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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스크랩] 세계 배낭여행자의 천국-리장고성

낯선 곳에서의 첫날을 포근한 침대에서 자면 좋으련만 워낙에 드넓은 곳인 만큼 윈난 배낭여행은 밤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도 첫날 저녁에 따리로 가는 차를 타야 했다. 우리 계획은 침대 기차를 타고, 따리(大理)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여행을 진행하는 이들이 여름철 두 구간의 영업을 맡은 회사의 횡포로 웃돈을 줘도 기차표 구하기가 어렵다며, 침대 버스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화가 치민다. 중국 정부는 민영화 정책에 따라 다양한 공공시설의 사영화를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권이 개입하면서 여행하기가 영 불편해졌다. 부실한 정책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변경 사실을 현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진행자로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까지 겹쳐 울화가 치민다.

따리로 가는 고된 길

일반 차를 개조해 2층 침대차로 바꾼 버스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이다. 워낙 땅이 넓어 하루 이틀씩 다니는 장거리 버스는 기본이고 길면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이들은 가능한 통행료가 없는 길을 다닌다. 각 정부는 도로를 포장하고, 통행료를 받는데 지역 이기주의도 그 수위가 높아져 심한 곳은 30분 단위로 통행료를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처음부터 침대차로 출고된, 고급 침대 버스도 많아졌다. 다만 한국 못지 않은 요금이 좀 부담스러울 뿐. 그런데 우리가 탄 침대 버스는 작은 버스를 개조한 것이라 몸을 제대로 펼 수 없어 불편하다. 거기에다 어지간한 사람은 견디기 힘든 중국 아저씨들의 발 냄새까지. 하지만 고생을 예상했는지 의외로 모두 잘 버틴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한다. 서서히 밤이 깊어가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지자 도저히 덮을 것 같지 않았던 이불을 모두 덮는다. 여행에 서서히 적응해 가는 것이다.

▲ 따리의 거대한 호수인 얼하이. 보이는 것은 호수 한켠에 있는 관음각이다.
ⓒ2004 조창완
새벽 기운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인기척을 내더니 차가 따리에 들어설 무렵에는 대부분이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정리한다. 오늘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일까. 버스에서 내려 당분간 의탁할 여행버스로 갈아탔다.

따리는 해발 고도 1976m로 한라산 정상보다도 약간 높은 고도에 위치한 도시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리석(大理石)의 고향이다. 이곳의 주인은 바이주(白族)인데, 이들은 당대에 남소국(南昭國), 송대에 대리국(大理石)으로 나름대로 강성한 국가를 형성했다. 하지만 13세기 중엽 세계를 유린하던 쿠빌라이 칸에게 무릎을 끓었는데, 이것이 중원에 지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런 역사의 향취를 느끼려면 과거 모습이 남아 있는 고성 지역에서 시작하면 된다. 따리의 시가지인 샤관(下關)에서 고성까지는 8km 정도. 오른편에는 251㎡에 이르는 거대한 담수호인 얼하이(洱海)가 있다. 거대한 호수를 보고, 이들은 상상 속에 있는 바다로 이름을 붙였다. 리지앙에 비해서 아직 한적하다는 장점이 있는 따리 고성은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휴식처 가운데 하나다.

일단 지난 밤에 놀란 가슴을 한국 음식으로 달랠 겸 넘버3 게스트 하우스 '서울식당'으로 향한다. 서울식당은 일찍이 따리가 좋아서 눌러 앉은 문영배씨가 차린 여행자 카페다. 이 곳뿐만 아니라 리지앙, 시솽반나, 징홍 등에도 우리 나라 사람이 차린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한국 음식은 물론이고 정보 공유가 절실한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아지트 역할을 한다. 이런 아지트 때문에 새로운 모험을 하는 기회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곳이다.

우리 일행은 김치찌개 등으로 허기를 달래는 한편 먼저 들른 여행자들의 흔적을 보면서 막 시작되는 여행을 점검한다. 아쉽게 주인장은 하룻밤 묵는 일정으로 얼하이 호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마실을 떠났다고 한다.

