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aly

[스크랩] [ITALIA(7)] 로마Roma I



 

이번 칼럼에선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영원한 도시로 불리며 고대엔 지중해 세계의 수도로서, 또 중세 이후엔 교황의 거처로 기독교 세계의 수도로서, 그리고 통일 이후 다시 이탈리아의 수도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온 이 유서 깊은 도시엔 그만큼 긴 역사와 볼거리들이 많은 관계로 4회 정도에 나누어서 살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로마의 라이벌 클럽들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할 텐데, 이번 경우처럼 한 도시에 두 개 이상의 팀이 있는 경우 창단 년도순으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CLUBS

 

SS Lazio(Societa Sportiva Lazio)

1900년에 창단된 라치오 팀은 원래 축구 클럽이 아닌 경보 클럽으로 시작했습니다(그래서 팀 이름도 원래는 Societa Podistica Lazio였습니다.). 뒤에 도시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다시 나오겠지만 라치오는 로마가 속해 있는 주의 이름입니다. 창설자인 루이지 비지아렐리Luigi  Bigiarelli는 4년 전 열렸던 초대 올림픽의 정신에 가명 받아 그리스 국기의 생각인 흰색-하늘색을 팀 저지 색으로 정하게 되죠(그래서 이 팀의 별칭은 비안코첼레스티BiancoCelesti, 또는 팀 문장의 독수리를 따서 아퀼로티Aquilotti라고 불립니다. 부연하자면 독수리는 로마 제국의 상징이었고 로마 군단도 자신들을 나타내는 데 독수리 군단기를 사용했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탈리아의 축구계는 토리노, 밀라노, 제노바 등을 연고로 하는 북부 팀들이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라치오 팀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36-37 시즌의 준우승 외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죠. 팀이 최초의 컵을 얻은 것은 57-58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60년대에는 세리에A와 B를 왔다갔다 하는 침체를 겪었습니다. 70년대 점차 팀 전력을 회복해가던 라치오는 73-74시즌 드디어 고대하던 첫 스쿠데토의 감격을 맛봅니다. 그러나 그 전 시즌 UEFA컵에서의 관중 소요로 인해 받은 징계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무산되고 말았죠.

이어진 80년대는 라치오의 우울한 시기로, 대부분의 기간을 세리에B에서 보내야 했고 C1으로의 추락을 가까스로 막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침체에서 벗어난 것은 92년 식품회사 치리오Cirio의 소유주인 세르지오 크라뇨티Sergio Cragnotti가 구단주에 취임하면서부터였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세리에A로 복귀한 라치오는 구단주의 적극적 투자로 베론, 크레스포, 살라스, 네드베드, 네스타 등이 활약하던 90년대 후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 기간 동안 이들은 97-98시즌 코파 이탈리아, 98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우승, 98-99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에 이어 99년 유러피언 수퍼컵, 99-2000시즌에 두번째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더블을 기록했고 2000년 역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도 차지해 팀이 보유한 우승컵의 대부분을 이 시기에 얻게 됩니다.

 

99년 유러피언 수퍼컵 우승 후의 모습

 

그러나 이러한 영광 뒤에 라치오를 찾아온 것은 재정난의 위기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탈리아 축구계를 괴롭혀 온 재정적 압박이 이 시기에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거금을 들인 선수 영입으로 많은 컵들을 얻었던 라치오는 이제 그 선수들을 팔아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죠.  결국 이런 재정적 문제로 팀의 중흥을 이끌었던 크라뇨티 구단주가 2003년 물러났고 돈이 될만한 선수들을 대부분 팔아 치운 라치오는 지난 시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했지만 이번 시즌엔 하위권에 쳐져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AS Roma(Associazione Sportiva Roma)

1927년에 창단된 로마는 북부 클럽들의 주도권에 맞서기 위해 창단된 클럽입니다. 우승 횟수는 많지 않지만 세리에B로 떨어진 적은 한 번 밖에 없을 정도로 안정된 전력을 자랑하며 남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클럽임에 틀림 없습니다.

붉은색과 노란색 저지를 입어 지알로로시GialloRossi, 팀 문장의 늑대 때문에 루피Lupi로 불리는데 아시다시피 이 늑대는 바로 로마의 전설적 건국자인 로물루스, 레무스 쌍둥이 형제에 젖을 먹여 키웠다는 바로 그 암늑대입니다.

로마는 먼저 창설된 라이벌 클럽 라치오보다 먼저 41-42시즌에 스쿠데토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2차대전으로 리그가 중단된 뒤 다시 복귀한 로마는 51-52시즌에 팀의 최초이자 유일한 세리에B 강등을 경험했습니다.

