다리 건너 주욱 계곡길을 따라 후커 계곡가까지 갔다가 되내려오는 단순한 이 트랙은 그러나 트랙을 구성한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적이고 아름다워서 걸음은 한정없이 느려졌다.


주차장을 떠나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어울려 이룬 아름다운 숲지대 안으로 제프는 우리를 인도했다. 실은 별다른 안내가 필요없을 만큼 사람들의 왕래는 많고, 그 대부분은 일본인들이다. 거의 전 구간 일본인들이 줄을 지어 늘어섰다고 할 정도로 많다.


구름다리 건너 절벽 아랫길을 따르다가 다시 구름다리를 건너며 후커계곡 하류부의 넓은 관목지대로 나서자 곧 아오라키 마운트쿡의, 끄트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정상부와 더불어 거대한 덩치를 드러냈다.


▲ 1. 후커밸리로 가는 도중의 뷰포인트. 푸카키 호수와 왼쪽 저 멀리 아오라키 마운트쿡이 바라뵈는 멋진 조망처다./ 2. 와일드 스페이나드(Wild Spainards)라는, 끝이 몹시 뾰죽한 식물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어드벤처사우스의 제프 사장. / 3. 후커강 위에 걸쳐진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

푸른 수목들과 그 위로 눈부시게 치솟은 마운트쿡이 이룬 풍경은 위치마다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흠결 하나 없는 완벽한 그림이다.
빙하로부터 흘러내리는 개천 옆의 넓은 평원지대는 식생이 풍부한 습지이기도 해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행이 가능한 정도의 넓이로 기나긴 목제 데크를 설치해두었다.


이 데크 바깥으로 막 여름을 만난 마운트쿡 릴리꽃이 나홀로, 혹은 여러 송이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 계곡을 장식하고 있다. 눈처럼 희디흰 색으로, 저 눈부신 마운트쿡의 화신인양 온 들판 여기저기에 릴리꽃이다.


중간의 대피소 옆으로 흐르는 작은 실개천 물을 김태훈씨는 거리낌 없이 손으로 떠서는 마신다. 릴리꽃 옆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따가운 햇살과 빙하로부터 흘러내려온 서늘한 냉기가 이룬 앙상블은 거의 황금비율에 가까운 것이어서 저절로 깊이 들이마시게 하는 감칠맛이 있다.

후커 호숫가엔 여러 일본 관광객들이 앉아 쉬고 있다. 호숫물은 당연히, 발을 담그고 단 1분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차다. 호수 저 위, 간혹 빙하가 호숫물로 첨벙 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려 빙하 저 위까지 거슬러 오르는 사람도 뵌다.


서던알프스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저 위 볼패스를 넘는 1박2일의 긴 트레킹 정도는 해야 하지만 일반 트레커들에겐 좀 무리라고 한다. 제프는 마운트쿡 북쪽 저 너머 폭스 빙하로도 여러 갈래의 전문가용 트랙이 산재해 있다고 일러준다.


▲ 아오라키 마운트쿡을 뒤로 하고 하산중인 일행. 길옆에 마운트쿡 릴리꽃이 무리로 만발했다.

아쉽지만, 호반에서 간단한 간식을 들고 돌아섰다. 아무튼 우리는 보기 드물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곳 마운트쿡 지역은 열흘에 일주일은 구름이나 안개가 끼어 경치를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날씨는 좋고 오후 시간은 넉넉하니 전혀 서둘 일이 없었다. 제프가 먼저 내려가거나 말거나 우리는 여유롭게 후커밸리의 사방 풍경을 남김없이 돌아보며 내려갔다.


다음날 우리는 새벽 일찍, 어두컴컴한 가운데 랜턴을 켜들고 숙소를 나섰다. 방문자센터를 비롯해 허미티지호텔 등 여러 시설이 선 집단시설지구의 남쪽 세바스토폴봉(1,468m) 중턱까지 올라 일출맞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산중턱에 레드 탄(Red Tarns)이라 부르는 자그마한 산중 습지가 있으며, 그곳까지 왕복하는 레드탄 트랙은 서던알프스의 만년설을 좀더 웅장하게 바라보고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망 트랙이다.


제프의 애초 계획은 아침 식사 후 천천히 이곳까지 오르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한국식 일출맞이 산행으로 이곳 레드탄을 새벽에 올라가자고 고집했다. 셉튼봉이 아침 햇살로 아예 불그스름한 불덩이처럼 물드는 장관을 기대했던 것이다.


레드탄 트랙에서 멋진 일출 기대했건만…


히말라야나 유럽 알프스에서 간혹 만났던 그런 절경을 상상하며 어둠속의 숲지대로 접어들었다. 급경사 계단길이 갈짓자로 끝없이 이어진다. 하긴, 어제 보았을 때 저기 어디 길이나 나 있을까 싶게 가파르게 보였던 산비탈이니-.


숨은 거칠어지고 장딴지 근육은 한계치까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쑥쑥 고도가 높아지며 광대하게 펼쳐진 후커 강변 평원지대와 검은 산릉, 그리고 푸르딩딩한 벽으로 치솟은 셉튼봉 남벽이 펼쳐졌다.


