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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물의 도시

[스크랩] 절강성 샤오싱 오진(烏鎭)-괜찮은 광저우와 이우민박


절강성 오진(烏鎭) 광주 광저우민박 이우민박

 

올해 80여세 고령인 공덕안(孔德安) 할아버지 내외는 줄곧 오진에서 살아오고 있는데 여전히 1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옛 가옥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사이 이들의 조용하던 생활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천년고성-오진이 강남 물고장의 독특한 정취로 갈수록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한 듯 공덕안 할아버지의 부인 오진(敖珍) 할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음향1, 오진 할머니 인터뷰 내용)

"우리는 관광객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관광객들을 보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관광객들은 늘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습니까?'라고 물어오는데 모두들 예의가 밝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벌써 오래전에 퇴직했고 둘 다 건강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공덕안 할아버지 일가는 지금4대가 모두 오진에서 살고 있는데 이들은 종래로 자기들 고향이 중국에서 이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습니다. 매일같이 수많은 관광객들이 고향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국내관광객 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까지 찾아옵니다. 그럼 오진은 과연 무엇이 유명할까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이 강남의 천년고성을 찾아가 봅니다.

오진은 중국 동부의 절강성 경내에 위치해 있는데 중국의 유명한 도시 상해, 항주, 소주와는 모두 승용차로 두 시간 거리를 사이 두고 있습니다. 중국 장강 이남의 대부분 물고장과 마찬가지로 오진도 시내 전역에 가로세로 수로가 얽혀 있습니다. 누각이나 목조건물들이 물을 따라 자태를 뽐내고 있고 작은 다리들이 푸른 물위에 모습을 비낀 가운데 나룻배로 쓰이는 오봉선(烏蓬船)이 강에서 여유를 부립니다.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 자그마한 역사도시는 한 폭의 수채화 마냥 특별한 운치는 물론 진실감과 생동감 마저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보다 자세하게 오진의 이모저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지 정부는 특별히 시내 안에서 6헥타르의 면적에 달하는 지역을 관광구로 개발했습니다. 예아모(倪阿毛) 선생은 오진에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직 사업일군입니다. 예아모 선생의 소개를 들어봅니다.(음향2, 예선생 인터뷰 내용)

"오진 관광구에는 전통 주민 거주구 까지 포함돼 있는데 원래의 낡고 파손된 거주환경 자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관광구내 물고장 풍토인정구는 전통 작업장과 전통 물고장 풍모를 일체화 시켰으며 전통문화구는 일부 전통문화를 발굴해서 공연 방식으로 관광객들에게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그외 전통 상업구와 전통 음식문화구도 있는데 음식문화구에서는 일부 지방 특색이 짙은 음식을 발굴해서 관광객들이 지방 별미를 맛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오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동대가(東大街)라고 불려지는 옛거리입니다. 청석판 노면을 따라 거리는 멀리 골목 깊숙한 곳 까지 어어지는데 양쪽 민가는 모두 한결같이 반은 지면에 지어졌고 반은 노면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수면위에 세워졌습니다. 당지 사람들을 이런 건물을 수중 정각이라는 뜻에서 수각(水閣)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가이드 고욱평(高昱萍) 여사는 이렇게 소개합니다.(음향3, 고욱평 인터뷰 내용)

"여기서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주민들이 보전해 내려오고 있는 주택 정원들입니다. 아직도 동대가에는 35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이 곳에서 강남 물고장 특유의 풍모와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연안 민가 등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남 물고장의 생활 분위기 마저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천천히 골목을 거닐다 보면 관광객들은 오진의 대분 골목이 우불구불하게 설계되여 있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골목 양쪽은 대부분 높게 쌓아올린 민가들의 정원 담벽인데 벽에 덩쿨이나 자등이 높게 자라고 있습니다. 간혹 담어 넘어 활짝 핀 꽃송이를 자랑하는 나무가지들도 눈에 띄입니다. 민가 정원에 들어서면 확트인 넓은 뜨락이 갑자기 각별한 공간적인 느낌을 선물합니다. 청석을 쌓아 올린 우물가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고 빗물에 씻겨 색이 바랜 창틀이지만 정교한 모습만은 여전합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마당과 뒤뜰안은 주인이 화분, 대나무나 파초를 키우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덕을 만들어 포도나무를 재배하기도 합니다. 포도나무 그늘 밑에서 차를 마시면서 바람을 쏘이는 낭만적인 기분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흠모의 대상입니다.

