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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한강수색대’ 동행 취재

[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한강수색대’ 동행 취재



한강 시체 수색작업을 벌이는 구조대원의 장비는 가벼운것 같아도 30kg은 족히 된다.(위) 기자가 반포대교 아래 물 속으로 뛰어들기 직전 박병한 경장(왼쪽)에게 마지막 주의 사항을 듣고 있다. 아래 사진은 반포대교로 출동하면서 무선 교신을 하는 장면.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물 아래는 하데스의 세계. 수면을 경계로 생과 사가 갈린다.

눈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모랫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헤집는다. 세찬 물살을 이기기 위해 오리발을 젓지만 몸은 어느새 저만치 떠내려가 있다.

뭔가 묵직한 것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통나무다.

보이지 않으니 피할 방법도 없지만 머리에 맞았다면 성치 못했을 터이다.

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책임지는 한강순찰대. 투신자살이 급증한 요즘에는 주 업무 중의 하나가 시신을 찾기 위해 강바닥을 헤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동부경찰서 한강순찰대 뚝섬초소(초소장 박병한 경장)의 도움을 받아 강바닥에서 익사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그들의 눈으로 본 삶과 죽음의 이야기.

○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순찰대의 주요 업무는 수상 순찰, 신고 접수 및 구조 출동 등이지만 요즘같이 투신자살이 늘면 대부분 시신 인양에 투입된다.

운이 좋으면 투신 즉시 찾아내기도 하지만 길면 보름 이상씩 걸리는 인양 작업. 사람이 쇳덩이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못 찾을 수가 있을까.

“왜 그렇게 못 찾는데요?”

“한번 들어가 봐요.”

“네.”

용기는 좋지만 잠수복을 입고, 6kg에 이르는 추를 차고 20kg짜리 공기통을 메니 허리가 휘청거렸다. 혼자서는 일어서기도 힘들다.

‘이거 진짜 잠수만 되는 옷 아니야?’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듣고 연습을 한 후 반포대교 아래로 갔다. 사흘 전 모 만두업체 사장이 투신한 지점이었다. 이른 오전인데도 이미 여기저기서 경찰, 소방서 구조대와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다이빙을 하고 있다.

“야, 너 꼭 내려가야 해?”

사진기자 선배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걱정스레 묻는다. 나도 사실 걱정이 된다.

‘잠수했다가 못 올라오면 어떻게 하나…. 베테랑도 아차 하는 순간 간다는데…. 에라! 엎질러진 물이다.’

물속에 뛰어든 후 입고 있던 재킷(부력 조절기라고 부른다) 안에 든 공기를 서서히 빼내니 몸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물에 잠기자마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과 5m 수심인데 내 손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귀가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했다. 균형을 잡지 못해 물속에서 한 바퀴 구르자 위아래가 구별이 안 갔다. 그저 수경 위로 스쳐 올라가는 기포로 짐작할 뿐이다.

수색은 다리 주변을 일정 구간으로 나눈 뒤 한 구간씩 일일이 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진행된다.

말이 수색이지 ‘한강에서 바늘 찾기’다. 더욱이 물살에 밀려나가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쳐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도 만만치 않다. 한겨울에도 몇 분만 지나면 잠수복 안에 땀이 찰 정도라고 한다. 반포대교 아래는 교각이 많아 한강에서 가장 물살이 세다.

‘아차’ 하면 구조대원이 구조돼야 할 상황도 많다. 인근 공사장에서 떠내려 온 철근, 통나무 들이 수시로 빠르게 물속을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한 번 잠수해서 수색하는 시간은 40여분. 그동안 공기통 한 통이 다 소모된다. 하루에 두 번 하기가 힘들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세 번도 한다고 한다. 애타게 시신이라도 기다리는 유가족들의 심정을 알기 때문이다. 몇 분 안돼 올라왔는데 이날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리고 멍멍했다.

호흡을 평상시보다 몇 배는 빠르고 심하게 해서라는 것. 침착했던 것 같은데 느끼지는 못해도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무의식 중에 다이버를 그렇게 만든다고 한다.

○ 열길 물속은 알아도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지고, 남의 가슴에 못 박힌 것보다 자기 손톱에 가시 박힌 것이 더 아프다고는 해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다.

사체 인양 작업 현장에서 수상스키와 제트스키, 윈드서핑 등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 옆 둔치에는 만두업체 사장의 유가족들이 인양 작업 기간 내내 천막을 치고 밤낮을 보내고 있다. 그 사장의 어머니는 잠수교에 올라가 넋 놓고 흐느껴 울었다.

그런데 수상스키와 제트스키,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다. 웨이크보드를 즐기던 사람은 아예 괴성까지 지르며 점프에 회전을 해 댄다.

만두 속만큼 알 수 없는 것이 진짜 사람 속이다.

물놀이만이 아니다. 수색 기간 내내 새벽과 저녁에 잠수교 위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눈에 거슬린다.

“지금 꼭 저기서 해야 한대요?”

“잠수교 부근이 고기가 많이 잡힌다네요. 한강 중간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요.”

잠수교 위에서 하는 낚시는 구조대원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신고를 받고 전속력으로 출동하는 모터보트에서는 밤이든 낮이든 낚싯줄이 안 보이기 때문. 낚싯줄 아래로 지나가다가 자칫 걸리면 낚시꾼과 구조대원 둘 다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어이없지만 뭐 막을 방법도 없고….”

뚝섬 초소 박 경장은 오늘도 잠수교 아래를 4차례나 지나다녔다.

만두업체 사장의 시체는 다음날인 17일 새벽 발견됐다.

○ 왜 하필 다리일까

구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생명을 구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나중에 찾아오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는 만큼도 없다는 것. 되레 “왜 살려냈느냐”며 구조대원 뺨을 때리는 사람도 있단다.

뛰어내리는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랴마는 결과적으로 웃지 못할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번은 한겨울 밤에 한 여자가 온통 물에 젖어 오들오들 떨면서 초소로 들어오더라는 것. 죽으려고 뛰어들었는데 물이 너무 차서 못 견뎠다고 한다.

밤새 “추워 죽겠다”며 불을 피워달라는 그녀 때문에 갑자기 장작을 구하느라 밤새 돌아다녀야했다는 것.

출동해서 간신히 살려놓은 한 젊은 남자는 애써 깨워놓은 뒤 “젊은 사람이 왜 죽으려고 하느냐, 앞길이 구만리 아니냐”며 위로를 하는데 게슴츠레 눈을 뜨고 “저… 헛디뎠는데요”라고 말했단다.

왜 하필이면 다리일까.

사회복지법인 생명의 전화(02-763-9195) 하상훈 원장은 “자살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을 때 모습을 생각하는 본능이 있다”며 “다른 방법보다 비교적 덜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리 투신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신이나 음독, 목을 매는 것이 상당한 의지가 필요한 방법인데 반해 투신자살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비교적 힘들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 여기에 물이 주는 편안함, 어쩌면 살 수도 있다는 모순된 감정 등이 많이 교차해 그렇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명 인사들의 투신자살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무감각해져 버린 것도 원인 중의 하나다.

근본적으로 자살을 막을 방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선진국에서는 자살을 ‘공공의 정신건강 문제’로 분류하고 전략적인 대응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 원장은 말했다. 자살 실패자들은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라 이를 따로 국가가 관리한다는 것.

투신 직전까지도 자살자들 마음에는 ‘살고 싶다는 동기’와 ‘죽고 싶은 충동’이 공존한다고 한다. ‘살고 싶다는 동기’는 다시 말하면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사회. 그것이 조금이라도 자살을 줄이는, 정말 ‘살고 싶은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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