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8시(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의 10여 개 대학이 모여 있는 ‘IT밸리’ 중관촌의 우다오커우 전철역 주변에 출근 중인 시민들과 차량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전철역 출입구 옆의 길가에는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들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다. 배고픔에다 더위까지
겹쳐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시민들은 출근길을 재촉하느라 노숙자들을 그냥 지나친다.
이때 출근하는 시민들의 행렬
사이로 몇 명의 젊은이들이 빠져나와 무엇인가가 든 봉지를 노숙자들에게 건네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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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우다오커우 전철역 근처에서 한 한국인 유학생이 노숙자에게 아침식사를 주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자전거 바구니에 노숙자의 식사가 들어 있는 봉지가 있다. | 봉지에는 두유와
만두 4개가 들어있다. 아침식사다. 젊은이들은 봉지를 주고서는 재빨리 발길을 옮긴다. 동작은 빠르지만, 말과 태도는 공손하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건네주는 노숙자의 아침식사, 두유와 만두 “남 도울 때 오른손 한 일 왼손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
따른다”
노숙자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 젊은이들은 다름 아닌 한국인 유학생들.
베이징(북경)대학, 베이징스판(북경사범)대학, 베이징위옌원화(북경어언문화)대학, 런민(중국인민)대학, 칭화(청화)대학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대학원생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네 달째 꾸준히 우다오커우 지역의 노숙자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들의 도움은 친구나 가까운 사람조차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
“남을
도울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을 따르고 있다”는 게 이 학생들의 팀장을 맡고 있는 A씨의
얘기다.
최근 노숙자가 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반영하듯 베이징 시내 북서쪽에 있는 우다오커우 전철역 근처에는 10~20명의
노숙자들이 상주하고 있다. 노인은 물론 부녀자들도 포함돼 있다. 대부분 산둥성을 비롯해 허난성·안후이성·쓰촨성 등지에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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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인 유학생이 건네준 아침식사를 받아들고 한 노숙자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울고 있다.
| 이들은 구걸해서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굶기가 일쑤다. 산둥성에서 올라온 칠순이 넘은 한 노숙자는 “이곳에 앉아 하루에 많을 때는 7~8위안(1000원) 정도를 받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한국인 유학생들이 노숙자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초. 베이징대학 대학원생인
B씨가 처음 이 일을 하자고 말을 꺼냈다. B씨는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1위안이나 1·2·5지아오 같은 잔돈들을 모아온
터였다.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없다. 도울 방법 찾아보자” 3명 의기투합 책상 서랍 속 잔돈 4만원이 ‘종자돈’…봉사 학생 수 15명으로
늘어
B씨는 지난 3월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 2명과 만나 “우다오커우
지역에서만도 적지 않은 노숙자들이 손을 내미는데 더는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없다”며 “도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이날 B씨가
내놓은 계획은 노숙자들에게 아침식사를 무료로 주는 것. 후배들은 흔쾌히 B씨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리고 평소 책상 서랍에 아무렇게나 넣어뒀던
잔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모은 잔돈은 모두 300위안(4만 원)가량. 노숙자들의 아침식사를 위한 ‘종자돈’인 셈이었다.
이들은 이 돈을 들고 은행에 가서 노숙자 돕기를 위해서만 사용할 계좌를 만들었다. 이로써 아침식사 무료 급식 계획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들은 본격적인 식사 제공에 앞서 노숙자들이 잠을 자고 구걸하는 곳과 노숙자들의 숫자를 살폈다. 노숙자들에게 간단한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초부터 아침식사 제공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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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학생이 노숙자에게 주고 간 봉지에 들어 있는 아침식사. 두유와 만두 4개다.
| 식사 메뉴는 중국인들이 평소 아침에 먹는 음식으로, 두유 1개와 만두 4개로 정했다. 모두 합해서
2.6위안(350원) 정도. 배부르게 먹을 수는 없지만, 허기를 어느 정도 때울 수 있는 양이다.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다른 지역의 노숙자들이 옮겨왔다. L씨는 “처음 시작했을 당시 전철역 근처에서 노숙하는 노숙자가 5명 정도였는데, 소문을 듣고
왔는지 매일 2명 정도씩 늘면서 2~3주 만에 노숙자가 20명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숙자들이 많아지면서 세 사람만으로는
힘이 벅차게 됐다. 하루 아침식사 한 끼를 준비하는 데 50위안(6600원), 한 달에 1500위안(19만7000원)이 필요했기
때문.
