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를 가다 1
와이탄에서 바라본 상하이 푸동 신시가지 전경. 중국은 뭐든지 가장 크지 않으면 안된다.
<상하이의 신천지, 신톈디 거리>
인천공항에서 동방항공을 타고 푸동공항에 내리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밤은 늦었고, 예약된 숙소로 가는 길은 멀었다.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롱양루역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숙소 인근인 상하이체육관역에 내려 걸어서 숙소로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럴 땐 눈 딱 감고 택시를 집어타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공항에서 잡아탄 택시기사는 ‘초짜’가 분명했다. 상하이 택시기사 치고는 너무 안전하게 시속 40km로 달리는데다 호텔 이름을 몇 번이나 되묻더니 결국 숙소 인근을 빙 둘러 배회하곤 호텔 앞에 이르렀다. 택시비 180위안. 셰셰. 고마울 것도 없었지만, 아는 중국말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신톈디의 한 노천카페. 대부분의 카페는 외국인에 의해 점령된다.
가뜩이나 나는 감기에 걸린데다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짐을 풀고 씻는둥 마는둥 하고는 맥주의 힘을 빌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게 쥐약이었을까. 이튿날 감기는 더욱 심해져 목에서 쉰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상하이의 둘째날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되었다. 상하이체육관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윽, 이건 숫제 사람들 사이에 끼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러시아워 때 서울의 지옥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행히 몇 정거장을 지나 황피난루역에서 내렸기에 망정이지 계속 갔다가는 짜부라진 샌드위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외국인이 주로 찾는 카페 거리 신톈디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 런민(인민)광장, 상하이박물관 등이 이 역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다. 상하이 구경의 기점이라고나 할까.
문이 닫혀 창을 통해 들여다본 카페 바의 속내. 여기서 필 받다.
이슬비인지 가랑비인지 모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신톈디 카페거리로 들어섰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멋진 노천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지만, 이른 아침인지라 거리는 한산했다. 우리말로 하면 ‘신천지’. 상하이 젊은이들에겐 이곳이 바로 신천지인 셈이어서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과 노천가페와 레스토랑과 화랑은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그래서 이 곳은 오후가 되면 늘 붐비는 거리로 변신하고, 목 좋은 자리는 일찌감치 점령된다. 카페는 상당수가 프랑스식 노천가페 모양(건물양식)을 하고 있으며, 다른 건물도 프랑스식 외관을 유지한 곳이 많다. 겉으로만 보면 놀자판 거리지만 최근 신톈디는 유흥과 여흥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거리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화려한 중국의 빛깔로 장식된 노천카페의 겉과 속.
젊음과 문화, 유흥의 거리인 이 곳은 중국인들에겐 특별한 ‘일대회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대회지는 1927년 7월 1일 제1차 중국공산당대회가 열렸던 장소를 일컫는데, 마오쩌둥이 이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인해 중국의 공산당원에게는 이 곳이 더없이 중요한 ‘공산당 성지’로 통한다. 중국의 단체여행객이 주로 찾아오는 곳이지만, 외국인들은 그저 보고도 지나쳐버리곤 한다. 그러나 일대회지를 끼고 도는 신톈디 골목은 한번쯤 요리조리 들어가 탐사(?)해볼 만하다. 특히 사진을 찍고 싶다면 기꺼이 그 속으로 들어가 볼 일이다. 은밀한 골목의 매력이 그 속에 있고, 정갈함과 운치가 그 속에 공존하므로.
하지만 신톈디의 술값이나 커피값은 결코 싸지 않은데다 때때로 나 같은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멍청한 외국인들은 바가지(계산서보다 몇 십 위안을 더 요구한다, 당신이 따지지 않는다면)를 쓸 수도 있다. 상하이의 신천지가 신톈디인 것처럼 중국의 신천지는 당연히 오래 전부터 동방의 파리로 불렸던 상하이다. 과거 중국의 수도 북경에도 없는 전기와 전화와 같은 문명의 혜택이 가장 먼저 퍼져나간 곳이 이곳이며,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북경보다 훨씬 중요한 경제거점도시이자 변화하는 중국의 상징도시가 상하이다.
중국 공산당 성지인 일대회지. 마오가 첫 회의에 참석한 곳이다.
해서 상하이는 푸동난루 강안과 런민광장 인근에 마치 SF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드높은 고층빌딩군을 지어놓았으며, 이러한 고층화는 상하이 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뭐든지 커야 한다는 중국인의 관념은 도시와 건물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 건물의 고층화와 더불어 상하이에 불어닥친 변화는 연애의 자유화이다. 상하이에서는 와이탄 강안과 런민광장, 예원 거리 어디를 가나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부둥켜안고, 무릎에 앉히고, 키스하는 연인들을 흔하게 볼 수가 있다. 근처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대부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제도, 도시도, 연애도 급격하게 국제화의 길로 가고 있는 곳이 상하이인 셈이다.
글/사진: 이용한
큰 자전거와 작은 오토바이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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