물과 인접해 있는 골목 한 쪽의 민가-수각은 오진을 기타 물고장과 확연하게 구분짓고 있습니다. 수각은 축조가 아주 실용적인데 나무말뚝이나 돌기둥을 강바닥에 깊이 박고 그 위에 통나무를 올린다음 판자널을 펴고 집을 지었습니다. 또 삼면에 창문이 나 있어 집안에서도 주변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진의 일체는 물과 관련되는데 수로는 오진의 "흩날리는 긴 머리결"로 불려지며 오진에 천년의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오진의 건물은 모두 물가에 건설되였되고 오진의 다리는 모두 물위에 놓였습니다. 오진의 사람들은 물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해 왔으며 오진은 또 수로를 통해 외부 세계와 연계를 가집니다. 오진에서 강기슭 연안은 다리가 있음으로 서로 거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다리는 또 도시에 아름다운 풍경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오진의 다리는 대부분 돌다리입니다. 햇빛에 반짝반짝 밝은 빛을 내는 교면 석판은 사람들에게 다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가이드 고욱평 여사는 오진의 다리는 "교통수단"일 뿐만 아니라 일부 민간의 풍습습관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음향4, 고욱평 인터뷰 내용)

"이 곳에서 사람들은 많은 부동한 형태의 다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평교, 아치교가 있고 낭교도 있습니다. 다리는 또 생활 속의 민속과도 깊은 연관을 가집니다. 음력으로 1월15일은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이 날에는 등불놀이 행사가 펼쳐지는데 사전에 행진 노선이 미리 정해집니다. 서로 겹쳐지는 노선이 없어야 하며 10개의 부동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래야만 1년을 순조롭게 무사이 지나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물고장에서 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구조물입니다. 오진의 한 700미터 구간의 강위에 무려 8개의 돌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축조 년대가 다른 관계로 이런 다리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건축양식과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마치 옛 교량 박물관에 들어선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교공 하나만을 가진 원형 아치교를 당지에서는 환동교(環洞橋)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반원형 교공을 가진 석교 다리목의 돌계단은 비교적 가파로운 편이였습니다.

각양각색의 다리들은 또 연안경치를 하나로 이어놓고 있었습니다. 이 쪽 기슭에 위치한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맞은편 연안에서 할아버지들이 즐겁게 한담하는 말소리가 귀전에 들려옵니다.

성보강(盛保江) 할아버지는 올해 90여세의 고령입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나면 그는 어김없이 강변 회랑에 모습을 드러내고 친구들과 한담을 벌입니다. 그는 자신은 오진에서 출생했으며 농사를 하다가 1949년 새중국이 성립되면서 부터 시작해 퇴직할 때까지 상업에 종사했다고 소개했습니다.(음향5, 성보강 할아버지 인터뷰 내용)

"평소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 곳을 찾아 한담을 합니다. 지금은 생활이 한가한 편이며 부담이 없고 입을 걱정 먹을 걱정을 않해도 됩니다. 오진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풍경을 감상하려고 이 곳을 찾습니다. 오진은 역사고성이며 옛모습 그대로의 강남 물고장입니다."

물고장 오진은 마치 천천히 펼쳐지는 한폭의 그림같은 존재입니다. 물안개 피여 오르는 깊은 곳에서 오봉선이 푸른 물결 출렁이며 마주 옵니다.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연안 민가의 모습이 사진사의 필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시야에 까지 담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오진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꿈속의 물고장입니다.

 



 
출처 : 프로렌스 광저우 이우 민박
글쓴이 : 카라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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