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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작지만 강한 대학]<9>네덜란드 틸뷔르흐大

[작지만 강한 대학]<9>네덜란드 틸뷔르흐大



도서관 자리마다 컴퓨터 틸뷔르흐대 도서관의 대부분 좌석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어 인터넷을 활용한 학습이 가능하다. 대학 곳곳에 조를 이뤄 공동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틸뷔르흐=허진석 기자
《“웬 자전거가 이리 많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반가량 달려가면 틸뷔르흐(Tilburg)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 도시의 중앙역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5분가량 전차를 타고 가면 틸뷔르흐대가 있다. 4월 중순 방문한 캠퍼스는 자전거 천지였다. 대부분의 학생이 숙소가 있는 도심까지 자전거로 통학한다. 유럽에서 경제·경영 교육으로 유명한 대학이라고 듣고 찾아왔지만 캠퍼스는 한국의 여느 지방대학보다도 작았다. 건물 7, 8개 동이 걸어서 5분 거리에 배치돼 있는 것이 전부. 자전거는 이 학교가 작지만 효율적인 캠퍼스를 보유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했다.》

학생 카페나 건물 현관 등 교내 곳곳에서 학생들은 컴퓨터로 공부하고 있었다. 캠퍼스 중앙에 있는 도서관에는 거의 모든 자리에 개인용 컴퓨터가 놓여 있을 정도. 법대 건물 현관과 도서관 등 교내 곳곳에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무선 인터넷이 깔려 있어 교내 어디서든 이용이 가능하다. 한정된 자원을 작은 캠퍼스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이 학교는 기회가 되면 규모를 늘리려고 하는 다른 대학과 달리 오히려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현재 1만2000명인데 너무 많아 1만 명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그래야 제한된 자원을 학생들에게 그나마 적절하게 투자할 수 있다.”(프랑크 다윈 스하우턴 총장)

이 학교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무명 학교였다. 1987년 네덜란드 정부의 대학평가 때는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 학교를 변화시키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 내 경제·경영분야 교육으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2003년 유럽경제학회가 발표한 경제·경영분야 순위에서 경제분야는 유럽에서 1위, 경영분야는 3위였다. 경제학 중에서 특히 계량경제학과 게임이론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명성 덕분에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의대를 세울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체 학생의 절반(6000명)이 재학하고 있는 경제·경영대학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캠퍼스를 늘릴 계획도 없다. 그럴 돈이 있으면 우수한 학생과 뛰어난 교수를 유치하는 데 투자를 한다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다.

이 대학이 유럽 내 최고 대학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교수의 질을 끌어올린 데 있다.

1980년대 말 당시 경제·경영대학장은 정부에 대학쇄신안을 제시하고 적지않은 지원금을 이끌어 냈다. 이 돈으로 당시 유럽 대학으로는 드물게 유능한 젊은 학자들이 몰리는 미국의 경제·경영학회를 찾아가 현지에서 교수를 뽑았다. 유능한 교수를 유인하기 위해 강의 부담은 다른 대학의 절반으로 줄였고 학술교류를 위해 유명 교수를 초빙하는 비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또 국립대다 보니 급여를 많이 주지는 못했지만 연구 활동만은 적극 뒷받침했다.

힘들게 뽑은 교수들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6년간의 임기만 보장했다. 6년이 오기 전 4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다시 엄격한 평가과정을 통과하도록 했다. 정년을 보장받는 비율은 40% 정도로 절반 이상이 떨어져나간다. 1990년대 이후 주요 경제·경영 관련 학회지에 틸뷔르흐대 교수들의 이름이 많이 오르내린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막 강의를 마치고 나온 에딘요 보스(20) 씨는 “최신 이론을 배운 젊고 유능한 교수와 자주 접촉할 수 있는 것이 우리 학교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전담부서를 통해 교수의 수업 내용이나 시험 방식을 평가하기도 한다.

틸뷔르흐대 중앙에 있는 도서관 건물 앞에는 학생들이 통학용으로 이용하는 자전거가 빼곡히 서 있다. 경제·경영대학이 유명한 이 학교는 1990년대부터 대학을 혁신해 10여 년 만에 유럽 최고 대학 중 한 곳으로 떠올랐다.
이 학교 경제·경영대학 복도에는 특이하게도 유명 인사나 교수들의 사진이 아닌 학생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학교가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생활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이 대학은 1학년 학생의 60% 정도만 2학년으로 진학시킨다. 네덜란드 교육체계 때문에 일단 지원한 학생을 모두 받아들인 뒤 학점을 제대로 취득하지 못하는 학생을 걸러내는 것이다. 졸업을 많이 시키면 재정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학교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부터 외국인 학생을 적극적으로 뽑기 시작한 것도 좋은 학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내국 학생은 선별해서 뽑을 수 없지만 외국인 학생은 골라서 뽑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비가 없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온 우수한 학생 중에서 좋은 학생을 고를 수 있었다. 전무하다시피 했던 외국인 학생은 이런 전략 덕택에 현재 전체 학생의 5%(600명)로 높아졌다. 한국인 학생은 교환학생 2명을 포함해 모두 5명.

산드라 링컨 외국학생처장은 “학습 동기가 높은 외국 학생들은 네덜란드 학생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이 학교는 예비박사과정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정식박사과정 학생에게는 월급까지 줘 가며 공부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철저한 검증을 하기 위해서다.

경제·경영대학에서 시작된 경쟁력은 다른 단과대학으로도 확산되는 중이다. 2002년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학교 법대를 유럽 법대 중 1위로 선정했다.

스카우턴 총장은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다른 대학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학생선발권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학년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1학년 학생 40%에 투입되는 학교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틸뷔르흐=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네덜란드 대학은 지금▼

네덜란드에서는 지금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골라서 뽑을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실제로 네덜란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학업 의지가 있는 학생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교육받을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대학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대학 진학을 위해 설립된 중등학교(우리의 고등학교)에서 기본 학력만 갖추면 된다. 유치원 2년을 포함해 8년인 초등과정을 마친 뒤 6년의 중등과정에 입학하면 된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직업이 학생인 사람이 많다. 늙다리 학생이 많을수록 정부의 재정 부담은 커진다. 네덜란드의 경우 대학생은 전차나 지하철, 기차 요금이 무료이고 부모와 떨어져 살 경우 매달 200유로씩 정부보조금도 받는다. 학부생은 1년에 1500유로(약 175만 원)의 학비를 내지만 매년 비슷한 규모의 장학금을 기본으로 받기 때문에 실제는 무료인 셈이다. 대학 구조가 이러다 보니 대학이 학생선발권을 달라고 요구해도 지지를 받기 어렵다. 유권자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학생 표를 깎아 먹는 정책을 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럽 국가에서도 더는 이렇게 대학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개혁을 미뤘다가는 국가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