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미국의 수치.야만.실패>
(뉴올리언스=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우리는 미국을 초강대국이라
부른다. 세계 어떤 강대국도 미국에 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미국은 두드러진 강대국이다.
민주와 자유, 기회, 평등, 번영, 희생, 꿈, 도전... 미국에는 이 모든 좋은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미국이 이처럼 위대한 나라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기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카트리나 피해가 가장 심했던 뉴올리언스 동부 흑인 거주지역은 물만 빠졌을 뿐 1년 전 그대로다.
주인 잃은 집들은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부서지고, 쓰러진채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방치돼 있다.
달려드는 모기 떼를 무릅쓰고 자원봉사에 나선 학생들은 "미국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경악했다.
기자는 과거 중동특파원을 지내면서 터키 지진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분쟁,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촌 같은 곳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폐허처럼 방치된 뉴올리언스 동부 흑인 거주지역인 `나인스 워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스럽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던 터키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의 어떤 도시들 못지 않게 비참한 모습이다.
수 만 명이 숨진 터키 지진 때는 그래도 적신월사가 긴급 설치한 천막촌과 세계 각국에서 밀려든 구조대와 구호품, 의료진으로 이재민들이 질서있게 재해를 이겨가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1년이 지나도록 천막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탈레반 정권 붕괴 직후인 2001년 11월 카불과, 미군 공습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 2003년 4월 바그다드의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뉴올리언스는 어떤가. 카트리나가 지난지 1년이 지나도록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흑인 동네에는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다.
전기와 물도 없이, 쓰레기가 썩어가고 모기가 들끓는 동네에 사람들이 돌아와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정부는 카트리나 복구에 1천1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10조원 가까이를 퍼부었다고 자랑한다.
돈이 없어 복구를 못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처럼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1년전 폐허 그대로라니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복구가 안된건 주거지역 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터졌던 폰차트레인 호수의 둑에는 씨벌겋게 녹이 슨 쇠말뚝만 촘촘히 박혀 있을 뿐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공사 책임자인 육군공병대장은 또다시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이 온다면 둑이 터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시인했다.
한국 같으면 어땠을까? 어느 둑이 터져 수 만 가구가 물에 잠기는 참사가 난뒤 1년이 지나도록 제방복구가 제대로 안됐다면 국민들이 용납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많은 돈을 쏟아붓고서 말이다.
복구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들도 부패한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다.
한국 교민 권오수씨는 카트리나 때 세탁소가 물에 잠겨 사업 기반을 몽땅 잃었다. 홍수보험이 없어 보상 한 푼 못받은 권씨는 건축업으로 임시 전업했다. 폭풍에 벗겨져나간 지붕 고치는 공사를 열심히 했지만 공사를 맡긴 미국인 업자는 공사대금 4만3천달러를 떼먹고 달아났다. 카트리나 이재민을 도와주기는 커녕 눈물겨운 재기노력을 짓밟는 악덕 미국인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비영리단체의 다른 조사 결과를 보자.
이 연방 정부는 뉴올리언스의 쓰레기 치우는 사업을 야드 당 23달러씩 총 5억달러에 발주했다. 공사를 맡은 업체는 이를 야드당 9달러씩에 하청을 주고, 1차 하청업체는 이를 8달러씩에 또 공사를 넘기고... 최종 하청업자는 야드당 3달러씩을 받고 공사를 맡았다.
연방 정부가 지출한 예산은 5억달러지만 실제로 집행된 돈은 수 천 만 달러에 불과한 정말 후진국 같은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는게 이 단체의 분석이다.
