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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
산동[산둥성(山東省)] - 제남(濟南) |
♧ 주소 |
山東省
濟南市 省府前街 1號 |
♧ 전화 |
0531-6912828 |
♧ 홈페이지 |
http://www.beijing.gov.cn |
♧ 설명 |
산둥성(山東省)은 중국 동부 연해, 황하(黃河)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반도와 내륙 두 부분이
포함된다. 산둥(山東) 반도는 보하이(渤海)와 황해 사이에 돌출되어 있으며, 랴오둥반도(遼東半島)와 대치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내륙은
부분적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허베이(河北),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쟝쑤(江蘇) 등 4개의 성과 인접해있다. 남북 최장거리는 420여
km, 동서 너비는 700여 km, 총 면적은 15.67만km2이다. |
♧ 위치 |
발해(渤海)와 황해(黃海)의 끝에 자리잡고 있다. 동경114.36-112.43,
북위34.25-38.23도에 위치한다. 면적은 153,000 평방 킬로미터이며, 평원이 55%이다. 년평균기온은
10.5-13.5도이다. |
♧ 행정 |
전체성은
12개의 큰 시, 5개의 구, 28개의 작은 시, 70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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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성(山東省) 산동성은 한반도와 인연이 많은 곳으로 현재 한국에 들어온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성 사람이며
한국인들이 먹는 중국음식 가운데도 산동 음식이 많다. 또한 태산은 한국인들이 시조를 통해 접했던 지역으로 한번쯤은 구경할 만한 곳이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청도 맥주를 원산지에서 맛볼 수 있다. 지리적 위치는 황하 하류를 중심으로 동쪽은 바다로서 한반도 서해안을 마주보고
있으며, 서쪽은 내륙지방과 맞닿아 있어 반도와 내륙이 반반씩 자리잡고 있고, 동쪽의 반도부분은 황해와 발해 만 사이에 돌출된 형상이다. 총
면적은 약 15.67만2km로서 중국 체 면적의 1.6%를 점하고 있으며, 남한의 대략 1.5배에 달한다. 지형은 복잡한 편이며, 산지와 구릉은
해발 200~300m로 대체로 낮은 편이나, 1,000m 이상의 산도 있으며 , 그 중 유명한 태산은 1,545m이다. 산동성은 하천과 호수가
많은 지역으로 길이가 100km 이상인 강이 18개로서 내륙 운수가 발달되어 있다. 토지구성은 평지 면적이 55%, 산지 20%, 구릉 15%,
습지 10%로 농업이 발달되어 전 성인인구의 8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산동성의 기후는 난온대 계절풍 기후에 속하며 사계절이 분명하다.
봄은
건조한 편이며 바람이 심하고 여름에는 고온 다습하고 가을에는 맑은 날이 많은 편이며 겨울에는 한냉 건조하여 한국과 비슷한 기후이다. 연평균
기온은 11~14도, 강우량은 330~950mm 이다. 산동성 성도인 제남은 연평균 기온 14.8도, 강우량 550.5mm, 일조시간 2,527
시간이다. 산동음식 산동요리의 시발점은 춘추전국시대이며 남북조에와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元, 明, 淸 삼대 왕조를 거치는 동안 군중에 의해 인정
받아 한 유파를 이루기에 이른다. 가축, 해산물, 야채등의 재료로 폭(爆: 끓는 물, 기름에 살짝 데치다), 류(뜨거운 용기에 기름을 붓고,
기름이 뜨거워 졌을 때 재료를 넗고 볶은 다음 전분소스를 붓고 계속 저으면서 볶는 것을 말함), 배(약한불로 오래도록 푹 삶다), 고(불에
굽다), 과(鍋:누룽지), 발사(拔絲:마, 연뿌리, 사과 등에 뜨거운 엿, 설탕을 묻혀 만든 요리), 밀즙(蜜汁: 꿀을 발라 만드는 요리)등의
조리방법을 즐겨 사용하며, 주로 간장, 파, 마늘 등의 재료를 넣어 양념을 하고, 맑은 국이나 포타즈(우유를 넣고 만든 스프의 일종)를
사용하므로 맛이 아주 뛰어나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배원각포오, 총소해삼(蔥燒海蔘), 내탕포채, 길상건패(吉祥乾貝) 밀즙이구(蜜汁梨球),
청탕류엽연채(淸湯柳葉燕菜) 초두부뇌(炒豆腐腦), 해미진주순, 민대하 등이 있으며, 모양이 자유롭고, 우아하며, 응용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 |
제남 |
≪ 제남(濟南,
JINAN) 산동성 성도. 중국의 역사문화도시로 황하문명발상지의 하나이다.
