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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물의 도시

[스크랩] 샤오싱 루쉰고향과 시엔흥 반점

by 인천싸나이 2006. 3. 27.

 
 광주광저우민박 이우민박

비가 온다.인력거를 타고 빗속을 달려 함형(咸亨)주점에 갔다. 함형주점은 기와가 덮힌 고대광실같은 한옥집이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시간이어서 손님들이 꾀기 시작한다.손님들은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거무 튀튀한 간장같은 황주(黃酒)를 마시고 있다.
안주는 유작취(油炸臭)두부다.썩힌 두부를 기름에 튀긴 것이다.나도 손님들 틈에 끼어 황주 한잔에 유작취 두부를 시킨다.(*주:관리자=..두부찍어먹는 양념장이 죽여줘요..매콤하고 와사비맛이 좀 나기도 하고..난 그거만 먹었져..두부는 잘안먹고)

비가 오는 저녁에는 술맛이  난다.더구나 여기는 중국대륙의 한복판.삼국지  시절에는 월국(越國)의 도읍이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이 있다.누워서 쓸개를 훓는다는 말이다.월국의 왕 구천(勾踐)은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의 싸움에서 패하자 굴욕을  씹으며 누워서  쓸개를 맛보면서 복수를  불태웠다.결국 그는 복수에 성공했다. 바로 이 곳이 구천이 쓸개를 맛보왔다던 와신상담의 현장이다.
함형주점이 있는 샤오싱은 중국 남부 항쩌우에서 자동차를 내륙으로  달려 1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

 

함형주점과 소설가 루쉰

황주 한모금을 들이킨다.정말 묘한 맛이다.마치  쓴 간장을 들이키는 것같다.그러나 뒷맛은 은은한다.황주는 이 지방의 명물이다.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중국에서는  대표적인 술에 들어간다.눈보라가 날리는 추운 북쪽지방에선 독한  고량주를 마시지만,따뜻한 남쪽에선 돗수가 약한 이 황주를 마신다.

유작취 두부는 두부를 만들어 일주일쯤 발효시킨 후 그걸 기름에 튀긴 것이다.한입 베어 물으니 썩은 냄새가 역하다.그러나 입에 달라붙는 독특한 뒷맛이 있다. 황주와 썩힌 두부는 이 지방의 대표적인 명물이다.

한잔 마신후 내부의 정원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주점같다.2층 나무 난간에서 금방이라도 칼찬  무사가 뛰어내릴것만 같은 분위기이다.역시 중원(中原:양자강과 황하강의 사이의 땅으로  본래의 중국)에 오니 중국  전통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통의 고장이어선가.작고한 중국의 대정치가 주은래의 고향도 바로 여기다.
그러나 내가 우중에 굳이 이 술집을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바로 이곳은 중국의 대문호 루신의  고향이고,이 술집에서 불과 30미터 거리에 그의 생가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술집을 시작한 사람이 소설가 루신(노신)의 아내였기 때문이다.루신이라면 <아큐 정전>,<광인일기>,<공을기>로 유명한 바로 그 소설가이다.

<혹한을 무릅쓰고,2천여리를 거쳐 20여년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고향으로 나는 돌아왔다.  계절은 한겨울,고향에 가까워 옴에 따라  날씨도 흐리고 차디찬 바람이 선창에 불어와 우우하고 소리를 냈다.배 사이로  바라보면 회황색의 하늘 아래 여기저기에 외로운 듯이 마을들이 누워있고  아무런 활기도 없다.끊임없이 내 마음에 비애가 일어난다.>

루신은(1881-1936)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그렇게 썼다. 루쉰이 이 소설을 발표한 건 그의 나이 42세때였다.그에게 고향은 어두운 그림자. 몰락한 사대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센다이 의대를 다녔으나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중국의 병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귀국했다.그후 수많은 소설을 써서  20세기 중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그가 작고한 후 그의 가족들은 끼니를 잇기 어려웠다.


루쉰의 가족들

그 가족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술집,함형주점이다.
그 자세한 얘기를 이 술집의 지배인인 리링링(李瑛瑛)와 나누었다.리링링씨는 32살된 아리따운 남쪽의 미인.그의 말에 따르면 생계가 곤란해진 루쉰의 아내는 이 가게를 인수해서  지금처럼 황주와 유작취 두부를 안주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려했다.

그러나 생활은 쉽지 않았다.결국 가게는 3년만에 파산,루쉰의 아내와 남은 가족은 거지가 되다시피했다.그후 함형주점은 오랜동안 문을 닫았다.그리고 60년대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나고 나서  70년대초 다시 어느 사업가에 의해 문을 열었다.

지금의 함형주점은 하루에 7,800명의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루쉰의 이름 때문이다.이 집앞에는 루쉰의 단편소설인 <공을기>의  주인공 <공을기>의 동상이 서있다.루쉰은 살아 생전에 봉건제도가 농민들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가를 그렸다.또한 공을기처럼 봉건제도의  희생자이면서도 끝내 그걸 각성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간의 유형도 그려냈다.   

함형주점이 장사가 잘 되는 건 관광객들이 바로 그 루쉰의 소설을 보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루쉰과 그의 가족은 평생을 가난 속에 살다 죽었으나 사업가는 그 이름을 등에 업고 지금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리닝닝씨가 전해주는 루쉰의 가족사를 전해들으면서 나그네는 나도  모르게 황주를 한잔,두잔,석잔째 들이켰다.어느새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고 이제 취기가 오른 나그네는 술자리를 걷어야할 시간.

루신의 집앞을 지나 비가오는  샤오싱의 거리를 걸었다.운하와 운하,수로와  수로로 연결된 이 고풍스런 거리.운하 위에 걸린 무지개 다리 아래로 다니던 오봉선도 이미 모두 끊겼다.
비가 오는 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샤오싱국제대반점

이 동네에서는 제일 큰 호텔이다.옷에 묻은 빗물을 털며국제대반점 로비에 들어서자 으윽,오줌보가 당긴다.루쉰 때문에 마신 황주 석잔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화장실로 달려갔다.
4성급 호텔치고는 조촐 단아한 화장실.
그러나 한가지 특이한 것은 세면대 옆에 물에 적신  손타올을 착실하게 쌓아놓은 것이었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그 타올로 손을 닦았다. 중국 천지를 다니면서 물에  적신 손타올을 비치해놓은 곳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때 월나라의 수도여서인가.
샤오싱은 화장실에서 조차 세련된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출처 : 프로렌스 광저우 이우 민박
글쓴이 : 카라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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