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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해외 한국학의 현주소-해외 한국학 사후관리 허술

[해외 한국학의 현주소]해외 한국학 사후관리 허술…엉뚱한 곳 지원도
 ◇지난 9월 5일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케임브리지대 존 스완슨 라이트 교수(한국학) 주관으로 열린 한반도의 핵 외교 관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런던=김종수 기자
우리 정부의 올해 해외 한국학 지원예산은 90억5000만원(국제교류재단 70억원, 한국학술진흥재단 15억원, 한국학중앙연구원 5억5000만원)이다. 이 예산은 해외 한국학을 진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학 지원사업은 장기계획이나 사후관리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한국학 지원사업은 업무 중복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부터 학술진흥재단의 한국학 지원 관련 사업이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관되지만, 여전히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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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자 초청만 하고 그만=국제교류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은 한국 전문가를 육성키 위해 해외 한국학자들을 3개월∼1년씩 한국으로 초청해 연구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국제교류재단은 올해 ‘체한연구 펠로십’에 21개국 37명, ‘한국어 연수 펠로십’에 40개국 80명을 초청할 계획이다.

한국학 관계자는 “국제교류재단에는 한국에 초청한 외국 교수들을 책임지고 교육할 만한 기관이 없다”며 “교수들을 초청한 다음에 관리하거나 평가하는 시스템이 미흡해 형식적인 보고서만 받고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국제교류재단에서 한국에 초청한 외국 교수를 평가해 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거절했다”며 “한번 만나본 적도, 면담한 적도 없는 외국 교수를 평가해 달라고 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제교류재단이 연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적 지원에만 치중해 교육·연구·네트워크를 통한 성과 측정 등 사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학자 외국에 파견만 하고 그만=학술진흥재단은 그간 한국학 교수의 해외파견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지난해 62만4500달러를 들여 23개 외국 기관에 한국학 교수들을 연구·강의 목적으로 보냈다. 영국에 파견됐던 한 한국학자는 “프로그램 대상 교수 선발 경쟁이 치열하다”며 “하지만 선정 후 외국에 나가면 신경 쓸 일이 없다보니 대다수 교수들이 1년간 쉬고 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대상자로 뽑힌 뒤 재단 실무자로부터 선정됐다는 이메일을 받고 전화통화한 게 전부”라며 “먼저 파견됐던 교수한테서 인계받은 것도 없고, 사후보고서도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이은자 교수는 “외국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한국어 교수들의 질을 높여야 한다”며 “한국 인문학 교수 가운데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학술진흥재단에서 외국에 교수들만 파견하는데, 영어 잘하고 의욕 있는 대학원생들에게도 한국학 강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판지원 책자에 동해가 일본해로=국제교류재단은 해외 한국학자의 연구·출판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올해에도 35건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사업도 사후관리가 미흡하다 보니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의 피터 H 리 교수가 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문으로 펴낸 ‘한국문학사’라는 책은 580쪽의 대작으로, 내용도 훌륭하다는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옥에 티’가 있다. 책의 도입 부분 두 쪽에 실린 동아시아와 한반도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버젓이 표기돼 있는 것. 한국 기관이 출판을 지원한 책이 ‘일본해’를 홍보하는 셈이다.

◆엉뚱한 사람이 한국학 설립 창구역할=국제교류재단은 6년 전 부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유펜')의 한국학 사업에 총 250만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 지원금이 전달된 동아시아센터의 소장(한국학 담당 창구 역할을 한 교수)은 한국학 전공이

아니라 일본학 전공 교수였으며, 한국학 담당 교수 2명은 기금이 모아진 뒤 채용됐다.

서울의 모 대학 교수는 "당시 교류재단이 해외 네트워크와 정보가 부족해 한국어를 못하는 일본학 전공 교수가 한국학 설립의 창구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학 전공 교수가 많은 미국 지역의 경우 한국학 전공자가 학교의 행정 요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지 않아서 장래 발전에 문제가 될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한국학 육성전략이 치밀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조직적·체계적인 계획과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국 교과서 왜곡 시정사업도 시류따라=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외국 교과서의 한국 관련 왜곡 시정사업 지원 규모도 시류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외국 교과서의 왜곡 파문들이 일 때는 예산이 늘었다가 잠잠해지면 줄어드는 식이라는 것. 실제로 2002년 19억3000만원이던 예산이 2003년 9억2000만원, 지난해 9억원, 올해에는 7억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내년 예산은 올해 일본 교과서 왜곡 파문이 일자 10억원으로 늘어났다.

서울대 임현진 교수(사회학과)는 “해외 한국학 관련 교재 개발 및 연구 지원, 학문 후속세대 양성 등 여러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조직이 없는 실정”이라며 “주어진 최소 재원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홍성일·최현태·김형구·김종수·엄형준 기자

◇미국 UCLA의 피터 H 리 교수가 펴낸 ‘한국 문학사’에 실린 한반도 지도. 동해 대신 일본해(Sea of Japan)란 표기가 뚜렷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