춘추시대부터 진, 송, 명, 청을
지낸 2600년의 역사문화도시로, 산동의 성도다. 제남은 대륙성기후에 속해 연평균 기온이 14도로 따뜻하고, 여름에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무덥다. 5월만 되어도 땀이 흐를정도의 더위가 시작된다. 약 154만의 인구가 있으며, 시내외에 많은 명성고적이 있다. 또 제남은 물이 풍부한
도시로 알려져 시내에서는 샘물이나 호수가 볼거리 중의 하나다. 주변의 태산과 곡부등의 작은도시로의 교통도 편리해 제남을 구경하고 쉽게 주변의
관광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 | |
≪ 천불산(千佛山,
치엔포샨) 순경산(舜耕山)이라고도 불리는 제남시 외곽에 위치한 불산이다.
흥국선사(興國禪寺)가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교사원인 흥국선사 내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 관음당(觀音堂), 대화정(對華亭),
미륵전(彌勒殿) 등이 자리하고 있다. 흥국선사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수(隋)나라의 10개 불상이 보존되어 있는 천불애(千佛崖)가 있고, 천불애의
동향으로 용천동(龍泉洞), 극락동(極樂洞), 여조동(呂祖洞) 등의 명승지가 있다. 또 흥국선사의 동쪽에 자리한 역산원(歷山園)은 유가사상과
도교사상, 불교사상 등 3개 종교가 합쳐져 있는 일대의 잡원(雜園)으로 원내에 순사(舜祠), 노반사(魯班祠), 문창각(文昌閣), 일람정(一覽亭)
등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어서 북위(北魏), 당(唐), 송(宋) 대의 조형풍미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산은 역사가 오래됨을 증명하듯
곳곳이 세월의 풍파로 파손되어 있는데, 특히 석굴(石窟)은 그 파손정도가 가장 심한 편이다. 최근에 부분적으로 복구를 하고 있는 중이며, 아울러
춘불산공원을 조성해 시민의 휴식공간과 유람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고 있다. 천불산은 또 황하가 주변을 허리띠처럼 감싸고 있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 |
≪ 공묘(孔廟:궁미아오) 북경의 고궁, 대만의 대묘(垈廟)와 더불어 중국 3대건축이라 불리는 공묘는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 사후 1년에 건설한 사당이다. 춘추시대의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를 제사지내는 곳인 이곳은
처음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의하던 행단에 대성전(大成殿)을 세운것으로 시작해 그후 역대의 황제가 기부나 희사를 계속하여 현재의 규모는 명청대에
완성된 것이다. 중국 각지에는 크고 작은 여러개의 공묘가 있지만 이곳 곡부의 공묘는 공자의 고향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제일 큰 것으로 전체의
길이가 약 1㎞ 남짓하며, 면적은 약 22만㎡로서 전체 건물의 방의 개수가 466개에 이른다.
대성문을 기준으로
동, 서, 중삼로로 나뉘며 공묘의 사방에는 붉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공묘의 제일 처음에 보이는 금성옥진(金聲玉振)은 명대 건축물로 사근팔각의
연화모양의 정상에는 길함을 상징하는 동물이 새겨져 있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大成殿)은 북경 고궁의 태화전에 이은 제 2의 대건축으로 높이
24.8m, 폭 45.7m, 길이가 24.9m이다. 전내 중앙의 금박 입힌 신주를 모시는 곳에는 공자의 소상(塑像)이 안치되어 있고 양 옆에는
제자와 후대의 유가 16체의 소상이 있다. 또 28개의 돌기둥 가운데 정면의 10개 기둥에는 기둥을 휘감은 듯한 2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성전의 바로 뒤에 있는 침전(寢殿)은 공자의 부인인 올관씨(兀官氏)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북송 때 창건한 것이며 청대에 개축한 것이다.
