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블랙 코미디
2006.09.24 허지웅 기자
안진우 감독의 신작
<잘 살아보세>는 순박한 사람들의 착한 코미디를 들려주려는 척, 야심 없는 척 다가와 느닷없이 뒤통수를 치는
영화다.
때는 바야흐로 새마을 운동과 가족계획사업의 열풍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반도를 잡아 뒤흔들던 1970년대 초반. 총
가구수 89가구에 가임부부 83쌍, 출산율 99.9퍼센트와 피임률 0퍼센트를 자랑하는 용두리는 국가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다가 가족계획이 가장
엉망인 산골마을이다. 용두리에 파견된 가족계획요원 박현주(김정은)는 마을의 소작농 변석구(이범수)를 마을 이장으로 추천하는 한편, 그를 앞세워
가족계획을 추진해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임신과 출산이 없으면 가난 끝 행복 시작이라 했는데,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믿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출산율 0퍼센트 도전 이후 벌어진 상황들은 행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변석구과 박현주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다.
<오버 더 레인보우> <동해물과 백두산이> 안진우 감독의 신작 <잘 살아보세>는 순박한
사람들의 착한 코미디를 들려주려는 척, 야심 없는 척 다가와 느닷없이 뒤통수를 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유머는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재치와
재능을 선보이고 있지만, 순간순간 불운한 역사의 실제상황에 힘입은, 다소 헝클어지고 아이러니한 색채의 빛깔을 감추지 않는다. <잘
살아보세>는 한마디로 국가 이데올로기에 함몰돼 이를 신봉하고 따랐던 개인들의 비극을 통해 당대와 현재를 조명해보는 대담한 형식의 드라마이며
동시에 기상천외한 풍경의 블랙 코미디다. 특정 개인에 대한 풍자나 사생활에 대한 조롱 없이, 단지 있음직한 현실을 담아낸 것만으로도 웃음을
보장하는 <잘 살아보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공격적으로 담아낸다. 단순히 “뭐 그럴 때도 있었지”라며 과거완료형
시대 비극에 주목하기보다 봉건제도와 근대의식 같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관이 대립하며 발생하는 이슈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유효한 충돌과 화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영화의 중심 소재인 ‘산아제한’ 또한 어쩌면 그저 화제 거리에 불과할 뿐, 시공간을 초월해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급기야 파괴해가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폐해야말로 <잘 살아보세>의 중심 화두로 보기에 적당하다.
코미디와
드라마라는 서로 다른 두 장르를 오가느라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잡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농밀한 연기다.
이범수와 김정은의 연기는 망설임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만하며, <괴물>의 변희봉과 <음란서생>의 근심어린 왕 안내상,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이범수의 무능력한 형을 연기한 바 있는 조희봉,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오지혜,
<음란서생>의 모사장이와 <왕의 남자>의 홍 내관을 연기한 우현까지, 개성 넘치는 조연들의 존재감 또한 퇴색될 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