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반자동 카메라들은 좀처럼 사용하기가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결국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가장 단순한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왠지 반들반들한 새 제품에도 역시 손이 가질 않는다. 적어도 수십 년의 세월과 손때가
묻은 카메라를 잡아야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프로 사진가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FM2와 이 ZEISS
IKONTA를 사용한다. (물론 이 외에 다른 카메라도 더 있다.) 작년 여름, 벌써 오래 전인 고등학교 시절부터 벼르고 벼렸던 서부 티벳
다와쫑 계곡으로 떠나게 되었다. 워낙 험난하고 어려운 곳이기에 7년동안 세상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향할 욕심이 생긴 것이다. 실속없이
값싼 장비만 많이 가지고 있는 나는 어떤 장비를 가져갈지 고민이 되었다. 며칠 밤을 고민하다 결국 이 ZEISS IKONTA를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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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잡아타고 다와쫑
계곡을 관통하다가 무턱대고 차를 세웠다. 바로 사진이 보이는 봉우리가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Zeiss Ikonta, Anastigmat
110mm F4.5 lens, 2001년 |
중형 폴딩 카메라인 이콘타 시리즈는 1929년부터 생산하면서 수많은 형제들을 만들어 내다가
1959년 수퍼 이콘타 C를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콘타 시리즈에는 이콘타, 이콘타 B, 수퍼 이콘타 A, 수퍼 이콘타 BX, 수퍼
이콘타 C 가 있다. 각 시리즈에는 큰 차이는 없지만 1934년부터 나온 수퍼 이콘타 시리즈는 당시 라이카와 맞먹는 최고급기종이었다. 이중노출
방지장치, 이중합치식 레인지파인더로 기존의 문제점들을 극복하였고 1937년에는 노출계까지 장착하였다. 내가 갖고 있는 카메라는 초기형인
ZEISS IKONTA이다. 1930년대에 생산했으며 Novar Anastigmat 110mm F4.5 렌즈를 장착하고 있다. 슈나이더 제나
렌즈나 테사 렌즈를 달고 있는 기종에 비하자면 검소한 카메라지만 처음 보는 순간부터 왠지 정이 가서 구입하였다. 물론 수퍼 시리즈보다 값이
싸다는 것도 가난한 사진쟁이에게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ebay나 한국의 카메라 상가에서 40만원부터 50만원 사이에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상태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에 비해 수퍼 시리즈는 100만원까지도 호가한다.
다와쫑 계곡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였다. 먼저 비행기를 타고 중국 성도로 가서 다시
우르무치로 갔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중국 땅의 끝자락인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카슈가르라는 동투르키스탄의 수도에 도착하였다. 그 이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티벳입경허가서도 없는 잠입이기에 오래 된 양복으로 변장을 하고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배낭은 쌀부대에 집어넣었다. 버스조차
다니지 못하는 길이라 이리저리 위험을 무릅쓰고 트럭을 히티하이킹하였다. 대충 차가 다닐만한 길목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고 언제 올지 모르는
트럭을 기다렸다. 라면과 군용식량을 아껴먹고 휴대용 정수기로 물을 걸러 먹으면서 3일정도 보내다 보니, 저 먼 곳에서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급히 텐트를 걷고 차를 새운 후 흥정을 했다. 그리고 짐칸에서 며칠 밤낮을 사막의 혹독한 밤 추위와 싸우며 지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여
드디어 다와쫑 계곡에 도착하고 나니 벌써 한국을 떠난 지 15일이 지났다.
다와쫑(달의 성이라는 뜻)계곡은 土林(투링)이라고도 불리운다. 9세기 무렵 번성했던 구게왕국의
유적지가 있는 자다(札達 Zanda)와 싸파랑 마을로 가기 위한 입구이다. 미국의 브라이스 캐년을 연상시키는 이 곳은 그동안 수많은 탐험가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 곳이다. 라마 아나가리카 고빈다의 저서 '구루의 땅'에서는 "이곳의 경치는 단순한 풍경 이상이었으며 가장 세련된 감각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 같았다. 그 장관을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언어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그 광대함은 보는 이를 압도했으며 그 협곡의
바위들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거대한 우주의 리듬에 맞추어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삼라만상의 상징 같았다"라고 적고 있다. 이 곳의
독특한 지형은 지구상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다. 미국의 브라이스 캐년을 연상시키지만 그 장엄한 풍경은 엄연히 다르다. 바라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
놓을 정도이다. 달의 성 계곡이라는 이름에 맞게 이 곳이 지구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달 표면 같은 풍경이다",
"과거에 바다였고 용궁이 있었던 곳이다", "수만의 대군이 사열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독특한 지형은 수많은 성곽처럼 보이는데 이곳에
오면 내 자신이 악마에게 납치되어간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기사가 된 기분이 든다"라고 말한다. 티벳의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샴발라(샹그릴라, 유토피아)로 가는 입구가 있고 이 입구는 티벳력으로 말띠 해 석가탄신일에 열린다고 한다. 무턱대고 다시 언제 올지 모르는
트럭을 세우고 이 계곡 한가운데 내렸다. 다시 텐트를 치고 시간을 아껴가며 촬영을 시작하였다. 슬라이드 필름 kodak e100vs와 흑백 필름
kodak tmax100을 준비하였는데 막상 촬영하려고 하니 흑백을 선택하게 되었다. 왜냐면 아직 칼라필름을 생산하기 전의 카메라인지라 칼라
색감에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120mm 6x9 포멧의 카메라치고는 굉장히 간편하다. fm2보다 가볍고 렌즈를 접으면 잠바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대형 4x5카메라를 챙겼으면 그 부담감으로 이 곳까지 오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다와쫑 계곡의 풍경은 해가 질 무렵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시역의 산들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6x9 카메라의 시원시원한 화각은
이곳 풍경을 담기에 충분했다. 천상에서 며칠을 노닐다 보니 갖고 있는 식량과 물은 모두 바닥이 났고 이젠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했다. 낮에는
모든 옷을 벗어도 살이 익을 정도로 더웠으며 밤이 되면 겨울침낭을 덮어도 영하의 날씨에서 떨어야 했다. 너무 목이 말라 비틀거릴 무렵 비가 잠깐
내렸는데 혀끝을 잠깐 적실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정신이 돌아 약으로 가지고 간 매실즙 엑기스를 한번에 마셨다. 럼주를 마실
때처럼 목구멍이 타 들어가는 듯 했지만 다행히 상태는 약간 나아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땅바닥에 엎드려 귀를 바닥에 대고 시간을 보냈다.
땅이 울렸다. 트럭이 드디어 오는 것이다. 짐을 챙기고 30분이 지나니 트럭이 보였다. 가격을 흥정하고 드디어 다시 문명 세계로 떠나게 되었다.
다시는 이 쌩 고생을 안 하리라. 그러나 정확히 일년 후 나는 이곳을 다시 찾았다 |