침전의 바로 뒤에는 공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적전(聖迹殿)이 세워져 있는데, 이 안에는 공자일생을 소개하는 석각화 120장과 공자화상이
모여있으며, 그 중의 하나인 '공자행교상'은 진대의 화가인 고개자(顧愾子)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 |
≪ 표돌천 시내 중심에 있는 이곳은 제남에 있는 72개의 샘 중 으뜸으로 춘추전국시대에는 녹수라고 이름하여
옛날부터 천하 제일의 샘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이곳의 물은 18도를 유지하며 깨끗하고 맛이 달기로 유명한데, 송나라 때 세워진 녹원당의 남쪽에
있는 것은 지금도 매초 1870ℓ의 샘물이 솟아나온다. 청대의 건륭황제가 강남으로 왔을때도 이곳의 물을 즐겼다고 한다. 물이 달아 이곳의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 더할나위없이 좋은데, 공원 주변의 찻집에서 여유롭게 그 맛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표돌천을 중심으로 동전의 잠부로
점을 치기도 하는 수옥천과 마포천 등 16개의 샘과 명·청 때의 고건축, 화랑 등이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공원의 모습과 맑고
깨끗한 샘물이 넓은 대명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편한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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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孔府) 공묘의 오른편에 위치한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장원으로 1038년에 세워졌다.
공부는 또 연성공부(衍聖孔府)라고도 불리며, 현재의 모습은 명,청 양대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이곳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며
서로(西路)에는 객실, 동로(東路)에는 공씨가문의 묘지가 있고, 중로(中路)에는 전반부의 관공서와 후반부의 주택과 화원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면적은 16만㎡에 이르며 방은 463개나 될 정도로 광대하고 화려한 장원으로 당시 공씨 가문의 권력과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공부의 관아(官衙)는 삼당(대당, 이당, 삼당)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연성공이 공무를 집행했던 관서로 육정은 연성공부의 집실기구다.
대당은 중앙의
난각안에 있는데, 연성공이 중요한 의식을 행하거나 정부의 관리들을 맞던 곳이다. 이당은 5개의 방으로 되어있고, 공문을 받고 발송하거나 연성공을
거들던 관원의 집무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삼당은 이당의 뒤에 있는데 가족내부의 일들을 처리하던 곳으로 동쪽의 방은 손님을 접대하던 객실로
청대말기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내택문(內宅門)은 공부의 앞뒤를 나누는 경계선으로 연성공이 놀던 내택과 관아를 구분짓는 금문(禁門)이기도 하다.
내택문내에는 영벽(影壁)과 가족의 윗어른 및 처녀들이 살던 전당루, 후당루, 내택의 뒤에 있으면서 '철산원(鐵山園)'이라고도 불리는 수화원이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을 통해 관람할 수 있으며, 제일 안쪽의 정원에는 공자가문을 소개한 자료관이
마련되어
있다. | |
≪ 대명호(大明湖) 제남 구성(久城)의 북쪽에 넓게 펼쳐져 있는 대명호는 시내의 많은 샘물들이 흘러와 형성된
호수인데, 주변에 공원을 형성해 시민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호수의 깊이는 약 5~6미터인데, 전설에 따르면 고대 대명사라는 절의 화상이
여자를 겁탈하자 갑자기 천지가 진동을 하면서 땅이 갈라지고 대명사가 가라앉았는데, 그 자리에 물이 채워져 호수가 됬다는 것이다. 주위 약 5㎞의
호수에서는 뱃놀이도 가능하고 호반에는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같은 시인이 술 을 나누며 시를 읊었다고 하는 역하정(歷下亭)과
북급각(北扱閣)이 있고, 구곡정과 창랑정 등도 만들어져 있다. 북급각은 대명호의 호반에 있는데, 원대에 창건된것으로 도교사원이다. 각내에는
현무신상과 천병천장이 있고, 현재 그곳에서 출토된 문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 밖에도 청나라의 한 시인이 '사면의 연꽃에 삼면의 버들이요,
한성의 산색에 반성의 호수로다' 라고 묘사했으며, 마르코폴로는 '원림 아름다움에 마음 즐겁고 산과 호수의 경치에 눈 쉴 여유 없다' 고 극찬한
철공사, 대명호남문의 가원, 팔각의 건축물인 호심도 등의 건축물과 볼거리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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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림(孔林, 콩린) 곡부의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공자와 그 자손들이 묻힌 묘소다. 이 곳의
묘가 약 2만기, 담장둘레만 7.25km로 세계최대의 씨족묘지이라 할 수 있다. 곡부시의 북쪽을 따라 1km 정도 숲길을 지나면
'지성림(至聖林)'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림의 대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공림이 시작되는데, 공림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묘비의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림의 정문인 지성림방(至聖林坊)이 있고 여기서부터 이림문(二林門)까지 떡갈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다시 이림문에서
