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동쪽 끝에 있는 페르 라 셰즈는 공동묘지 중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많아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프랑스인의 섬세한 정서를 가장 잘 읽고 있는 관광명소다.
도심을 지나는 파리 메트로(지하철) 3번선의 혼잡함은 페르 라 셰즈에 다다를 즈음이면 눈에 띄게 한산해져, 관광객으로 보이는 몇 사람들만 지도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참배객(?)과 공감대를 나눈다. 좁은 메트로역 계단을 올라가면 파리답지 않게 높은 벽이며, 유난히 커 보이는 꽃집들이 이곳이 어떤 장소임을 짐작케 한다.
지하철역은 페르 라 셰즈 측문 앞에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정문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측문이 있는 돌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계단 입구에는 차분하고 담백한 꽃들을 파는 가게와 묘지 안내지도를 파는 안내원이 있다. 페르 라 셰즈의 광대함(?)은 익히 들은 바 있고,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은 관광객의 입장인 탓에 망설임 없이 20프랑에 묘지 안내지도를 구입했다(안 샀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 지도를 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보았다. 쇼팽, 모딜리아니, 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그리고 페르 라 셰즈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그룹 ‘도어스’ 의 짐 모리슨. 우선은 그렇게 만날 사람들과 약속을 하고(물론 혼자 한 약속!)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가운 한낮의 햇살은 높게 뻗은 나무가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과 선선한 바람과 함께 묘지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향’ 냄새에 숙연해지던 나의 눈을 처음으로 사로잡은 것은 페르 라 세즈 안에 위치한 화장터의 높은 굴뚝과 납골당이었다. 마침 화장터에는 장례식이 있었다. 그런데 조문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선글라스, 밝은 색 양복, 세미 캐주얼의 편안한 복장,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 저런 복장이라면 결혼식에 가도 잘 어울릴 듯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도 모르겠다.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묘지는 어둡고, 무섭고, 경건해야만 하는 곳이 아니다. 화사한 꽃으로 장식하고 밝은 미소로 먼저 간 사람들을 추모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시내 중심가를 포함해 곳곳에 대규모 시므티에르(Cimetiere, 공동묘지)가 들어설 수 있었으리라.
- 화사한 꽃으로 장식된 유명인의 무덤 -
화장터 한편으로는 2층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납골당이 위치해 있다. 납골당은 흰색 벽으로 칸칸이 구분하고, 칸마다 화사한 꽃을 장식해 관광객의 마음까지도 가볍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납골당을 뒤로하고 첫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오스카 와일드는 참으로 화려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와일드는 여전히 많은 여성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동성연애자로 알려진 그에게 왜 이토록 많은 여성 팬들이 존재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의 특이한 묘비는 수많은 입술 자국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입술 주인공의 모습이 다르게 상상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데이트 피아프. 샹송계의 대모이자 전 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프는 가족들과 함께 휴식하고 있었다.
우리의 상상 속에 정형화된 파리는 세느 강의 유람선, 높다란 에펠 탑. 그것으로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피아프의 샹송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파리를 더욱 흥겹게,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 전세계인들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걸음을 옮기며 드라크루아, 쇼팽 등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 약속장소인 짐 모리슨의 묘로 향했다. 우리에게 영화로 더 잘 알려진, 그룹 ‘도어스’ 의 리드싱어 짐 모리슨.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묘비는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작고 검은 묘비, 그리고 그 앞의 작은 모래밭. 그 모래밭에는 꽃과 초와 사진과 그를 그린 그림이 가득했다. 묘지로 들어가는 좁은 길이 막힐 정도로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페르 라 셰즈에는 처음으로 경비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를 추모하는 히피 팬들의 사랑이 지나쳐 묘비나 기념물들을 떼어 가져가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했다.
짐 모리슨의 묘를 뒤로하며 60만 영혼이 깃든 페르 라 셰즈를 벗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납량특집의 단골 소재가 된 공동묘지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가꾼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에펠 탑, 개선문, 몽마르트 언덕처럼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페르 라 셰즈에는 차분하면서도 밝은 추모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파리를 ‘보고’ 싶은 분이라면 에펠 탑, 샹제리제 거리, 루브르 박물관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페르 라 셰즈를 꼭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개장시간 : 평일 오전 8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8시30분~오후 6시/ 일요일 오전 9시~오후 6시(단, 11월 6일~3월 15일은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찾아가는 : 길 메트로 31번, 2번선 페르 라 셰즈 역 하차.
출처 : 유로 스테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