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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건축]
피라미드
○ 모든 과학은 피라미드로 통한다

인류 최초의 건축 재료가 돌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주위에 흔한 것을 이용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적절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어진 것을 욕구에 맞게 쓸 줄 아는 존재이기에 건축과 토목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돌 가운데서도 거석을 이용한 거석 축조물은 권력을 상징한다. 오직 권력자만이 거석을 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석은 지극히 물질적인 것이지만 그것으로 만든 축조물은 희한하게도 추상성을 띤다. 대지를 딛고 우뚝 솟아있는 피라미드를 보면 고딕 첨탑에서처럼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염원을 느끼게 된다. 권력자는 자신이 하늘의 자식(天子)이며, 자신이 죽으면 하늘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거석 축조물 모두가 권력자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실로 수많은 학자, 군인이 피라미드에 다가가 신비한 축조물의 길이와 경사각, 내부의 중력 등을 측량했고 또 내부 구조를 샅샅이 살폈다. 그 결과 ‘피라미드학(Pyramidology)’이란 학문이 태어났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에 관한 지식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것도 아니고, 한두 사람이 연구하고 실측해 나온 결과도 아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현장이나 연구실에서 노력한 결과다.
○ 동서남북 4방향 정확히 가리켜
생소하게 들리는 피라미드학에는 천문학과 지리학, 측지학, 지질학, 수학, 기하학, 건축학,
토목공학, 점성학, 물리학, 도량형학, 유전학, 연대학, 원주율, 황금분할 등 온갖 과학과 기술이 포함된다. 심지어 현대의 미터(m)법도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길이를 구한 다음 그 1000만분의 1을 1미터로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가까스로 합의는 얻어냈으나 시행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75년에야 국제미터조약이 체결됐고 백금제 미터 원기(原器)는 1889년에 제작됐다. 그러나 미터법의 수리체계와 그 바탕이 되는 십진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따왔다.
근대 유럽이 계측 단위로, 또 셈법의 하나로 채택한 십진법은 고대 이집트인이 가졌던 지식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만큼 그들의 지식은 대단했다. 무한한 영생을 유한한 정밀함으로 표현하고자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카이로 교외의 황량한 기자(Giza) 대지 위에 서 있는 피라미드는 정사각형의 밑면에 네 개의 삼각형이 에워싼 사각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삼각형은 고대 이집트인에겐 우주질서를 상징했다. 그런 만큼 피라미드는 거대하다. 피라미드의 어원이 되는 ‘퓨라미스’(‘본받는다’는 뜻)는 고대 그리스인이 부르던 이름이고 정작 고대 이집트인은 ‘높은 곳’이란 의미로 ‘메르(mer)’라 불렀다.

이런 이유로 대니켄 같은 일부 학자는 외계인 축조설을 주장했다. 크레인과 드릴, 헬리콥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없던 시절이라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피라미드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란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몇 백 년 전부터 마스타바 분묘(탁자 모양의 무덤), 굴절식 피라미드(상부와 하부의 경사각이 서로 다른 것), 계단식 피라미드 등 단계적으로 발전해오다 기원전 2500년경 쿠푸 왕 때 지금의 대피라미드가 탄생됐다. 기자 대지에는 대피라미드 외에도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등이 남아 있지만 쿠푸 왕의 것이 가장 크다.
피라미드 작업에 동원된 천문학과 수학, 기하학, 토목공학 등은 물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매년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에 대비하여 토목과 관개기술을 숙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건 생존방안이었다. 예로부터 대피라미드는 홍수 등 지구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는 천체의 변동을 기록하기 위해 축조됐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파라오(이집트의 왕)는 그걸 위해서라도 권좌에 오르면 피라미드 축조부터 서둘렀다. 토목공사야말로 인간 지혜의 총화가 아니던가.
그들은 길이 단위인 큐빗의 사용에 앞서 저울을 만들어 신전에 바칠 봉납품의 무게를 달았고,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도 사용하고 있었다. 단위와 측량 면에선 그 어느 민족보다도 앞섰다.
○ 노동자 무덤들도 눈여겨 살펴야

이를 두고 피라미드 축조는 절대 강제노동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모두가 고루 잘 살기 위한 작업이었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설령 파라오의 개인 무덤을 축조하는 작업이었다 해도 그랬을 것이다. 파라오는 영생한다고 믿었으니 영혼은 육신의 죽음과는 관계없이 영원할 것이다. 그건 파라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기에 문명을 창조하고 또 기쁜 마음으로 이승에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큰 사람의 에너지를 어디서 달리 찾을 수 있겠는가. 기계적 정밀함까지 갖춘 피라미드는 그래서 탄생되었다.

피라미드를 방문할 때 잊지말아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피라미드만 보지 말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장제전(葬祭殿)과 하안(河岸)신전, 스핑크스, 복원시켜 놓은 ‘태양의 배’와 노동자의 무덤도 눈여겨 살펴야 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라미드 내부에까지 들어가(별도의 입장권이 필요하다) 대회랑과 텅 빈 석관만 남아있는 ‘왕의 방’, 그리고 그 방 상부에 양쪽으로 난 환기구멍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피라미드가 담고 있는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함께 볼 수 있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부동산은행>

출처 : 고양시[일산]부동산(오피스텔.원룸.상가)
글쓴이 : 일산 부동산은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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