왼족으로 가면 수수교가 있고 이 다리의 북쪽, 숲 가운데로 들어가면 공자축제시에 향단을 설치하는 곳인 향전(享殿)이 있다. 이곳은 또 해방전쟁
당시, 중국의 군사지도자였던 주덕(朱德) 총사령관이 중요한 군사회의를 연 곳이기도 하다. 공자의 분묘는 향전 뒷쪽에 있는데
'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고 씌어져 있다. 명성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고, 돌보지 않은 듯 풀이 우거져 있으며 무덤 가운데
거목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묘를 돌보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대 사상가인 공자의 무덤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신념때문이다. 또 공자의 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 묘(鯉)의 무덤이 있으며, 그 앞쪽에 공자의 학문을 계승한 손자 자사(子思)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이같은 묘의 배치는 공자가 아들을 데리고 손자를 앉아주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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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호천공원(黑虎泉公園) 제남의 샘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며 세 개의 호랑이 머리 모양이 새겨진 샘구멍에서 밤낮으로 물이
뿜어 나온다. 물도 좋지만 주변을 운하처럼 다듬어 가로수를 세우고 아치형 다리를 올려 노젓는 배를 띄운 것이 한 폭의 그림같다. 짧은 거리지만
마치 이탈리아의 수상도시를 지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며 상인의 호객행위가 없어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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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마갱(殉馬坑, 쉰마컹) 제남에서 동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120만의 작은 도시인 치박시(淄博市)에
있는 춘추제국 국군(國君)의 묘지다. 이곳은 중국역사문화도시 중의 한 곳이면서 중국고대문명의 중요한 발양지 중 한곳인 치박시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치박시를 흐르는 치구하(淄區河)에 인접해 있는 순장터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약 84m를 발굴했는데, 양쪽으로
늘어서서 매장된 228필의 순장된 말을 발견했다. 이 터의 길이와 깊이 등을 따져 계산해 볼 때, 약 600필의 말들이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
<<좌전·노양공이십오년>>이라는 기록에 의거해 볼 때, 이곳은 춘추시대의 최씨라는 왕의 묘지터로 추정되는데 순마갱의 규모를
통해 당시 세력의 규모와 동시에 제국국력의 강성을 알 수가
있다. | |
≪ 맹묘(孟廟, 멍미야오) 제녕시에서 동남쪽으로 70km, 곡부에서 25km 떨어져 있는 추성현내에 있는 맹자의 사당이다.
공자와 함께 유교의 대사상가라 불리는 맹자는 공자학을 계승하면서 지금까지 후대인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맹묘의 주 건축물인
아성전(亞聖殿)을 비롯해 전 주변으로 회랑이 둘러져 있으며, 구름과 용이 세겨져 있는 석주(石柱)가 풍치있게 서 있다. 또 아성전은 전체가
푸른색의 기와층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의 높이는 약 17m에 이른다. 공묘의 대성전과 비교해 볼때, 아담하면서도 형상이 세밀한 게
특징이다. | |
≪ 태안(泰安, 타이안) 중국의
명산(名山)이면서 성산(聖山)인 태산이 위치한 태안은 중국 화동지구의 중요한 대외개방 관광도시로서 "泰安(태안)"이라는 이름은
"國泰民安(국태민안)", 즉 나라가 강성해지고 백성이 평안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태산이 중국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널리 알려지면서 태안시도
국제적인 관광도시로서 성장하고 있으며, 덕분에 주변에 국제급의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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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성박물관(山東省博物館, 샨동셩보우관) 1954년 8월에 건설된 산동성박물관은 신중국 제일급의 종합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산동성의
자연표본과 각종 문물들이 수장되어 있는데, 표본만 21만건으로 산동성 수장품의 1/3이 이곳에 있다. 그중 국보급 보물이 3건, 일급 수장품이
1388건, 서적이 12만권 등이다. 수장문물의 양으로 볼때 중국 전체에서 7위고, 일급 수장품의 양은 전국에서 4위다. 이곳의 수장품들은
역사가 오래된 것들로 4, 5십만년 전의 원시시대때의 뼈와 치아화석도 있고, 신석기시대의 용산문화의 채석기와 백기 등도 보관되어 있다. 또
5천년의 역사를 지닌 갑골문자와 이후 상대, 서주 등 고대국가의 문물과 <<손자병법>>등의 중국 십대고서 등도 전시되어