그래서 주말에 같이 공부하면서 알고 지내는 몇몇 선후배 유학생들과 모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다른 유학생들의
대답은 ‘대찬성’이었다. 그 결과 봉사자는 15명 정도로 크게 불어났다.
“노숙자들 똑같은 인격체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4월부터 지금까지 봉사활동 거른 날은 5월 중
하루…“죄송한 마음”
뒤에 합류한 C씨(여)는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노숙자들을 보고도
무심코 지나쳤고, 식사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었다”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당연한 일에 동참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돼
지금은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리의 목적이 뭘 자랑하고 우리 자신들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그
사람들을 동정심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존엄한 인격체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아침을
제공받는 노숙자들이 늘자 내친 김에 한 사람이 한 달에 100위안(1만3000원)의 회비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D씨는 “억지로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마지못해 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참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이들
유학생 모두 술·담배를 하지 않고 모은 돈으로 회비를 내고 있다.
이 덕분에 무료 식사제공 활동도 탄력을 받는 동시에 더욱 체계가
잡혀갔다. 이들은 아침 7시 반께 미리 만나 두유와 만두를 사 가지고 전철역 근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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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 한국인 유학생이 노숙자가 자는 곳으로 아침식사를 주기 위해 가고 있다.
| 먼저 전철역 출입구 옆 길가의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나눠 준 다음 풀숲을 헤치며 30m 떨어진
고가도로 밑으로 옮긴다.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이곳에서 혹시 몸이 아파 남아 있을 노숙자들에게도 아침식사를 주기 위해서다.
“식사를
드리다가 준비한 게 모자라 역 근처 가게에서 추가로 사서 드린 적도 많았다”며 “어떤 노숙자는 고기만두를 소화시키지 못해서 다른 메뉴로 바꿔
주기도 한다”고 A씨는 설명했다.
요즘 이들은 당번을 정해 매일 몇 명씩 돌아가며 이 같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A씨는 “처음에는
다 같이 나갔는데, 여럿이 움직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1교시 수업과 시험이 있는 사람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여건이 되는
3~4명씩만 전철역에 나가 식사를 나눠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침식사를 나눠주지 못한 적도 한 번 있었다고
한다. 5월 중 팀장인 A씨가 시험 때문에 아침에 못 나갔는데, 다른 사람들도 갑작스런 사정 때문에 모두 나가지 못했던 것. A씨는 “기다리고
계셨을 분들에게 무척 죄송했다”고 당시 심정을 말했다.
“노숙자들에 음식 주지 마라”, “왜 이런 일 하냐?”는 시민들 불구 “나중에 노숙자 위한 작은 쉼터
마련하겠다” 학생들 당찬 포부
물론 이들의 무료 식사제공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순수한
봉사활동도 오해를 일으키고 이상하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에게 더 이상 음식을 주지 말라”고 말하는 중국 시민도
있다.
최근 들어 노숙자 수가 갑작스럽게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도 유학생들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유학생들은 행인이나
교통경찰의 눈을 가급적 피하기 위해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면서 인사만 하고 행인처럼 재빨리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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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인 유학생이 노숙자에게 아침식사를 주는 순간 지나가던 중국 행인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 무료 식사 봉사에 자주 나가는 E씨는 “대체로 행인들은 나쁘게 반응하거나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행인들과 버스 승객들이 아직까지는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한
중년 여자가 “정말 좋은 일 한다. 그런데 왜 자기 돈을 들이면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보다
경계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이 나태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침에 몸이 아파서 몇 번씩 봉사활동에 빠졌다는 한 여학생은
“만일 우리가 못나가게 되면 그 분들이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니까 압박감 아닌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아침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가야
되니까 기쁨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일’이 돼버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정기
모임을 갖는 이 유학생들은 이 지역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최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팀장인 A씨는 “계속 할 수만 있다면 식사를 쉬지
않고 꾸준히 드릴 계획이다”면서 “나중에 이 지역의 노숙자들을 위한 자그마한 쉼터를 마련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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