60-61시즌에는 UEFA컵 우승으로 이탈리아 클럽 중 최초로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팀이 되었습니다. 컵 대회에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인 이 팀은 이후에도 여러 번의 코파 이탈리아를 차지하지만 다시 스쿠데토를 달성한 것은 82-83시즌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로마는 이듬해 챔피언스 리그에서 리버풀과 결승까지 갔지만 승부차기에서 패배, 팀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엔 실패했습니다.

 


'00-'01 시즌 로마가 스쿠데토를 차지한 후. 기쁨에 넘친 로마 티포시가 거리를 온통 노랑 빨강 깃발 물결로 체우고 있습니다.

 

이후 로마가 다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99년 몬텔라Montella, 2000년 바티스투타Batistutta 영입에다가 프랜차이즈 스타인 토티Totti의 성장으로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로마는 2000-2001시즌에 스쿠데토를 차치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부채와 재정난의 한파는 이 팀 역시 비껴가지 못했고, 라치오 만큼의 전력 누출은 아니더라도 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팀의 저력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로마 더비의 격렬함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Stadio Olympico.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를 말하라면 아마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클래식 더비(El Classico)를 꼽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그만큼 유명하진 않더라도 격렬하기로 말하자면 로마 더비도 결코 빠지지 않죠. 북부의 유명한 더비인 밀란 더비가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는 것에 비하면 종종 폭력 사태까지도 부르는 이 로마 팀들간 경기의 열기는 아마도 남부인들의 뜨거운 기질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로마 올림픽 당시의 주경기장이었던 스타디오 올림피코Stadio Olimpico를 함께 쓰고 있는 두 팀은 지난 3월에 열린 경기에서도 관중 난동으로 경기가 중단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양 팀간 경기는 각각 쿠르바 노르드Curva Nord, 쿠르바 수드Curva Sud로 불리는 경기장 양 끝에 운집한 관중들의 기싸움으로 시작됩니다. 두 팀의 티포시Tifosi가 갖고 있는 치열한 라이벌 의식에도 불구하고 더비 전적은 로마가 많이 앞서 있습니다.


 


경기장의 양 끝, 둥근 부분을 각각 차지하고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라치오와 로마의 티포시.

 

한 도시를 연고로 하는 팀들의 이 과도한 경쟁의식은 사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죠. 생각컨대, 이것은 대략 이런 점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어차피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그 도시 팀을 좋아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인 반면,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멋진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이런 생각 말입니다.

 

ROMA

 


로마는 행정구역상으로 라치오Lazio주에 속해 있고 이탈리아 중남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상의 여행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최남단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실제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보통 피우미치노Fiumicino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을 통해 로마로부터 여행을 시작하게 되죠. 저 역시 그렇게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했구요. 사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일단 로마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하게 되지만 이 도시는 그런 흥분에 충분히 값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로마는 테베레 강(Fiume Tevere)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도시죠. 이 완만한 구릉 지형은 도시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곱 개의 언덕은 각각 팔라티노Palatino, 카피톨리노Capitolino, 퀴리날레Quirinale, 비미날레Viminale, 첼리오Celio, 아벤티노Aventino로 불립니다. 이 유서 깊은 도시의 기원은 전설과 신화의 안개 속에 묻혀 있습니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트로이의 장군이었던 아이네아스Aeneas가 정착해 만든 도시가 로마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의 후손인 레아 실비아Rhea Silvia가 전쟁 신인 마르스Mars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를 낳았고 버려진 이 쌍둥이를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는 전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쌍둥이 사이의 싸움에서 승리한 로물루스가 로마의 첫 왕이 되었고(BC 753년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로마는 300년간 왕정을 유지합니다. 내전에 의해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정, 제정을 거치면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으나 동서 제국으로의 분리와 서로마 제국 붕괴(476년)로 그 영광의 시대는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세기인 중세에 로마는 교황의 도시로서 다시 한 번 기독교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탈리아 통일 후에도 수도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도시인만큼 풍부한 유적을 자랑하는데,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유적들 또한 많다고 합니다. 멋진 광장과 거리로 가득한 이 도시에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맛볼 수 있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파게티 알라 카르보나라Spaghetti alla Carbonara는 바로 이 지역의 음식입니다. 카르보나라는 석탄을 뜻하는데 화이트 소스 위에 뿌려진 후추가 석탄가루처럼 보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또 로마의 트리토리아에서는 수플리Suppli라고 부르는 크로켓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쌀과 모짜렐라로 만드는 것으로 출출할 때 먹으면 그만이죠.

 

그럼 다음 편에선 본격적으로 로마 관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L'Archivio
글쓴이 : SooYou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