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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건축]
콜로세움
○ 세계를 담은 ‘초대형 그릇’
이집트 콘크리트 개량해 건축 재료로 사용… 기술의 승리 상징하는 기념비적 축조물

원래 지상 4층 구조였으나 오랜 세월 3층 또는 2층으로 내려앉은 부분이 많지만 아치형 문틀, 문틀 양쪽에 세워진 원주, 층과 층 사이를 나누는 백색의 선은 아직 남아있어 여전히 볼 만하다. 장경(長徑) 188m, 단경 150m, 둘레 527m의 타원형 공간인 콜로세움의 명칭은 ‘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콜로수스’에서 유래됐다. 최대 5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니까, 전체 인구의 20분의 1이 동시에 이곳을 찾았다고 하니 당시의 로마 인구는 100만명 정도로 짐작된다.(전성기인 3세기엔 150만명)


원형투기장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느 문처럼 아치형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육중한 벽 사이를 뚫고 좌우 양쪽으로 통로가 나타난다. 통로 역시 아치형 구조다. 옛날에는 이 통로를 따라 입장객이 자기 좌석을 찾아갔다. 관중석의 위치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지금 타원형의 아레나(라틴어로 ‘모래’란 뜻이나 여기선 ‘무대’)는 앙상한 몰골만 드러내놓고 있다. 원래 마루였던 바닥은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지고 그 아래 맹수들을 가두었던 우리만이 그대로다. 관람석 또한 허물어진 채 붉은 벽면을 노출하고 있어 거칠고 투박하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2000년의 세월을 이기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콘크리트 구조물이란 사실이다.
○ 대리석·벽돌로는 못만들어

콘크리트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인이 피라미드를 축조하면서 돌과 돌 사이를 때우는 접착제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로마인은 이미 이집트를 다녀왔기에 그걸 자신의 눈으로 보고 익힌 바 있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건축기술의 보조적 지위에 머물던 콘크리트를 개량하여 이른바 ‘로마식 콘크리트’를 개발했고, 또 건축의 주재료로 격상시켰다. 콘크리트는 서기 72년에 시작된 콜로세움 공사에 대대적으로 사용돼 빛을 발했다. 콘크리트 시대는 그렇게 열렸던 것이다.

콘크리트란 특정 물질이 화학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나타내는 응집력을 이용한 기술이다. 로마는 카르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후로 대제국을 지향했다. 대제국은 그 속에 다양한 요소를 담아내야 한다. 로마는 먼저 아피아 가도라는 커다란 그물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로마식 콘크리트를 개발해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단단히 묶어냈다. 얼핏 보기엔 형이하학적인 작업 같으나 그들의 정신세계가 그렇지 못했다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길을 따라 로마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라면 그 원산지가 어딘지 따지지 않고 로마의 것으로 대우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콘크리트가 아닌 것이다.
○ 돈 없는 사람도 입장할 기회 마련
로마식 콘크리트의 최대 걸작품으로는 판테온이 꼽힌다. 볼트와 돔이라는 로마의 2대 건축기술을
이용하여 125년에 완공된 신전이다. 16개의 콘크리트 원기둥이 받혀주는 돔 지붕은 벽돌과 응회암, 경석(輕石), 콘크리트 등으로 축조됐다. 돔
안쪽은 반구형이라 하늘을 닮았는데 거기엔 별과 태양을 그려놓아 이곳이 세계의 중심임을 나타냈다. 로마인이 섬기는 신들이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면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내부로 들어간 입장객은 먼저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한 바닥과 벽에 걸린 그림, 통로나 회랑에 설치한 조각들을 감상한다. 그런 다음 순환입욕이라 부르는 코스에 따라 한 바퀴 도는데, 첫 코스는 현대식 ‘피트니스 센터’에 해당되는 체력단련실이다. 거기서 레슬링으로 땀을 흠뻑 빼고는 탈의실로 간다. 온욕실에서 몸을 담그고 사우나실을 거쳐 다시 온욕실로 갔다가 냉욕실에 들러 몸을 식힌다. 그 사이 도서실에 들러 책을 읽기도 하고 정원을 산보하기도 한다. 그것도 싫증나면 체스를 즐긴다. 부유층 인사들은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은 스낵바와 바, 레스토랑, 숍, 라운지, 타베르나(간이주점), 박물관, 극장 등을 다녔으며, 노래에 자신 있는 이는 노래를 불렀고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장사꾼들은 사람들 사이로 다니며 “소시지 있습니다” “맛있는 케이크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마지막으로 옥상의 풀장으로 가 수영을 즐겼다. 로마 시대 공중욕탕은 심신의 피로를 푸는 곳일 뿐 아니라 사교장 역할도 했다. 콘크리트 공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이런 대형 공적 공간이 과연 지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콘크리트의 위력이 크게 느껴진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부동산은행>

출처 : 고양시[일산]부동산(오피스텔.원룸.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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