빠듯한 예산에 공사를 맡은 최종 하청업체들은 남미계 불법이민자들에게 최저 임금도 안되는 인건비를 주고 노동착취를 하거나, 불법체류자 단속반에게 슬그머니 신고를 해 아예 임금을 떼먹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행정 당국의 무사안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카트리나 때 가게가 완파된 교민 김격씨는 미 중소기업청에 사업자금을 신청했지만 반 년이 다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저 기다리라고만 한다. 기다리다가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는게 김씨의 탄식이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건 미국 언론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진실 보도의 표상으로 칭송받는 미국 언론도 뉴올리언스의 저 참혹한 모습을 제대로 비추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미국 정부의 복구 노력을 강조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거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 민주 양당이 벌이는 `카트리나 정치화 논쟁' 정도로 치부하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수 십 만 명의 이재민이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난민 신세로 떠돌고 있는 현실조차 중간선거의 변수로 저울질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며칠 전에는 이런 일까지 있었다. 한 카트리나 피해자가 백악관에 초청돼 부시 대통령의 복구의지를 찬양하며 "그가 3선됐으면 좋겠다"고 치켜세운 것이다. 민주당측이 '언론 플레이'로 지적한 이 백악관 기자회견 장면은 미국 유력 언론들에 며칠 째 보도되고 있다.
만일 미국의 백인 거주지역에서 이런 참사가 났다면 정부나 언론이 지금처럼 대처했을까. 수 십 만 명의 백인들이 집을 잃은 채 1년째 방황하고 있다면, 지금처럼 별일 아닌 양 할 수 있을까.
이건 기자의 질문이 아니라 흑인인 레이 내이긴 뉴올리언스 시장의 공개적인 발언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의 인종.계층갈등 같은 치부를 드러냈다. 카트리나가 오렌지 카운티나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에서 일어났다면 지금처럼 대응했겠느냐"는게 내이긴 시장의 항변이다.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 1주년을 맞아 28일 뉴올리언스를 방문했다. 앞서 미시시피주 빌록시에 들른 그는 예상대로 연방 정부의 복구노력을 길게 설명하며 `재건' 의지를 거듭 밝혔다. 방송들은 부시 대통령의 재해지역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미국 TV들이 뉴스를 전하는 배경은 `나인스 워드'의 폐허가 아니라 활기를 찾아가는 프렌치 쿼터의 모습이다.
lkc@yna.co.kr
(끝)
민주와 자유, 기회, 평등, 번영, 희생, 꿈, 도전... 미국에는 이 모든 좋은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미국이 이처럼 위대한 나라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기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카트리나 피해가 가장 심했던 뉴올리언스 동부 흑인 거주지역은 물만 빠졌을 뿐 1년 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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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집들은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부서지고, 쓰러진채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방치돼 있다.
달려드는 모기 떼를 무릅쓰고 자원봉사에 나선 학생들은 "미국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경악했다.
기자는 과거 중동특파원을 지내면서 터키 지진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분쟁,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촌 같은 곳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폐허처럼 방치된 뉴올리언스 동부 흑인 거주지역인 `나인스 워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스럽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던 터키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의 어떤 도시들 못지 않게 비참한 모습이다.
수 만 명이 숨진 터키 지진 때는 그래도 적신월사가 긴급 설치한 천막촌과 세계 각국에서 밀려든 구조대와 구호품, 의료진으로 이재민들이 질서있게 재해를 이겨가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1년이 지나도록 천막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탈레반 정권 붕괴 직후인 2001년 11월 카불과, 미군 공습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 2003년 4월 바그다드의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뉴올리언스는 어떤가. 카트리나가 지난지 1년이 지나도록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흑인 동네에는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다.
전기와 물도 없이, 쓰레기가 썩어가고 모기가 들끓는 동네에 사람들이 돌아와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정부는 카트리나 복구에 1천1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10조원 가까이를 퍼부었다고 자랑한다.
돈이 없어 복구를 못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처럼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1년전 폐허 그대로라니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복구가 안된건 주거지역 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터졌던 폰차트레인 호수의 둑에는 씨벌겋게 녹이 슨 쇠말뚝만 촘촘히 박혀 있을 뿐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공사 책임자인 육군공병대장은 또다시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이 온다면 둑이 터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시인했다.