▲ 리지앙 고성은 작은 골목 사이에 게스트하우스들이 산재해 있다.
ⓒ2004 조창완
우리는 따리의 상징인 싼타스(三塔寺)로 향했다. 거대한 탑 3개를 구경하는 데 입장료가 물경 52위안이다. 우리 돈 7500원 가량을 낼 가치는 없다는 말에 여행객들은 발길을 돌려 얼하이 호수로 향한다. 중국 여행지의 입장료 상승률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보기에 2년에 100%씩은 오르는 것 같다. 이렇게 입장료를 올리는 데에는 수익을 올리려는 속셈도 있지만 급속히 늘어나 주체할 수 없는 여행객 수를 입장료라도 제어하려는 것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폭등하는 입장료에도 여행객은 좀체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얼하이 호수의 유람선은 템포를 조절하면서 거대한 호수의 한켠을 가로질러 갔다 온다. 맑은 빛의 호수, 조용한 고성, 그리고 고성을 애두른 최고 4122m의 창산(蒼山)은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고성의 뒷켠에 버짐처럼 서 있는 건물들은 이곳에도 난개발이 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씨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4>에서 훗날 이곳에서 정착하고 싶다고 했는데, 현재 모습을 본다면 그 마음을 접지 않을까.

백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저우(喜州)에 들러 고건축과 삼도차(三道茶) 전통 연을 본다. 따리의 저지대는 가을까지는 대부분 벼를 심는 논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이곳의 농토에는 차가 재배된다. 이것이 바로 삼도차인데 차의 쓴맛에 설탕의 단맛, 생강의 맛 등을 합친 3개의 맛이 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고 한다. 의미는 좋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맛은 아니다.

세계 배낭여행자의 천국 리지앙 고성

▲ 옥룡설산 깐하이즈의 야생화 군락.
ⓒ2004 조창완
조금은 아쉽지만 오늘 밤에 잘 곳도 따리는 아니다. 우리의 첫 지상 휴식처는 리지앙(麗江)이다. 리지앙으로 향하는 길에 우리가 탄 차에 작은 접촉 사고가 났다. 원래 중앙선이야 무시하는 것이 중국의 기본 운전 자세인데, 좀 심하다 싶더니 맞은 편에서 오던 차와 스쳤다. 무질서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중국 교통 문화다. 올해부터 새로운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지만 아직 수십년을 젖어온 습성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들을 위협하는 최대의 무기 '벌금제'가 엄격해진다면 생각보다 빨리 난폭 운전의 습관은 없어질 것이다.

차가 리지앙에 접어든다. 사람들은 조금씩 실망한다. 리지앙의 시가지는 우리 시(市) 단위 정도 도시 같다고 할까. 이런 모습을 보려고 이 먼길을 왔나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차는 시 중심으로 틀어 작은 산을 끼고 올라가다가 우리를 내려 놓는다. 우리가 묵을 곳은 췐쉐로우(嵌雪樓)다. 이곳은 과거 사찰이었던 건물을 잘 개조해 만든 호텔로 고고한 느낌과 더불어 고성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신선한 느낌을 준다. 호텔에 짐을 푼 일행들은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1996년 리지앙에 리히터지진계 7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지역이 폐허가 됐는데 지금의 고성 지역만은 안전했다. 이런 특이성과 건물 가치가 인정되어 1999년에는 이 지역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직경 10km 가량의 지역에 우리의 기와집을 연상하는 모습의 도시는 그 자체로만 신비한 느낌을 준다.

이 도시를 형성하는 포인트는 위추안(玉泉)호수에서 흘러 나온 위허(玉河)가 도시의 중심을 여러 갈래로 관통하면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모습이다. 이름처럼 맑은 물빛은 도시를 청량한 모습으로 만들어낸다. 작은 시내가로는 카페가 있다. 사람과 상권의 중심에 형성되는 쓰팡지에(四方街)는 도시 곳곳에 형성된 중심지로 밤에는 공연하는 장소, 낮에는 약속의 광장처럼 쓰인다.

고성은 각자의 취항에 따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보이차나 나염 등 각종 특산물 쇼핑은 물론이고 나시족 전통 공연 등 낮과 밤으로 흥밋거리가 있다. 또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서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비포 선 라이즈> 같은 사랑을 기대하며 바를 서성이기도 한다. 그러나 급속히 늘어나는 여행객의 홍수로 리지앙도 머잖아 사람의 홍수에 빠질 것이다. 일행 중에 주당들은 다시 한국인 김명애씨가 운영하는 '벚꽃 마을'에서 술의 향연에 빠졌다. 그렇게 리지앙의 첫 밤은 헤롱헤롱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이 벗겨지는 옥룡

▲ 옥룡설산의 모습. 갈수록 만년설은 녹아간다.
ⓒ2004 조창완
다음 날은 리지앙에서 가장 가까운 설산인 위롱쉐산(玉龍雪山)으로 향했다. 설산의 입구에서는 고성의 보수비를 내야 한다. 엉뚱한 곳에서 돈을 내는 게 억울하다면 공공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는 척하면 돈을 받지 않으니 그 방법을 써보길. 입구를 지나 설산 정상부를 향하는 케이블카를 탔다. 가는 곳에 따라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최고 120위안(甘海子)에서 최하 40위안(云杉坪)까지 있다.