있다. 풍부한 수장품과 새로 건설된 건축물, 현대화된 진열수단 등의 이 산동성박물관은 역사와 학문의 산동을 대표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 추성(鄒城, 쪼우청) 추성시는
중국의 유명한 유교사상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다. 또한 국가급 역사문화의 명승지이면서 신흥공업도시다. 총 1,613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110만의 인구가 생활하고 있는데, 경호선과 신석철로가 이곳을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고 제남 제녕공항과도 경북고속도로를 이용하면 7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역사도시답게 이곳의 역사는 3천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예로부터 "추노성지(鄒魯聖地)"라 불리기도 했다. 또 공자를 따라
유교사상의 대가라 불리는 맹자의 고향으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며, 공자와 진시황, 사마천, 이백, 두보 등 대 사상가와 시인들이 이곳에
머물며 많은 시와 문장을 남기기도 했다.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의 흔적으로 이곳에는 300여종에 이르는 각종의 문물고적이 남아있다. 그 중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2곳, 성급보호단위가 8곳이며 여러종의 진귀한 문물은 15,000여건에 이른다. 또 여기에 더해진
추성의 자연은 이 도시를 더욱 멋스러운 곳으로 만들고 있는데, 뒤로 둘러진 산들과 사계절이 분명한 온화한 날씨가 그것이다. 개방이후에 추성의
농공업생산과 교통, 통신사업의 발전이 더 빨라지고 있으며 도시건설과 더불어 관광지로서의 모습도 더더욱 완벽하게 갖추어 나가고 있다. 온난한
기후와 자연과 더불어 여유있는 역사문화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것이다. 곡부의 공묘(孔廟), 공림(孔林),
공부(孔府)와 마찬가지로 이곳 추성에는 맹묘(孟廟), 맹림(孟林), 맹부(孟府)의 삼맹(三孟)이 자리하고 있다. 맹묘와 맹부는 추성시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북송시기에 건설되었다. 공묘와 공부와 같은 역할로 맹자를 제사지내던 곳이며, 맹자가 지내던 곳이다. 또 맹림은 공림처럼
맹자가의 가족묘지다. | |
≪ 안묘(顔廟) 공자의 애제자
중 하나인 안회(顔回)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사원으로 한(漢)나라의 고조가 노나라에 들러 공자의 제사를 지낼 때에 창건하였다. 그후 개축과
확장을 계속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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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현(鄒縣) 곡부에서
20㎞ 정도 떨어진 추현은 인구 20만명의 도시로 맹자가 자랐던 곳이다. 공자의 그것과 비교해서는 작은 규모이지만 추현에는 맹묘(孟廟)와
맹부(孟府)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라히 있다. 맹묘 경내에는 각 시대의 석상이나 고종(古鍾)도 있다. 위해(威海)산동반도의 북단에 위치하
이곳은 일찍 위해위(威海衛)라고 했으며 청조 정부의 해군 북대양함대의 군항이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볼거리로는 항구에서 2㎞쯤 앞바다에 떠있는
섬으로 기복이 풍부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알려져 있는 유공도(劉公島)와 시가지 중앙부 내고산(奈 山) 동산 허리에 있는 누각으로 여기에서 보는
황하의 일출은 8경의 하나로 꼽는 환취루(環翠鏤), 영국으로부터 위해위 반환을 기념해서 1931년에 세워진 탑인 수회위해위(收回威海衛) 기념탑
등을 들 수 있다. | |
태산 |
≪ 태산(太山:타이샨,Mount
Taishan) 중국 오악(五岳)의 첫 번째인 태산(太山)은 옛부터 영혼이 깃든
산이라 여겨져 중국인들에게 숭앙되고 있을뿐 아니라 고대 제왕이 봉선의식을 행한 신성한 산이다. 해발 약 1,545m로 산동성 구릉에서 최고 높은
산으로 산동성 동부·제남시·태안 등 3개 현 사이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또 7000개의 돌계단이 정상까지 놓여 있고,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9km정도의 거리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6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비석과 묘당을 볼 수 있다. 4월부터 11월이 이곳을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산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5월1일 노동절과 10월1일
국경절에는 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비가온후에는 상 정상에서 운해를 쉽게 볼 수가 있는데,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태산의 등산 코스는 4가지가 있는데, 전통적이면서 일반적인 코스는
홍문로(紅門路)를 이용하는 두번째 코스로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 홍문은 태산의 입구가 되는 곳으로 옛날에는 도교의 신상을 모셨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측백나무로 뒤덮힌 울창한 숲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중턱의 中天門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 중천문은