한국 같으면 어땠을까? 어느 둑이 터져 수 만 가구가 물에 잠기는 참사가 난뒤 1년이 지나도록 제방복구가 제대로 안됐다면 국민들이 용납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많은 돈을 쏟아붓고서 말이다.
복구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들도 부패한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다.
한국 교민 권오수씨는 카트리나 때 세탁소가 물에 잠겨 사업 기반을 몽땅 잃었다. 홍수보험이 없어 보상 한 푼 못받은 권씨는 건축업으로 임시 전업했다. 폭풍에 벗겨져나간 지붕 고치는 공사를 열심히 했지만 공사를 맡긴 미국인 업자는 공사대금 4만3천달러를 떼먹고 달아났다. 카트리나 이재민을 도와주기는 커녕 눈물겨운 재기노력을 짓밟는 악덕 미국인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비영리단체의 다른 조사 결과를 보자.
이 연방 정부는 뉴올리언스의 쓰레기 치우는 사업을 야드 당 23달러씩 총 5억달러에 발주했다. 공사를 맡은 업체는 이를 야드당 9달러씩에 하청을 주고, 1차 하청업체는 이를 8달러씩에 또 공사를 넘기고... 최종 하청업자는 야드당 3달러씩을 받고 공사를 맡았다.
연방 정부가 지출한 예산은 5억달러지만 실제로 집행된 돈은 수 천 만 달러에 불과한 정말 후진국 같은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는게 이 단체의 분석이다.
빠듯한 예산에 공사를 맡은 최종 하청업체들은 남미계 불법이민자들에게 최저 임금도 안되는 인건비를 주고 노동착취를 하거나, 불법체류자 단속반에게 슬그머니 신고를 해 아예 임금을 떼먹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행정 당국의 무사안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카트리나 때 가게가 완파된 교민 김격씨는 미 중소기업청에 사업자금을 신청했지만 반 년이 다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저 기다리라고만 한다. 기다리다가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는게 김씨의 탄식이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건 미국 언론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진실 보도의 표상으로 칭송받는 미국 언론도 뉴올리언스의 저 참혹한 모습을 제대로 비추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미국 정부의 복구 노력을 강조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거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 민주 양당이 벌이는 `카트리나 정치화 논쟁' 정도로 치부하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수 십 만 명의 이재민이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난민 신세로 떠돌고 있는 현실조차 중간선거의 변수로 저울질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며칠 전에는 이런 일까지 있었다. 한 카트리나 피해자가 백악관에 초청돼 부시 대통령의 복구의지를 찬양하며 "그가 3선됐으면 좋겠다"고 치켜세운 것이다. 민주당측이 '언론 플레이'로 지적한 이 백악관 기자회견 장면은 미국 유력 언론들에 며칠 째 보도되고 있다.
만일 미국의 백인 거주지역에서 이런 참사가 났다면 정부나 언론이 지금처럼 대처했을까. 수 십 만 명의 백인들이 집을 잃은 채 1년째 방황하고 있다면, 지금처럼 별일 아닌 양 할 수 있을까.
이건 기자의 질문이 아니라 흑인인 레이 내이긴 뉴올리언스 시장의 공개적인 발언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의 인종.계층갈등 같은 치부를 드러냈다. 카트리나가 오렌지 카운티나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에서 일어났다면 지금처럼 대응했겠느냐"는게 내이긴 시장의 항변이다.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 1주년을 맞아 28일 뉴올리언스를 방문했다. 앞서 미시시피주 빌록시에 들른 그는 예상대로 연방 정부의 복구노력을 길게 설명하며 `재건' 의지를 거듭 밝혔다. 방송들은 부시 대통령의 재해지역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미국 TV들이 뉴스를 전하는 배경은 `나인스 워드'의 폐허가 아니라 활기를 찾아가는 프렌치 쿼터의 모습이다.
lk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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