해발 5500m 고봉이 펼쳐진 설산의 정상부는 흰 빛의 얼음 및 눈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설산도 갈수록 높아지는 기온 때문에 그 아름다운 비늘이 차츰 벗겨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겨울이 지나는 2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는 6월 이전까지와 10월에서 11월 초까지다. 그때는 산에 눈도 성성하고, 비도 오지 않아 정상을 보기 좋다.

우리 일행은 윈산핑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탔다. 그런데 고산 기후답게 갑작스럽게 비가 온다.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삼나무 숲은 보였지만 뒤로 펼쳐진 설산의 장경이 보이지 않는다. 고산의 맑은 숲에는 우리 한우를 닮은 소들이 자유롭게 방목해 있다. 이곳의 육포는 최고급으로 대우받는다. 문제는 정상 근처에서 파는 육포조차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것 있을 뿐. 이곳에서는 천마(天麻), 삼칠(三七), 설차(雪茶), 동충하초 같은 고급 약재들이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바이사(白沙) 마을의 벽화를 본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벽화를 보고 나온 후문 쪽에는 <론리 플래닛>에 실려 잘 알려진 벽사 노인이 있다. 이곳 약재를 연구해 현대판 이시진(<본초강목>의 저자)으로 불리지만, 입구에서부터 붙여져 있는 신문기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덥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수허 위추안스의 문 창살.
ⓒ2004 조창완
우리는 한군데 더 수허(束河)에 들렀다. 한 중국 여행자의 여행기에 인상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허는 이번 여행에서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수허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도시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었다. 실크로드보다는 약간 늦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차마고도는 윈난성 남부에서 출발한 동서 교역의 중요한 길로 7세기 경에 개통되었는데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지세가 가장 높고 험준한 문명 전파의 옛 도로로 알려져 있다. 역참도로를 따라 마방(馬幇)이 끊임없이 만들어져 있고, 이 길로 티베트나 인도에 차, 설탕, 소금 등 생활 필수품을 운송했다. 보통의 운송 수단은 말과 소로 '차마고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리지앙은 물론이고 샹그릴라 곳곳에서 이 지명을 만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도시는 리지앙 인근 수허(束河)다. 수허에는 차마고도 역사 박물관이 있어, 차마고도에 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수허는 리지앙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져 있지 않으며, 해발 2440m 가량에 조성되어 있다.

수허는 일명 롱추안춘(龍泉村)으로 불리는데, 마을의 위쪽은 과거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빼어난 창살 문양을 가진 롱추안스(龍泉寺)가 있다. 곡식을 쌓아 두었던 장치나 가죽 가공 기술이 빼어난 점은 이곳이 차마고도의 중심임을 말해 준다. 수허는 새롭게 조성되는 구간보다는 과거의 향취가 묻어난 지역이 휠씬 보기 좋다. 입구에서 한참을 들어가 왼쪽으로 구 도시가 나타난다.

조금 올라가면 강가에 칭롱치아오(靑龍橋)가 있다. 이 다리는 차마고도상의 중요한 교통 중심이었다. 여기에서 산을 보면 산이 옛날 돈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마을 뒷산을 취보산(聚寶山)이라고 부른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산인 셈이다. 마을은 지진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등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투명한 물이 마을 전체를 흐른다. 이 물은 마을 위쪽 롱추안스 앞 구딩롱탄(九鼎龍潭)에서 나온 것이다. 이 물길의 주변에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들과 각종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는 차마고도 박물관이 있는데, 차마고도의 전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 옥룡설산을 뒤로한 여행 친구들.
ⓒ2004 조창완
일행은 다시 리지앙으로 돌아와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과거 작은 촌락에 지나지 않았을 이곳이 수년만에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가운데 하나로 변화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이것을 찾고 있다. 밤이 되면 리자앙 고성을 통과하는 위허의 맑은 물 위로는 각자의 소원을 비는 작은 종이배들이 촛불을 켜고, 유랑을 시작한다.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만큼 그들의 소원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 강에 띄워 보내지는 못했지만 내 소원도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 리지앙 고성의 옛 건물군
ⓒ2004 조창완

출처 : 자전거중국여행
글쓴이 : 운남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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