천외촌(天外村)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올 수 있는 곳으로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버스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다. 또 이곳에는 식당과
상점이 많이 있으므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다시 중천문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도보로 갈 경우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오르면 약 2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남천문을 정점으로 깍아지른 듯한 벼랑이 이어져 이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곳이다. 남천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천국의 경계선이라고 하는 승선방(昇仙坊)이 있고, 여기서 20분 정도 오르면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에 도착한다. 태산등정은 2일의 일정이 가장 좋다. 밤 늦게 출발해 바로 일출을 보고 내려오거나, 오전에 출발해 산 위에서 하루를
머물고 일출을 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산위에는 10여개의 호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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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묘(岱廟,
따이미야오) 태안시에 위치한 태산의 신을 봉(封)하고 모시는 뜻에서 지어진
웅대한 모양의 고대건축물이다. 북경의 고궁, 곡부(曲阜)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건축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역대 황제들이 이곳에서
봉선(封禪)의식을 행했다. 태산을 대종(岱宗)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대묘라는 이름도 유래된 것으로, 동악신부라 불리는 태산의 신을 모시고 있다.
9.6평방미터 정도의 크기로 정양문(正陽門), 배천문(配天門), 인안문(仁安門), 후재문(厚裁門), 동정(銅亭) 등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묘
내에는 비석이 수풀림처럼 늘어서 있고, 옛 문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의 본전은
천황전(天皇殿)으로 내부에 가로 62m, 세로 3.3m의 거대한 벽화가 있으며, 경내에는 약 2천년 전 한무제가 심었다는 측백나무가 있는데 앞에
세워진 한백(漢柏)이라는 비석이 그것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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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부송(五大夫松) 중천문에서
계속 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운보교(雲步橋)가 나오며 이 다리를 건너 조금 더 올라가면 오송정(五松亭)이 나오는데, 이곳에 오대부송이 있다.
진시황이 봉선을 지내기 위해 산을 오르다가 큰 비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그 후 진시황은 24작위 중 9번째 작위인 오대부를
소나무에게 내려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있는 소나무는 청나라 때 보식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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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도(石島) 석도는
조용하고 조그만 어촌이라 중국인도 잘 모르는 곳이지만 여행자가 쉬어 가기에는 좋은 곳이다. 석도에서 볼 만한 것으로는 법화원(法華院), 항구,
바닷가로 시내와 주변을 걸어서 둘러보아도 반나절이면 된다. 법화원은 신라장군 장보고가 세운 사찰터에 재건되었으며 주변에는 장보고의 중국진출을
기념하는 탑이 세워져 있다. 석도항은 바로 장보고의 무역선이 출입하는 곳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신라인이 모여 살던 신라방 적산촌이 있었다.
석도는 예전에는 가난한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집도 새롭게 지어지고 길닦이는 등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잘 사는 마을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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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 |
≪ 곡부(취푸, 曲阜, Qufu) 면적은 814㎢이고, 인구는 약 61만 8000명(1998)이다.
산둥성[山東省] 지닝[濟寧] 북동부에 위치한다. 주(周) 초기에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다스렸는 노(魯)의 옛 도시로, 또 《속한서,
군현지(續漢書郡縣志)》에 실려 있는 “曲阜在魯城中 委曲七八里”라는 기록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다. 취푸라는 명칭은 수(隋) 때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진푸[津浦] 철도 취푸역(驛)의 동쪽 10km 쯤에 있는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으나 예로부터 공자의 탄생지로서 유명하다.