가쁜 숨을 고르며 쉬기를 두어 번 반복한 뒤 지름 10m쯤 되는 타원형의 작은 습지로 먼저 올라섰다. 오른쪽 위로는 넓은 퇴석지대. 그 위로 검은 대암벽이 산정까지 치닫고 있다. 왼편 저 위의 작게 턱이 진 위가 레드탄. 컬드 스노투속이라는 덤불들 사이로 뚜렷한 길이 나 있다. 여전한 급경사에서 여러 번 숨을 몰아쉰 끝에야 레드탄에 올라섰다.


▲ 옅게 구름이 띠를 두른 셉튼봉. 주차장에서 바로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은 틀린 것 같았다. 금방 해가 뜰 것처럼 사위가 밝아왔지만 하늘은 옅은 구름층이 한 겹 도배한 것처럼 뒤덮여 있다. 이런 하늘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펼쳐 놓고, 두툼한 우모복을 겹쳐 입고 바람이 덜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30여 분 기다리다가 기대를 접었다. 


하산 후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한국식 일출산행을 고집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늘이 다시 어제처럼 말끔히 닦아낸 것처럼 맑아진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허미티지모텔 지붕 위로 자라난 실버비취나무의 짙푸른 신록과 그 뒤에 배경으로 펼쳐진 셉튼봉의 눈부신 설벽이 어울린 풍경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마운트쿡을 뒤로 하고 빠져나오는 길에 다시 만난 푸카키 호수빛은 물론 여전히 옥색 일변도였다. 단 한 구석도 옥색 아닌 곳이 없는, 그래서 거짓말 같은, 눈앞에 실재하지만 차마 믿기 어려운 독특한 색상이다.


세번째 트랙인 와나카 호반의 블랙피크로 가는 길에 지나친 트위젤이란 마을 옆의 루아타니화라는 작은 호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도로변에서 눈에 띈 연어양식장에 들러 우리는 빙하호숫물이 키워낸 서늘한 연어회로 그 옥빛 호숫물 색상에서 비롯된 기이한 조갈증을 풀었다.


▲ 1. 조망대에서 본 셉튼봉과 뮐러 호수. 셉튼봉은 마운트쿡과 더불어 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오르고 있는 봉이다. / 2. 후커 호숫물에 발을 식히고 있는 일행. / 3. 후커밸리 트랙 중간 대피소 옆에 설치된 위치확인기기. 중간의 직선형 바를 저 멀리 이름을 확인하고픈 봉우리에 조준하면 곧바로 바닥에서 이름이 확인된다.


뉴질랜드 여행 이모저모


11월~4월이 서던 알프스 트레킹의 최적기


○ 뉴질랜드 여행ㆍ트레킹 최고의 시즌은 여름철인 11월에서 2월(길게는 4월)까지다.

이 때면 항공료를 비롯해 차량 렌탈비용, 숙박비 등이 매우 비싸지지만, 역시 경치는 연중 가장 아름답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인 만큼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서 원하는 날 곧바로 차량이나 숙소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시즌에만큼은 패키지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편하다. 다만 한국에서 판매되는 뉴질랜드 패키지 여행상품들은 마운트쿡, 테카포 호수 등을 그저 먼 발치에서만 잠깐씩 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대다수다. 뉴질랜드의 명소들을 과연 얼마나 근접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보게 되는지를 사전에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 뉴질랜드는 약 28만km2로 남한의 3배쯤 되는 면적에 인구는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약 400만 명이다.

인구밀도가 그렇게 낮고 국민소득은 3만 달러로 높아서인지 사람들이 느긋하고, 동양인들에 대한 친절도가 옆 나라인 호주에 비해 한결 높다. 뉴질랜드인들은 동양인 중 한국인에 대해 특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 목축업이 주요 산업인 뉴질랜드는 육류나 식물류 등의 반입을 엄격히 금지한다.

공항에서 등산화나 스틱에 묻은 흙까지도 까다롭게 살피므로 출국 전 손을 봐두는 것이 좋다. 한편, 뉴질랜드는 햇살이 매우 강렬하여 눈이 없는 풍경이라도 눈이 부시다. 그러므로 뉴질랜드 여행시 선글라스와 선크림은 필수다. 여름이라도 긴팔 상하의를 입는 것이 좋다. 그러나 햇살에 몹시 뜨겁다가도 구름장에 가려지면 금방 서늘해지는 한편 느닷없이 비가 뿌리기도 하므로 보온의류와 방수재킷도 꼭 챙겨야 한다.


○ 뉴질랜드의 ‘모텔(motel)’은 우리나라의 모텔과 크게 다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펜션이나 고급 민박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모텔들은 내부에 취사도구가 완벽히 갖춰져 있어 공연히 비싼 식당 음식을 사먹을 필요가 없다. 팩인 세이브(Pack’n save) 등 대형 마트가 중소형급 도시에도 있으며, 양질의 육류나 고급 포도주가 많이 나는 나라라서 값이 싼 편이다. 다만 한국 음식은 거의 없으므로 김치나 젓갈 등은 조금 가져가는 것이 좋다.


 

 

월간산/ 글·사진 안중국 차장 tksdkr@chosun.com


 


출처 : silk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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