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건물이 없어 뉴욕 시 전체를 캠퍼스로 사용한다는 쿠퍼유니언대. 그러나 4년 전액 장학금이라는 메리트로 입학은 어렵고 졸업은 더욱 어려운 명문대학이다. 건축학과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레오 소렐 |
학교엔 흔한 수영장도 없었다. 식당도 없고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유일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체육관도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근처 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써야 한다. 도서관도 자리가 부족해 학생들은 쿠퍼유니언대와 협약을 맺은 근처 뉴욕대나 파슨스 디자인학교의 도서관을 이용하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쿠퍼유니언대는 ‘기생(寄生) 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학교 측은 “뉴욕 시 전체를 캠퍼스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쿠퍼유니언대는 건축대 150명, 공대 500명, 미술대 250명 등 전교생이 90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마다 전 세계의 최우등생들이 지원한다. 지원자의 합격률은 하버드대 수준인 12%이다.
특히 매년 35명 안팎을 뽑는 건축대는 미국 최고의 수준으로 꼽힌다.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주요 대학 건축학과 교수의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이런 작은 학교에 최고의 인재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로니 데니스 부총장은 “다른 엘리트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4년 장학금 혜택을 재학생 전원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이 학교에는 학비가 없다. 1년 학비가 2만7000달러 정도니까 4년 기준으로 10만8000달러(약 1억 원)에 해당하는 많은 액수다.
고교 시절 내내 전교 1등이었다는 마이클 페트너크(화학공학과 4년) 씨는 “부모에게 학비 지원을 받기 힘들어 돈 없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찾다가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 자산은 다른 대학과는 달리 대부분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료 수입. 매년 3000만 달러에 가까운 전액 장학금도 이 수입에서 지급한다.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이라는 혜택을 주는 만큼 공부를 ‘지독하게’ 시킨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을 진짜로 좋아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학교”라고 말한다.
수업 규모는 20명 안팎이다. 이렇다 보니 강의의 깊이가 다르다. 교수가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으며, 학업 진행 상황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2001년 학교에서 멀지 않은 세계무역센터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 학교 건물의 5층 이상에 대해 대피명령이 내려지자 강의실을 4층으로 옮겨 강의를 계속한 한 교수의 이야기는 악착같이 공부를 시키는 이 학교의 새로운 전설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교수가 학생들을 일일이 돌봐 주는 것은 아니다. 뭔가를 하고 싶으면 프로젝트를 포함해 학생 자신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
또 미국 대학에 만연한 ‘학점 인플레이션’ 대신 ‘학점 디플레이션’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사 관리가 엄격하다. 입학생의 10%가량이 학사경고를 받고 중도에 탈락한다. 공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떠나는 학생도 있다. 지난해 가을 건축학과에 입학한 학생 중 2명은 1학기만 마치고 학업을 그만뒀다.
한 학생은 “입학한 뒤 첫 2년을 버텨 내면 신의 경지에 오른다”고 할 정도로 살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고 실토했다.
이렇다 보니 이곳 출신들은 주요 대학 대학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생으로 꼽힌다. 매년 졸업생의 40%가 미국 유명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해 학업을 계속한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1999년 이후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을 15명이나 배출했다. 동문 중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러셀 헐스,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으로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타워’를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이 있다. 뉴욕 지역 전력 및 가스 공급 회사인 콘 에디슨의 최고경영자 케빈 버크 등 경제계에 진출한 동문도 많다.
각 분야에 진출한 졸업생들은 ‘동문 펀드’라는 학교 기금에 거액을 기부한다. 자신이 대학에 다닐 때 받은 빚(전액 장학금)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 전액 장학금 제도는 9·11테러로 흔들리기도 했다.
맨해튼 한복판의 크라이슬러빌딩 등 학교 소유 건물의 임대료 수입이 9·11테러로 급감하면서 전액 장학금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 그러나 동문들과 재학생들은 “무상 교육이라는 설립자의 철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학교 측은 기존 대학 건물 일부를 상업용 건물로 재건축해 더 많은 임대 수입을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1억2000만 달러를 투입해 기존의 공대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性-인종-계층 차별없이 실력으로만 선발”
쿠퍼유니언을 설립한 피터 쿠퍼(1791∼1883)의 교육철학이다.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쿠퍼는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미국에서 증기기관차 엔진을 발명한 발명가이기도 했던 그는 공식 학교 교육을 1년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재산을 털어 당시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았던 블루칼라 계층 자녀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고 교육을 제공하는 획기적인 대학을 설립했다.
그는 또 인종, 종교, 성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세웠다.
학교가 설립된 1859년은 미국에 공립학교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쿠퍼의 대학 설립은 이후 철강왕인 앤드루 카네기 등 부자들이 잇달아 대학을 설립하는 도화선이 됐다.
이 학교는 전액 장학금을 주는 전통을 15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어 ‘등록금 수입’이 없다.
이 학교는 오직 능력(merit)으로만 학생을 뽑는다. 다른 대학처럼 동문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레거시(legacy) 제도도 없고 운동선수 특별전형도 없다.
학생의 국적이나 미국 시민권이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입학 당시 영주권자가 아니었다는 최종우(화공학과 4년) 씨는 “다른 대학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으면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며 “이 학교는 입학할 때 그런 문제를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이 학교에는 이민자 출신이 어느 대학보다도 많다. 설립 초기엔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가 많았다. 그러다가 유대계가 대거 입학했으며 지금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재미교포를 포함해 한국계도 상당수에 이른다. 학생의 출신 배경이 미국 이민사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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