징후철도[베이징~상하이]가 시 서쪽에서 지나간다. 북쪽 1km 지점에 공자의 무덤인 공림(孔林)이 있다. 현재의 시가지는 한(漢)나라 때 성벽의
남서쪽 일부분에 해당한다. 공자 옛집 유적에는 대규모의 문묘(文廟)가 세워져 있고(주 때 창건), 예로부터 중국 예교(禮敎)의 중심으로서 존경
받아왔다. 1986년에 시(市)로 승격되었다. 공업으로는 석탄, 기계, 면방직, 화학, 제주 등을 산출하며, 부근 농촌에는 밀, 수수, 땅콩
등을 위주로 산출한다. 교육기관에 6개의 직업학교와 48개의 중학교가 있으며, 문화재에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 및
안묘(顔廟), 주공묘(周公廟), 소호능(少昊陵:中國金字塔) 등이
있다. | |
≪ 공묘(孔墓) 베이징의 자금성(자금성), 타이안의 대묘(대묘)와 더불어 중국 3대 궁전 건축의 하나이다.
남북으로 1km, 총면적 2ha, 전체 건물의 방수가 466개인 장대한
규모이다. | |
≪ 공부(孔府) 공자의 역대 자손들이 살던 저택과 관공서를 겸하고 있던 건물이다. 송(宋)대인 1039년에
세워져 여러 번의 개축 후, 청(淸)대에 대규모로 만들어졌다. 공묘의 동쪽에 위치하면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서로(西路)의 객실,
동로(東路)의 공씨가문의 묘지, 중로(中路)의 관공서와 주택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볼거리는 중로에 있다. 모두 개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곳은 단지 희끄무레한 창으로 내부를 겨우 볼 수 있는
것이다. | |
≪ 대성전(大成殿) 대성전은
공묘내 궁전식(宮殿式)의 건물이며 공묘의 핵심이다. 당대에는 문선왕전(文宣王殿)이라 불렀고 송천희(宋天禧)5년(서기1021년) 재건시 7간으로
만들었다. 송숭녕(宋崇寧)3년(서기 1104년)에 대성전이라 이름을 지었다. 청옹정(淸雍正)2년(서기1724년)에 재건하여 "대성전"이란 큰
글을 붙였으며 건물 높이는 24.8m 길이 45.69m 너비가 24.85m 2.1미터 높은 전기(殿基)위에 만들어졌다. 묘내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며 중국의 삼대고전(古殿)중에
하나이다. | |
≪ 행단(杏壇) 행단은 공자가
공부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공자는 72명의 제자들에게 "六藝"를
전수하였다. | |
≪ 공부대당(孔府大堂) 명대에
건설하였으며, 총 5칸이며 안으로 세칸이 있고 관원을 접대, 중대한 안건을 심사할 때 이곳을
이용한다. | |
≪ 전당루(前堂樓) 두층으로
7칸의 누각으로 청광서(淸光緖) 12년(기원1886년)에 건설하였다. 공자 76대손 공령이(孔令貽)와 세부인 도(陶)씨, 풍(豊)씨,
왕(王)씨와 두 딸이 모두 이곳에서
살았다. | |
≪ 후당루원(后堂樓院) 후당건물은
공덕성(孔德成)의 주택이다. 후당건물은 이층 7칸의 태루로 동서양측에 이층두칸의 건물이
붙어있다. | |
≪ 후화원(后花圓) 후화원은
공부(孔府)의 제일 뒷면에 있으며 이 화원은 명대(明代)에 건설하였다. 화원내에 태호석가산(太湖石假山)과 각양각색의 특이한 꽃과 풀이 있어
볼거리 또한 가득하다. | |
≪ 니산(尼山) 니산은 취푸
동남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있다. 니산은 공자의 출생지이며 니산의 원래 이름은 "니구산(尼九山)"이다. 니산은 오노봉(五老峰),
노원계(魯源溪), 지원계(智源溪), 곤영동(坤靈洞), 관천정(觀川亭), 중화벽(中和壁), 문덕림(文德林), 백운동(白云洞)등의 볼거리가 있는데
이를 '니산 8경'이라 한다. 니산공묘(尼山孔墓)는 후주경덕년간(后周景德年間)에 건설되었으며 현재 69칸의 건물이 남아있다. 묘뒤에는
니산서원(尼山書院)이 있고 이곳엔 9칸의 건물이 있으며, 북경국자감이 건설하였다. 니산고건물은 산동성 중점 문물보호 단위이다.
산동록(山東麓)에는 공자가 출생한 산동(山洞), 부자동(夫子洞)과 관천정(觀川亭)이 있다. 공자를 기념하기 위해 북위(北魏)때 묘를 건설하여
제사를 지었으며 역대에 재건하여 지금의 니산서원 주위에 수백그루의 고백(古栢)나무(동백의 일종)가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